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93) -심리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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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93) -심리부검
  • 신종범
  • 승인 2017.12.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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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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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모 부대에서 근무하던 A장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추석 연휴 기간 중에 숙소 보일러실 문에 목이 매인 상태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수사결과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유가족들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수사기관이 파악한 자살의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 A는 해당 부대에 전입해서 소대장직을 수행할 때까지는 직책 수행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병사들과도 잘 어울려 병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대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데, 대대 인사과장으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부담감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선임장교로부터 인수인계도 못 받은 상태에서 함께 일하던 병사마저 곧 전역을 앞두고 있어 업무 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익숙하지 않는 업무와 계속 밀려오는 업무 탓에 거의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휴일에도 근무를 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선임참모 역할을 하던 작전참모로부터 업무처리가 미숙하다는 등의 이유로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거의 매일 같이 질책을 당하였고, 특히 A가 사망하기 전날 가장 심한 질책이 있었다. 인사과장으로 보직이 변경된 이후 A는 식사를 자주 거르고, 고개를 숙이고 걷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고, 함께 근무하던 동료 간부와 심지어 병사들에게까지 자살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결국, A는 인사과장으로 보직이 변경된 이후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큰 상태에서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어 왔고, 그 와중에 선임참모로부터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거의 매일 같이 질책을 당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자살의 원인이 부대에 있으므로 당연히 ‘순직’ 처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A에 대한 순직처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의 훈령에 따르면, 자살의 경우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에게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죽음의 원인이 부대에 있었음에도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노가 더해졌다. 유가족들은 유골인수를 거부하면서까지 부당함을 주장하였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 국방부로부터 유가족에게 연락이 왔다. 국방부 훈령이 개정되어 자살의 경우에도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심사를 거쳐 ‘순직’으로 인정될 수 있으니 재심사를 신청해 보라는 것이었다. 유가족들은 재심사를 신청하였고, 국방부는 심의를 거쳐 A가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 폭언, 가혹행위 또는 업무과중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한 사람”에 해당하다고 하면서 ‘순직’ 결정을 하였다. 유가족들은 늦었지만, 마음 속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만 이루어지면 아들을 가슴에 묻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유가족들은 국방부에서 ‘순직’으로 인정되었으니 당연히 ‘국가유공자’ 또는 ‘보훈보상대상자’로 등록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유가족들의 신청을 받은 국가보훈처 산하 00지방보훈청은 ‘국가유공자’ 등록은 물론 ‘보훈보상대상자’ 등록도 인정하지 않았다. 보훈청이 ‘보훈보상대상자’ 등록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국방부의 ‘순직’ 인정요건과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자살의 경우 ‘보훈보상대상자’가 되려면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ㆍ폭언 또는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그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지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사람”이어야 하는데, 통상 직무수행 등이 원인이 되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다가 자살한 경우에는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해 주고 있다. 그러나, A는 사망 당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자료는 없었다. A의 경우, 자살 당시 우울증 등을 앓고 있었다는 등 당시 심리나 정신 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심리부검’은 자살자가 남겨 놓은 자료나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자살자가 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밝혀내는 작업을 말하는데, 부검이 시신을 해부하여 사망의 원인을 밝히듯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여 자살의 원인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A의 경우에 수사과정에서 함께 근무한 병사부터 지휘관까지 조사한 자료가 있고, A가 여자친구나 지인들과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등의 자료도 남아 있다. 이러한 자료를 전문가가 분석하여 보면, A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그 당시 그의 심리상태 또는 정신상태가 어떠하였는지, 그러한 심리상태가 직무수행 및 자살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A의 유가족은 00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보훈보상대상자 요건 비해당결정 처분 취소의 소’를 제기하였고, 현재 ‘심리부검’을 위해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A에 대한 신체감정촉탁이 신청된 상태이다. 공무원이 자살한 사건에서 법원이 감정을 통해 ‘심리부검’을 실시하여 자살과 공무와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었다. A의 경우에도 ‘심리부검’을 통하여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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