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꼬리의 시대,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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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꼬리의 시대,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 오시영
  • 승인 2018.01.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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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현대는 꼬리의 시대이다. 인간의 엉덩이 어디쯤 달렸다가 잘려 나갔을 것으로 상상되는 꼬리가 현대에 들어와 곳곳에서 다시 새롭게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바지를 입고, 치마를 입어 꼬리를 감추려 엉덩이를 흔들어보지만, 엉덩이를 흔들수록 꼬리의 휘둘림은 점차 그 반경을 넓힐 뿐이다. 현대의 비극은 머리와 꼬리가 따로 논다는 사실이다. 머리가 더 이상 발달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해 버린 인간이 머리를 쓰고 또 써 꼬리의 흔적을 감추고 지우려 하지만, 감추고 지우려 한 흔적이 또 다른 꼬리가 되어 꼬리 키우기를 계속하는 모순, 그 모순된 현실이 바로 현대이다. 인간의 꼬리는 매일 몇 센티씩 자란다. 잘난 사람일수록 그 길이가 길고, 양이 많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꼬리에 신경을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양적 팽창을 계속하는 꼬리의 성장에 질려 버린 머리가 꼬리자르기를 포기한 채, 그리고 그때까지 자라온 꼬리가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방심을 하게 되고, 그 이후 자포자기 상태로 방임된 꼬리는 여전히 자기 분화를 끊임없이 계속한다. 현대인은 모두 이제 자기 꼬리의 포로가 되어 휘둘리고 있다. 꼬리곰탕에나 쓰임직했던 꼬리가 이제는 몸통을 흔들고, 세상을 흔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가 사법부농단의 꼬리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꼬리라는 것이 원래 바지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비밀스러운 것이지만 처음에는 뭉툭 불거져 나와 있음직해보이다가 결국은 바지천을 뚫고 나와 그 모양을 국민 앞에 드러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꼬리의 굵기와 크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들이 지난 23일 집단해명서를 발표하였다. 대법원행정처의 판사블랙리스트 혐의와 관련하여 법원의 추가조사위원회가 “청와대가 대법원 재판에 영향을 행사했다”라고 발표하자 13명의 대법관들이 집단으로 “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소부의 합의를 거친 결과 이 사건이 갖는 중요성까지 고려한 다음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분류해 대법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을 선고했다”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상고심재판과 관련하여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의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면서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달리 국민들과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라고 오히려 이를 보도한 언론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법원의 추가조사위원회는 “2015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 공개”를 통해 동 문건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당시 2심 판결(선거법 위반 유죄 선고가 남에 따라 이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선거 당선에 대한 정당성이 의심받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였음과 향후 결론(대법원 상고심을 지칭)에 재고의 여지(선거법 위반 유죄를 파기하여 무죄로 선고하라는 취지로 이해된다)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줄 것을 희망한다”는 점과 이에 대해 대법원 행정처가 “청와대 법무비서관(법원에서 파견나간 판사)을 통해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하고 향후 (대법원) 내부 동향을 신속히 알려주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표하였다. 법원의 추가조사위원회가 행정처 소속 판사들의 컴퓨터에 보관되어 있는 파일을 그대로 열어 공개한 것이기 때문에 저 내용은 “사실”임이 거의 분명하다. 만일(필자는 이 부분에서 만일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에 대해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이 파일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건국 이래 사법부 최대의 스캔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지난해 9월 본란을 통해 대법원의 원세훈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판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댓글부대 운영 등과 관련하여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국정원법 위반) 유죄, 대선개입(공직선거법 위반) 무죄를 선고하였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2015년 2월 9일 항소심판결에서 공직선거법위반 역시 유죄로 인정하여 3년 징역의 실형을 선고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법정구속하였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부로 사건을 이부하였고, 거기에서 항소심에서 인정한 증거 일부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해할 수 없는 법논리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2015년 7월 16일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다. 이번 추가조사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1심에서는 공직선거법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서울고등법원)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불안해하며 재판부의 의중을 사전에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청와대의 모습과 이에 대법원 행정처가 화답하며 재판부의 의중을 알아보겠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교감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하지만 당시 고등법원이 증거에 따라 소신 있게 공직선거법에 대해서도 유죄판결을 하자 이를 대법원에서 파기시키기 위해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이 전면에 나서 사법부공작을 하였음과 대법원 행정처가 이에 적극 협조하였음이 위 문서들을 통해 모두 드러난 것이다. 암호가 걸려있어 아직까지 열어볼 수 없는 파일이 무려 760개나 남아 있다니, 암호가 걸려 있는 것으로 봐 그 내용의 중함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는 것임에 비추어 위 파일들이 열리면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보다 더 큰 사법재앙이 펼쳐지지 않을까 심히 두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이렇게 대한민국 사법부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는가? 법관은 인간신(人間神)이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재물을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도 있고, 소유권자를 정해줄 수도 있다. 법관의 판결 앞에 국민은 복종할 수밖에 없고, 저항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신인 법관이 신이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겠다고 하는 순간 그는 파괴자이고 폭력자가 될 뿐이다.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신조차 개입할 수 없는 천지창조 이전의 혼돈상태 Chaos로 되돌아가게 된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는커녕 독이 든 주사를 놓아 환자를 살해하는 것과 진 배 없게 된다. 피곤해 몸을 기댄 벽이 무너져 그 돌더미에 깔려 죽는 꼴이고, 늑대를 피해 찾은 안식처에서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13명 대법관들의 변명을 들으며 “이렇게 세상천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없는 이들이 대법관이었나?” 하는 자조 섞인 쓴웃음이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이 사건에 대해 사건 내용을 알 수 있어 변명할 수 있는 대법관은 2015년 7월 16일 판결 당시 재직 중이던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대법관뿐이다. 나머지 대법관(이기택, 김재형, 조재연, 박정화, 안철상, 민유숙)들은 2015년 당시 대법원에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의 처리과정을 알 수 없다. 이를 법률용어로 “부지”라고 한다. 즉 당시 재직했던 대법관들은 거짓말로라도 “부인(그런 일이 없다)”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법관들은 “부지(모른다)”라고 할 수 있을 뿐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13명의 대법관 모두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나선 것은 대법관들이 얼마나 이번 사태에 대해 “당황”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고 할 것이다.

대법관들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는 다급성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대법원 행정처의 자체 컴퓨터에서 그런 명확한 증거가 나와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그런 일이 없다며, 오히려 언론 보도가 국민에게 불신을 가져올 수 있다며 반격을 가한 것은 심히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지난번 칼럼(2017년 9월 1일, 원세훈 파기환송심 판결)에서 대법원의 파기환송심 절차가 잘못 되었음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로 인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파기 전 징역 3년형이 파기 후 제출된 별도 증거에 의해 공직선거법 위반 징역 4년형으로 중과된 점에 대해 그 재판절차 과정상의 모순을 밝힌 바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파기환송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원세훈 전 원장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다는 점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추가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그 과정에 청와대와의 사전 상의(?)를 통해 파기환송절차가 진행되었음이 밝혀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번 사건의 해결에 좌고우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사법부는 법관의 개인적 일탈에 대해 몇 번의 단죄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사법부 자체가 심판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사법부 자체가 사법농단의 중심축에 있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행정처 컴퓨터에서 발견된 파일에 의하면 대법원 행정처는 소위 “거점판사”들을 통해 “문제판사(?)”들의 동향을 조사보고 받고 이를 자료화하였다.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라는 말을 사용함에 조심스러워하고 있지만, 이는 사법부 블랙리스트작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행정처에서 말하는 거점판사는 대부분 행정처를 거쳐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믿을 만한 행정처의 우군판사였을 것이고, 거점판사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파악된 정보는 인사 등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거점판사들은 좋은 곳에 발령되어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보직에 배치되었을 것이고, 그들의 성향 역시 대부분 정치적이었을 것이기에 정치적 판결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은 유독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전원합의체 판결들이 많이 내려졌다. 물론 합리적 이유 없는 맹목적 소수자 보호는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대법원이 소수자 보호에 무심하게 되면 강자가 상대적으로 더 보호되어 더 강한 힘을 행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사회구조가 고착화되기 쉽다. 이제야 우병우 전 청와대민정수석에 대한 영장이 몇 차례에 걸쳐 무리하게 기각된 배경이 이해 간다. 행정처 컴퓨터에서 발견된 문서에 의하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의사에 따라 대법원 행정처가 손발을 맞춰왔고, 만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구속되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대법원 행정처와의 유착관계가 드러나게 되면 법원으로서는 큰일이기 때문에 한사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을 영장발부단계에서 막아야 했던 이유(?)가 납득이 가는 것이다. 물론 영장전담판사로서는 결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겠지만, 이렇게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다스 문제, 국정원 특별활동비 불법전용문제, 각종 이권개입문제 등 많은 혐의점들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 꼬리의 입을 통해 사실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가히 꼬리의 몸통제압시대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를 대법원 자체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기 바란다. 대법원은 사법부의 치부를 검찰에 내보이고, 국민에게 내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을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그러한 사법부 치욕의 악역을 담당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도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에 지금처럼 부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자인하고, 종양을 제거하는 심정으로 사법부의 비리를 발본색원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본다. 법원은 국민의 보호처이다. 가장 마지막에 안길 수 있는 어머니의 품이다. 대법원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권리를 빼앗기고 억울해 눈물짓는 국민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의 잘못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다시는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반성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강제수사권도 없는 법원 스스로 내부적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모르는 안일한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꼬리가 도처에 흩어져 있다. 수많은 정보가 수많은 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빅 브러더의 한 점 세포가 되겠다고 대기하고 있다. 수많은 점세포들이 유기체가 되도록, 그리하여 빅 브러더가 되어 전체의 모양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전체의 잘못이 드러날 때 환부를 치료할 수 있고, 잘못을 사죄할 수 있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다. 꼬리를 감추려 하지 마라. 꼬리는 저절로 흔드는 본능이 있다. 꼬리가 흔들리지 않은 짐승을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의 엉덩이에서도 스멀스멀 꼬리가 자라고 있다. 빅 브러더의 자료들이 넘쳐나고 있다. 국민들은 꼬리곰탕을 먹고 싶어 한다, 꼬리곰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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