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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안군 염전노예’ 재판 국가배상청구소송 제기한 최정규 변호사
김주미 기자  |  hova@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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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6  14: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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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이지 않은 판결, 국가 배상하라”
“재판장과 주심 증인으로...경각심 줘야”
“장애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 바람직”
“억울하단 사람 절대 팽개치지 않을 것”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섬에 팔려와 도망갈 수 없으니 구출해 주세요.”
지난 2014년, 목포 신안군의 한 섬에 위치한 염전으로 팔려 온 시각 장애인 김모 씨(당시 40대)가 염주의 눈을 피하여 가까스로 서울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이 한 통의 편지로 인해 ‘노예 생활’에서 극적으로 벗어나게 된 김모 씨 이야기는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어 장애 인권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부족해 김씨처럼 외딴 섬의 염전에 팔려 온 장애인들은 그야말로 ‘노예’같은 생활을 했다.

창고에 마련된 숙소에서 지냈으며, 소금 생산이 한창인 3월~9월에는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목과 쇠파이프로 맞기도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유명 공익변호사들은 즉각 공동대리인단을 꾸렸다. 원곡 법률사무소의 최정규 변호사(41, 연수원 32기)도 그 중 한 명이다.

2012년 개업 이후부터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법률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크게 다룬 지적장애인 가족 유린 사건 ‘사냥꾼과 두 모녀’ 프로그램의 법률지원 등을 맡으며 장애 인권 사건에 지속적으로 관여해 오고 있었다.

“장애 인권 옹호, 법률지원만으로는 한계”
 

   
 

“그때 구출된 염전 노예 70~80명 중 50명 가량은 가족이 있어서 다 데려갔는데, 나머지 20~30명은 보호자가 없었어요. 이들의 합의와 소송 등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와서 수락했고, 이들 20여 명과 하루에 다 계약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금방 해결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건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까지 길어지리라곤 생각하지 못 했어요.”

최정규 변호사를 포함하여 원곡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세 명이 매주 번갈아 가며 한 번씩은 목포에 내려가야 했을 정도로 이 사건의 초기 업무 강도는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장애인 학대 사건 피해자를 위한 쉼터가 따로 없어 이들을 가해자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고.

“가해자 측의 접근을 막지 못하니까, 이들이 피해자들을 만나 회유‧설득해 합의서를 받아가는 일도 생겼어요. 허무하게도요. 특정 후견인을 붙일 수 있는 정도의 장애인이 아니면 따로 사후관리를 할 수 없는 점도 너무 안타까웠죠. 장애인 피해자들을 위한 합의금 등으로 (우리 변호사들이) 몇 천씩, 일 억씩 받아줘 봐야 1년 만에 다시 노숙자가 되어 돌아오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누군가가 이들 옆에 붙어서 돈을 대신 써도 그것을 막을 사회적인 시스템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최 변호사는 ‘법률 구조만으론 장애인 권익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피해 장애인들과 생활 밀착형으로 사후 관리를 하며 일상적인 케어를 해 주는 NGO(민간 단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라는 것.

다행히도 신안군 사건으로 인해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권익 옹호기관 설치가 의무화 됐고, 그가 현재 비상근 소장을 맡고 있는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도 경기도로부터 지역 옹호기관을 위탁받아 개소를 준비 중에 있다.

“뭐가 그리 잘못 됐냐”는 염주들

적반하장이었다. 문제가 터지자 염주들은 “가족이 버리고 사회가 버리는 장애인들을 나는 모아다가 먹이고 재웠다. 그러면서 일 좀 시킨 게 뭐가 그리 잘못 됐냐”며 역정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지역 사회조차 그런 염주들의 항변에 수긍하며 끄떡이는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최 변호사가 말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생각해요. 가족조차 방치하고 사회가 꺼리는 사람들을 자신이 거두어 들였으니, 창고 같은 데 재우고 좀 때려가며 일 시켜도 ‘그래도 된다’ 생각하는 거죠. 정말 참혹한 인권 의식인데, 그러한 생각이 사회로부터 이해 받는다는 점이 저는 참 슬프더라고요.”

하지만 최 변호사를 더욱 낙담케 한 것은 피해 장애인들 스스로가 “예전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경우였다. ‘나는 섬에 살며 일하던 때가 더 좋았는데 왜 나를 데리고 나왔느냐’며 따지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그럴 때면 ‘우리는 당신의 권리와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일하고 있고, 당신은 염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며,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해 보지만, 별다른 공감을 얻지 못한 채 피해 장애인들로부터 배척당할 때엔 회의감까지 들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나아가 사회에 대한 야속함마저 싹텄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참 못했다는 소리밖에 안 되는 거거든요.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사람다운 권리를 누리지 못했던 이전의 삶이, 사회 안전망 안으로 들어온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말한다면, 우리 사회는 대체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하지만 최 변호사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라도 장애 인권 문제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불거졌으니 다행이라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노동력 착취, 학대 사례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동안에는 이것을 ‘정상’이라고 사회가 착각했고, 그래서 수면 아래에 있었죠. 하지만 신안 사건 덕분에 이제라도 이런 것들이 ‘비정상’이라고 바로 인식하게 됐어요. 이제는 시민들이 주변에서 이런 사례들이 보이면 자발적으로 신고하며 즉각 알리고 있어요. 이런 변화를 불러온 것은 잘 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 잘못한 법원, 손해배상하라”

10월 16일, 최정규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 하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정확히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잘못된 재판을 내린 법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다.

많은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변호사로서 상당한 고심 끝에 내린 결정과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염전노예 사건의 가해자 33명 중 20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저희는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았어요. 최대한 법원의 판단 영역을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 사건도 애써 ‘그냥 넘기자’라고 여러 번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은 ‘결코 그대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봉착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연은 이렇다. 1심 법원은 장애인인 피해자가 글을 읽을 수도 없고 자신의 이름 석 자 빼고는 글을 쓸 수도 없다는 점이 수사기록을 통해 밝혀졌는데도 불구, 인감도장도 찍혀 있지 않은 부동문자의 처벌불원서가 변호인을 통해 제출된 데 대하여 별다른 진의 확인 절차 없이 그대로 재판 결과에 반영시켰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후견인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확인된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취할 수 있는 사실인정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고, 그 결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한 부분이 공소기각 됐다.

그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12년 변호사 생활하면서 이런 식의 재판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요. 주변의 법조인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상한 경우’이며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성의 없는 재판’이라고 말할 부분은 아니라고 봐요. 명백히 잘못된, 부당한 재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뒤늦게 이 점을 발견한 최 변호사가 항소심에서 문제제기를 했고, 그 결과 ‘애초에 피해자와의 합의는 없었으며, 처벌불원서는 아들과 동네 주민이 피해자를 계속 찾아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서류에 지장을 날인케 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2심에서 밝혀졌다.

‘국격’ 정부 답변 보니...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법관의 판단에 대해 불법행위를 인정한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정확히는, 동료 법관의 판단에 대해 ‘불법행위’라고 판결한 용감한(?) 법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법관의 판단에 불법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한 법리를 설시한 판결은 나와 있는 만큼, 최 변호사는 그러한 약간의 가능성에 기대어 최대한 논리를 정립해서 제출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지적장애 2급 장애인인 사안에서 판사가 이런 식으로 판결했다는 점이 더 참기 어려웠어요. ‘변호사 생활을 계속 할 거면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니지 않니’라는 우려도 들었지만, 저는 이 행동이 맞다고 봐요. 대부분의 판사들을 존중하지만,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재판부에 대하여는 분명한 지적과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 최 변호사의 국가배상청구소송에 대한 정부의 답변이 얼마 전 도착했다. 최 변호사는 국가에 대한 실망이 그 답변으로 인해 한층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합의여부에 대한 사실인정은 자유심증주의의 영역이므로 법관이 어떤 식으로든 확인을 했으면 됐다’는 것이 답변의 요지다. 최 변호사는 반문했다.

“이 말은 그냥 ‘법관이 했으니까 됐다’ 아닌가요? ‘전지전능한 법관이 알아서 했으니까 된 걸로 알아라’는 말과 같지 않나요? 저는 정부 차원에서 한 답변이 이런 수준이라는 것에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여기서 국격이 읽히고 있거든요. 국가의 이 답변도 공론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의 답변에 순순히 ‘알았다’고 말할 국민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최 변호사는 일단 기일이 잡혀 있는 1월에 ‘구체적으로 법관이 어떤 식의 사실 확인을 한 것인지’를 밝히게 하고, 그게 석연치 않으면 재판장과 주심을 증인으로 부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이 부분은 변호사 몇 명이 진행하기보다는 국민의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 편이 더 적절하므로 공론화 시킬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이런 식의 (부당한) 재판을 경험하고도 앞으로의 변호 활동에 지장이 올까봐 미처 말하지 못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많을 것”이라며 “한 번쯤은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에서 변호사들에게 설문을 돌리든가 하여 이 부분 전수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보였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 경험, 굉장한 자양분”
 

   
 

최정규 변호사는 연수원을 수료하고 공익법무관으로서 검찰청 민원실에 배치됐다. 민원담당 법무관이었는데, 고소장을 검토해 민사사건으로 고소장을 낸 사람들을 상담하여 민사절차로 안내하는 역할을 1년 동안 했다.

새벽부터 각종 억울하다는 사람들은 다 몰려 왔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단은 듣는 것이 그의 일이기도 했지만, 1년 동안 그 일을 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적성임을 깨달았다.

“이 분들은 자기의 억울한 사연을 누가 들어만 줘도 상당히 고마워해요. 그런 사람들을 계속 보면서, 이런 분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가진 생각대로 지금도 우리 원곡 법률사무소는 ‘적어도 억울하다고 찾아온 사람들을 팽개치지만은 말자’라는 모토로 일하고 있어요. 이 점에 우리 세 명이 뜻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관계가 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원곡 법률사무소를 차리기 전에 그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6년을 일했다. 3년은 안산, 3년은 서울로, 두 곳 다 일이 많기로 정평이 난 지역이다.

“남을 돕는다는 면에서 적성이 맞기도 했지만, 6년간의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로서의 경험은 제게 엄청난 자양분이 되어 줬어요. 공단 소속 변호사는 어떤 사건이 와도 일단은 해야 되거든요. ‘내 전문이 아니라서, 해 보지 않아서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사건을 맡는 부분에서 두려움은 없는 편이에요. 해 보았든 아니든, 어떤 사건이 와도 일단은 부딪히는 자세가 배어있죠.”

그가 다른 두 명의 변호사와 2012년 시작한 원곡 법률사무소도 어느덧 7년차를 맞는다. 외국인 근로자나 결혼 이주민,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소비자, 청소년, 비정규직 근로자 등에 대한 공익소송에 더하여 일반 소송까지 맡고 있는 원곡 법률사무소는 업무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가 말했다. “저희도 선택과 집중을 할 시기라고 느끼면서 강약을 조절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적어도 억울하다고 찾아온 사람만은 팽개치지 말자’는 저희의 정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어떤 업무영역을 잘라내지는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 경영 컨설팅 같은 것을 받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뭐 경영이랄 것도 없지만요.(웃음)”

말끔한 외모와 분명한 인상을 가진 그였지만, 웃을 때는 영락없이 ‘사람 좋은’ 변호사의 모습이었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조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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