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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정부 수립 70주년, 운동의 정치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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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9  11: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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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2017년이 며칠 안 남았다. 매해 그렇지만 2017년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시작하였고 제천의 화재사고와 함께 한 해가 마무리 되고 있다. 아쉬움과 회한으로 빨리 한 해를 마치고자 하는 이들과 올 한 해를 보내기 아쉬운 이들이 있다. 그래도 시간은 어김없이 규칙적으로 지나간다.

며칠 뒤면 2018년이 시작된다. 그렇게 민주화 30주년이었던 2017년을 역사로 보내며 정부수립 70주년인 2018년을 맞이할 것이다. 유례가 없던 대통령탄핵사건은 2017년이란 ‘1987년 체제’ 즉 민주화 30주년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못하고 지나가게 했다. 또한 ‘1997년 체제’ 즉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그로 인해 한국이 경험한 IMF체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생략하게 만들었다. 지난 30년간 그리고 20년간 한국의 정치 발전과 정치경제 체제의 취약성은 얼마나 개선이 되었는지에 대한 평가라는 숙제를 밀린 것이다.

2018년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 70주년이 된다. 일본제국의 지배에서 벋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취지를 계승하여 정부를 구성한지 70년이 되는 것이다. 국가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조선까지 이어진 과거 국가들의 역사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한 것으로만 보면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다.

물론 이 70년이라는 시간을 정부 수립 70주년으로 볼지 국가를 새롭게 수립한 70년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올 한 해 많은 논쟁을 펼칠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면서 김구선생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을 한국 정치의 중심에 여전히 둘 것인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가 만들어진 것에 초점을 두고 1948년 이후 보수중심으로 한국 정치의 판을 새롭게 짠 것에 의미를 둘 것인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이는 역사에 대한 해석이자 현재를 사는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평가이다.

제헌 헌법을 만들고 의회를 구성하고 정부를 구축한 1948년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다른 국가들이 경험한 긴 근대화라는 시간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먼저 광복과 함께 국가구성(state-formation)의 과정을 거쳤고 민족구성(nation-formation)과정 속에 한국전쟁의 폭력적 과정을 지났다. 한국전쟁이 민족을 구성하기 위한 내전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한민족은 두 개의 다른 정치공동체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기점으로 자본구성(capital-building) 즉 산업화에 돌입하였고 그 과정에서 초고속 성장을 이루어 냈다. 1970년대 말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에 대한 투쟁과 1980년 광주 민주화항쟁은 이후 1987년 민주화로 민주주의구성(democracy-building)을 이루었다. 유럽 국가들이 16세기부터 경험한 이 과정을 70년 내에 이루어냈을 뿐 아니라 한국은 1990년대의 IT를 중심으로 정보통신혁명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참 대단한 나라다.

빠른 성장은 빠른 변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래서 한국은 ‘빨리 빨리’문화가 만들어졌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선비정신에는 없었던 속도전의 개념이 현재 한국인들에게는 각인되어 있다. 현재 에스컬레이터나 무빙워크는 좀 더 빨리 이동시켜주는 수단이지 편하게 이동시켜주는 장치가 아니다.

변화는 운동에너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사물이 정적인 상태에 있을 때는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다. 앞으로 나가든 반발력으로 뒤로 튕겨져 나가든 사물은 운동을 통해서 변화를 이룬다. 이것은 한국정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7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서구에서 근대를 만들어낸 ‘국가구성-민족구성-자본형성-민주주의형성’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압축해서 경험한 한국 역시 아주 강력한 운동에너지에 의해서 이 과정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속도전의 강력한 운동에너지에 익숙해져 있다. 정부수립이전에 태어나신 70대와 80대 어르신들이 SNS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보라.

실제 한국 정치는 '운동의 정치(politics of movement)'를 빼고 생각하기 어렵다. 해방정국에서의 신탁과 반탁을 둘러싼 대립으로 시작하여 1960년 4.19혁명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종식시킨 것이나 1970년대 말 부산과 마산에서 그리고 1980년 광주에서의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이나 1987년 민주화가 대표적인 민주화 이전 운동의 정치이다. 이후 1998년 1월 금모으기 운동이나 2000년 낙천 낙선운동 그리고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과 첫 번째 촛불 집회와 2004년 고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둘러싼 찬반의 운동과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촛불 집회 그리고 2016년 시작해서 2017년 탄핵으로 귀결된 촛불집회까지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정치는 운동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과정에서 과거 진보진영이 독점하던 운동의 정치를 보수 진영에서도 활용하게 되었다는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정치는 제도를 통한 개혁이나 변화보다는 운동에 의존하는 성향이 더 강해졌다. 이 현상은 지금까지의 한국정치 경로로 볼 때 당연하다. 운동에너지가 강한 한국정치의 관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동을 통해서 이룩한 것이 많기 때문에 도덕적 정당성마저 확보하고 있다. 그러니 더 활동적으로 움직이고자 한다. 대통령 탄핵이후에도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광화문의 시위들이 이를 방증한다.

운동의 정치는 제도권 정치를 보완하기도 하지만 위협하기도 한다. 제도권 정치는 말 그대로 제도를 통해 안정을 희구한다. 그러나 제도권 정치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운동의 정치는 비제도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한다. 관건은 양자가 인식하는 변화의 속도와 폭이다. 물을 휘저은 뒤 가만히 두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듯이 운동도 폭발적인 에너지는 낸 뒤 침잠해있으면 정치체제는 안정을 찾아간다. 그러나 세탁기처럼 강력하고 지속적인 운동에너지를 사용하면 안정은 없다.

2018년 한국은 여전히 강력한 운동에너지의 후폭풍 속에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 하는 이들과 아직도 한국 정치의 변화가 필요하며 이는 제도권 정치가 아닌 오로지 운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은 여전할 것이다. 이 과정 속에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2017년 탄핵정국과 조기 대선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다당제를 변화시키려는 국민의 당과 바른 정당의 통합 움직임은 정확히 보면 운동정치의 후유증이다.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한국 정치는 ‘운동의 정치’가 던져준 역동성과 강력한 경로의존성으로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다. 정부수립 이후 70년의 역사가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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