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 걸음씩
상태바
[기자의 눈] 한 걸음씩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7.12.22 12:1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허니와 클로버’라는 만화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일본에서는 원작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아오이 유우가 주연을 맡아 순수한 천재 화가 소녀를 연기했다.

각설하고 ‘허니와 클로버’는 미대생들의 꿈과 우정,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기자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고 종종 떠올리는 이야기는 다케모토 유타의 ‘자아찾기 여행’이다.

재능과 개성이 넘치다 못해 줄줄 흐르는 동료들과 달리 눈에 띄지 않는 평범남 유타는 졸업을 앞둔 어느 여름날 장을 보러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이대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충동적인 여행이었다. 그저 눈앞에 놓인 길을 따라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다. 길을 가다 만난 마트에서 스티로폴과 비닐을 침낭삼아 노숙을 하고, 제과점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남은 귀퉁이 빵이나 바나나처럼 저렴하고 양이 많은 음식으로 배를 채워가며 계속해서 달렸다.

길을 가다 만난 작은 구멍가게에서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얻어먹고 능력을 살려(유타는 건축과 출신이다) 선반 수리를 돕기도 하고, 궁상스런 모습에 거지 취급을 받기도 한다. 물을 얻어먹으러 들어간 시골집에서는 할머니가 먹던 막과자를 얻기도 하고 지쳐 쓰러져 잠든 어느 절에서 수복사들을 만나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금을 벌기도 했다.

유타는 두려웠다. 친구들은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앞으로 달려 나가는데 자신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도 모르겠는데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는 것이.

달리고 또 달리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닿은 곳은 최북단 땅 끝. 처음 집을 나섰던 순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곳, 그저 자전거 한 대에 의지해 끊임없이 페달을 밟고 또 밟는 사이에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기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물론 유타와 달리 기간이 한정된 여행이었고 매일의 일정도 대략적으로나마 정해둔 상태였지만 운송수단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나 자신의 힘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3일간 해안을 따라 걷고 또 걷는 여행이었다. 첫 날에는 폭풍이 쳐서 나뭇가지에 따귀를 맞기도 하고 살갗을 따끔따끔 쏘아대는 모래알의 공격을 받았는데 둘째 날부터는 쨍쨍 내리쬐는 땡볕과 전날 무리해서 걸은 대가인 근육통으로 애를 먹었다.

처음 이런 여행을 계획할 때만해도 혼자 걸으면서 나의 현재와 미래를 천천히 그리고 깊게 생각해봐야겠다는 야심찬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역시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초반의 의욕은 체력과 비례해 고갈됐고 걷는 내내 ‘내가 대체 왜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랬을까’ 라는 생각만 무한대로 반복했다.

그런데도 그만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 이상은 한 걸음도 못 걸을 것 같은데 그래도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아픈데도 어쨌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보니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이 보이던 산이 어느새 요 앞으로 와 있었다.

어느새 또 한 해가 다 갔다. 대부분의 시험이 최종합격자 발표를 마쳤고 합격자들은 새로운 길을 나설 때가 됐고 안타깝게 고배를 마신 수험생들은 다시 새로운 1년간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페달을 계속 밟아 나가다보면, 한 걸음씩 내딛다보면 결국, 언젠가는 끝에 도달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수험생 모두에게 뜨거운 응원을 전한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회균등 2017-12-23 19:14:11
언제나 한결같이 수험생들에게 힘을 주는 글을 쓰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