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 제주 성이시돌 목장을 다녀오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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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제주 성이시돌 목장을 다녀오고 나서
  • 신희섭
  • 승인 2017.12.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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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전임 

제주도는 언제나 새롭다. 우선 공항에 내렸을 때 반기는 열대나무들은 “여기가 한국이 맞나?”하고 질문한다. 높은 건물 대신 현무암으로 된 나지막한 돌담들이 반기는 풍경도 제주도를 이채롭게 만든다. 한 쪽은 바다를 다른 쪽은 한라산을 보면서 달리는 도로들은 마음에 여유를 준다. 그래서 제주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주말 볼일이 있어 제주도를 다녀왔다. 항상 새로운 제주도지만 이번에 다녀온 제주도 는 더욱 새로웠다. 우선 겨울에 온 것이 처음이라 겨울이라는 계절을 무색하게 만드는 봄같은 날씨도 새로웠다. 이 크지 않은 나라에서 계절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참 놀랍다. 1100고지에서 본 한라산의 모습과 바닷가의 풍경도 극단적인 겨울의 비교라는 점에서도 새로웠다.

특히 겨울 제주에서 신기했던 것은 신천목장에서 귤을 말리는 풍경이었다. 5만평이나 되는 넓은 들판에 감귤껍질을 말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주황색 꽃밭 같다. 가까이 가서 보면 까고 버려진 귤 껍질들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귤 껍질들이 모이니 장관이다. 더욱 놀라운 그림은 이 귤 껍질들을 사람들이 삽으로 한 곳에 모아두면 코끼리 모양을 한 거대한 트럭이 코끼리 코와 같은 진공청소기를 들이대고 귤껍질을 흡입하는 모습이었다. 겨울 바닷가 목장에서 사람들이 귤껍질을 모으고 기계가 진공으로 흡입을 하는 모습에 몹시 혼란스러웠다. 처음 보는 장면이 신기한 한편 이 그림이 미래의 인류에 대한 그림처럼 보여 불안감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이 낯선 경험을 위해 제주도에 한 번 방문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제주에서 이동을 하다 한 곳을 들리게 되었다. 한림읍 금악리를 지나다가 들리게 된 곳이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곳을 가기 위해 지나던 길에 우연히 지나가게 된 곳이다. 이곳은 제주 여행객들에게는 ‘테쉬폰(Cteshphon)’이라는 페르시아 풍 건축 양식으로 사진 찍기의 명소가 된 곳이다. 반면 천주교신자들에게는 피정의 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거기에 성이시돌목장이 있었다. 이곳은 주변에 성당과 수녀원과 함께 피정의 집 등 제주도의 천주교 성지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에 들려서 처음 알았다. 성이시돌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사실 성이시돌목장을 오기 전부터 성이시돌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온 우유는 유기농우유로 유명해서 딸아이들에게 잠깐 먹인 적이 있었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어른들은 입을 댈 수 없고 아이들에게만 먹였던 우유라 기억이 확실히 난다. 그런데 그때 우유이름을 보고 굉장히 신기한 작명을 한 우유라고 생각을 했었다. 나의 머릿속에 이 비싼 우유는 ‘성이+시돌’+ 우유=성이시돌우유 로 인식이 되었던 것이다. 어디 사투리나 고유어인지는 모르지만 어감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우유를 끊고는 그 낯선 이름의 기억도 사라졌다.

그런데 성이시돌 우유가 성이시돌 목장으로 인해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다른 이름으로 살아났다. ‘성+이시돌’+ 우유=성이시돌우유 라는 공식으로. 난 왜 한 번도 이 이름이 사람이름일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을까?

꽤 오랫동안 이 이름을 다르게 이해하고도 한 번도 이상한 적이 없었다. 왜? 문제가 될 일이 없었으니까. 우유이름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만 우유를 먹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그 우유의 연원을 소개할 일도 없다. 그러니 우유 이름의 취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크게 보면 우유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것이 인생의 대세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무시할 수도 있다.

부끄러운 마음에 한 번 성이시돌에 대해 찾아보았다. 알아보니 성이시돌은 이 목장을 만든 임피제 신부가 지은 이름이다. 이시돌(Isidore)은 한국이름이 아니었다. 임피제신부가 독일계 유대인 자손 이시도르라는 이름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피제라는 이름은 아이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신부가 1973년 제주도 명예 도민증을 받을 때 지은 이름이다. 1954년 제주도에 선교차 왔던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의 가난한 실상을 보고 이곳에 농장을 지어 제주도민의 가난을 구해보겠다는 취지에서 1961년 이시돌이라는 목장을 건립했다. 성이시돌목장을 알아가다 보니 60년이 지난 신부님과 목장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 했다.

성이시돌의 역사를 보면서 든 생각. 문제는 우유가 아니다. 정보의 부정확성이 문제의 본질이다. 정보가 부정확한데도 불구하고 그 정보를 더 찾아보지 않고 그대로 확신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성이시돌’을 계기로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알고 있는 지식 중 얼마나 많은 정보들이 이처럼 부정확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성이시돌을 몰랐다는 부끄러움이 조금 더 나가 걱정이, 더 나가서는 정확하지 않은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보다 끔찍한 것은 이런 정보들이 틀렸다는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정보를 얻고 정보를 저장하고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이렇게 직관과 편견에 의한 실수를 할 수 있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부분이나 자신이 듣고자 하는 부분만 강조되면서 정보는 왜곡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편의적으로 정보를 가져다 쓴다. 특별히 강력한 반론을 만나지 않을 경우 이러한 과정은 계속된다. 게다가 반박이 없기에 이 정보는 점차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정책결정과정을 설명하는 심리적 설명들에서 이러한 과정들을 묘사하는 개념들은 무수히 많다.

과오지향적 직관, 편집증적 고착, 콤플렉스, 오인 등등. 이런 이론들을 몰라서 실수를 범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범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국가지도자, 참모진들, 정책분석가들도 이 과정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않다. THAAD문제를 두고 한중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한국과 중국 지도부도, 북한에 대해 대화가 가능하다고 제의한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자신들이 보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국제정치는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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