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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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
  • 최용석
  • 승인 2004.11.02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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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석
오세오닷컴 대표변호사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이전 위헌 결정에 대한 여당과 사회 일각의 대응을 보면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이들이 보여주는 '내 편 아니면 네 편' 식의 흑백논리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당장 헌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을 기각했을 때는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 대한 정당한 결정이라며 적극 환영을 표했던 그들이다. 그러나 정작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직전까지도 결정에 승복하겠다던 열린우리당 내에서조차 위헌적이고 포악한 결정이며 오히려 재판관을 탄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헌재재판관들이 강남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했다고 주장하는 소리도 들린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렸을 때 '내 편'이었던 헌재가 지금은 '네 편'이 된 것이다.

세태가 왜 이렇게 됐는가. 얼마 전에 국가보안법이 존치되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국보법 폐지론자들은 대법원을 공격했다. '한평생 기득권 속에서 살아온 집단', '전형적인 정치적 판결이자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는 비판은 점잖은 축이었고 인신공격성 비난도 포함됐었다. 최근 사회각계 원로들의 시국선언이 나온 직후, 김수환 추기경이 국보법 존속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원로도 아니다'는 막말이 쏟아지기도 했다. 말하는 사람이 누구건 기존 법질서와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잘못됐다는 식이다.

국회에서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판사와 변호사 출신인 대통령에다 유난히 법조인 출신이 많은 17대 국회에서 이렇게 일관성 없이 법을 무시하면서 자기 입맛대로 감탄고토(甘呑苦吐)해도 되는가. 법이란 온 국민 컨센서스(consensus·의견일치)의 결집체이고 헌법은 그 중 최상위이며 헌재는 각종 법령이 헌법에 위배되었는지를 해석하는 최종적 절대적 기관이다. 그런데도 취임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며 선서한 바 있는 대통령이 "처음 듣는 이론"이라고만 할 뿐 헌재 결정을 인정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 그 추종 세력과 여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이런 이중적인 처신은 위헌법률을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총선을 앞두고 충청권 표를 의식해 수도이전특별법을 통과하는 데 여당과 손을 잡았었다. 그들은 지금 자신에게 유리한 헌재 결정이 나오자 적극 반기는 치졸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에 맞춰 이랬다 저랬다 하기는 여당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존 권위와 가치를 무시하고 고의로 어기는 이러한 행태에 모두가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명문대학을 나오거나 강남에 사는 사람을 죄악시하는 세력이 그렇고, 근본없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다고 경멸하는 세력도 마찬가지다.

점점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만연해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게임의 룰인 법을 따르지 않고자 한다면 이는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고, 결국 로빈슨 크루소처럼 법이 필요없는 무인도로 가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사태의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꾸고, 상대방 말이라면 무조건 배척부터 하고 보는데, 어느 국민이 이런 세태에 물들지 않겠는가. 열린우리당은 과거 핍박 받은 세력은 무조건 옳고 개혁의 이름으로 법 집행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열린 자세로, 한나라당은 이 나라가 두 나라로 쪼개지지 않고 한나라가 되도록 국가 에너지를 결집시켜야 할 것이다.

본 시론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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