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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다키스트 아워, 윈스턴 처칠,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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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다키스트 아워, 윈스턴 처칠, 위대함...
  • 신희섭
  • 승인 2018.02.02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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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베리타스법학원 전임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았다. 영화에 대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최근 본 영화중에 가장 몰입하면서 본 수작이었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처럼 엄청난 볼거리는 없다. 하지만 결코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인원이 동원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개하는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간다. 감정을 과잉 동원하고 감동을 과잉 조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 한 명이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주변 사람들이 다소 멋쩍은 듯이 웃었다. 요즘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라. 하지만 몇 사람들이 더 박수를 쳤다면 아마 대부분 관객들도 박수를 쳤을 것이다. 나 역시도 박수를 보내고 싶었으니까.

1월 17일 개봉한 『다키스트 아워』의 감동을 경험한 한국 관객은 많지 않다. 2018년 1월 30일 기준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기록으로는 19,727명이 이 영화를 통해 처칠을 만났다. 분명히 감동적인 영화지만 더 분명한 것은 최근 한국 영화 시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펙타클도 없고 격한 드라마나 코미디 요소도 없다. 잘생기고 멋진 배우 대신 뚱뚱한 처칠이 나온다. 흥행코드 공식? 이런 것이 중요할지 모른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생각해보았다. 왜 이 영화에 박수를 보낼 생각이 들었을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배우 게리 올드만의 환상적인 연기? 짜임새 있는 드라마 전개를 만든 감독 조 라이트의 연출력? 우리가 자주 접하지 않았던 지도자 윈스턴 처칠의 드라마틱한 결단력? 이 모든 것들이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오지랖 넓게 다른 사람들이 무엇에 감동을 했는지는 차치하자. 그럼 나는 왜 이 영화에 감동했을까?

이 영화에 빠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공감이다. 리더십에 대한 공감이 정확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처칠의 옆에 있던 한 사람의 참모였다. 고집 세고 다혈질인 성격. 정적을 만드는 그의 날카로운 유머들. 이것은 주변에서 미움을 많이 받았던 처칠의 인간적인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가 아닌 지도자로서 처칠에 대해서 더 큰 공감을 가질 수 있었다. 히틀러가 침략한다면 막아낼 힘조차 없어 국가 생존이 위태로웠던 영국의 최대 위기상황에서 지도자 처칠을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참모로서 가슴 졸이는 결단의 과정. 고통스럽고 외로운 결정의 과정을 거친 처칠이 의회에서 “We shall never surrender!(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라는 연설로 영국의 미래를 이야기 할 때, 바로 그때 나는 영국 하원에서 지도자 처칠에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커다란 울림을 주는 지도자 처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역사적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영화가 다루는 시기는 1940년 5월이다. 1939년 이미 선전포고는 했지만 아직 전쟁준비가 끝나지 않았던 독일은 1940년까지 준비를 마치고 바야흐로 서유럽을 공격하였다. 영국에서는 뮌헨회담으로 대표되는 유화정책이 실패하자 유화정책의 장본인인 네빌 체임벌린이 총리직을 사임하였다. 전시에 필요한 거국내각 수립을 위해 여당인 보수당은 야당이 인정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안이었던 윈스턴 처칠을 총리로 지명한다. 게다가 처칠이 프랑스를 돕기 위해 보낸 군대가 덩케르크에서 완전히 포위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그 순간을 맞이한다.

영국 역사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 모든 군대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었던 순간. 히틀러와의 평화회담으로 목숨만이라도 살려보겠다고 하는 유화주의자들의 압력이 너무나도 강했던 순간. 바로 그 어려운 시기에 처칠은 유화주의자들을 향해 일갈한다. “호랑이 입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어떻게 호랑이와 협상을 한단 말인가!”

이 영화에서 리더십의 본질은 보았다면 비약일까?

리더십은 외로운 것이다. 특히 위대한 리더십은 외로움 속에서 만들어진다. 쉽게 가고 싶고 편하게 마무리 하고 싶을 때, 잠깐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때, 애처로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위로에 둘러싸여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어려움을 겪을 것이 명징할 때, 그럴 때 진실로 위대한 리더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간신들, 아부하는 이들, 눈치 보는 이들, 침묵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순간. 뜻을 같이 하는 이조차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그 순간. 역사와 후대만이 진실을 알아줄 것이라는 신념만이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등불이 되는 바로 그 순간. 위대한 리더십은 그 순간 외로움 속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이지만 인간적인 요인들을 넘어서 진실과 원칙을 지켜나갈 때 비로소 인간인 그 지도자는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이다.

히틀러의 침략으로 유럽에서 영국만이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나라로 남았던 이 역사적 상황에서, 독일의 침략에 맞서 시민들을 사지로 보내야 했던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덩케르크에 포위된 30만이 넘는 영국군의 철수를 위해 칼레에 있던 7천명의 영국 병사들을 희생해야 했던 그 안타까운 상황에서, 동맹국가 프랑스의 함대가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가 영국 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전체주의로 물들일 것을 걱정하여 프랑스 함대를 격침시키기로 결정하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아직 전쟁에 참전할 기미가 없는 미국이 언젠가는 도울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으로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그 외롭고 두려운 상황에서, 바로 그 상황에서 처칠은 영국을 지켰다.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외로움 속의 결단과 이를 끌고 갈 수 있는 용기. 이것이 인간이지만 인간을 넘어선 지도자 처칠에게서 배운 리더십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 리더십이 보여주는 위대함이다.

얼마 전 몇 편의 영화가 한국 정치무대를 장식했다. 보수정치인들은 영화 『강철비』를 관람했고 진보정치인들은 영화 『1987』을 관람했다. 실재하는 북한의 핵위협과 강경대응책의 필요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보는 것이나 30년 전 민주주의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렵게 만들어 냈는지를 공감하는 것도 정치인들에게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이 리더십인지 무엇이 지도자를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한국정치에서 더 필요한 일은 아닐까? 진보정치인들과 보수 정치인들이 올림픽기간에 “손에 손잡고”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본다면 한국 정치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그저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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