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7)-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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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7)-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수험생
  • 정명재
  • 승인 2017.11.28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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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원장(공무원 장원급제)

매일 필자와 연락을 주고받는 수험생이 있다. 그를 안 지는 두 달이 되어간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수험생활을 한 지 3년이 되어간다던 사연(事緣)은 많은 상담을 진행한 필자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일요일, 잠시 쉬는 시간을 내서 충남에 있는 공주대학교 기숙사로 그를 만나러 다녀왔다. 지금까지 필자를 만나러 지방의 수험생들이 노량진으로 온 적은 있지만, 직접 수험생을 만나러 지방으로 내려간 것은 처음이다. 그를 만나고,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눈을 보았을 때, 어릴 적 읽은 이솝우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한 나그네가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밝게 빛나는 등잔을 지니고 걸어오는 사람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그 등잔을 지닌 사람은 지팡이에 의지해야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그네는 놀라서 그 등잔을 든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 왜 이 어두운 밤길에 밝게 빛나는 등잔을 들고 걸어가는지요?” 그러자 등잔을 든 사람이 답했다. “내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지만, 등잔을 들고 이 길을 꾸준히 걷다보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이다.

공주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면서 공무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은 김병진 수험생(29세)이다. 거의 매일 듣던 전화기 너머의 주인공이었으며, 동영상 강의를 수강하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재잘거리며 내게 묻던 열의(熱意)에 찬 수험생이었기에 해[年]가 가기 전에 그를 직접 만나고 싶었다. 작은 키에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았지만, 팔과 다리 역시 불편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밝은 웃음과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부에 대한 열정과 타인(他人)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연의 수험생을 만났고 그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600일 이상의 밤을 새운 필자다. 영어 5점의 수험생을 만났고, 수험생활 6년이라던 오래된 수험생을 만났으며, 마흔이 넘어 공무원 수험생활을 시작하는 막막한 사연을 접하며 합격에 이르는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쳐서 합격생으로 만들었다. 밤샘 강의와 새벽 강의도 마다하지 않고 쉬는 날이라곤 추석과 설 연휴 이외에는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합격을 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합격을 시킨 그 순간부터는 날개를 단 새처럼 날아간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허무함과 배신감도 느끼기에 수험생을 가까이하지 않는 강사의 냉정함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병진이 수험생을 만나 많은 힐링(healing)을 하고 돌아왔다. 나의 강의가, 나의 책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수험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책임감과 더불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는 것은 왜일까?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중요한 세상이다.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기에는 너무 각박하게 변하는 현실이다. 늘 불평과 불만에 찬 하루를 살아가며 어려움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지금의 상황에 비관적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수험가(受驗街)에는 많은 수험생들이 있다. 필자가 만난 수험생들의 상당수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말한다.

지금은 인생에서 비루(鄙陋)하고 힘겨운 나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험기간은 잊고 싶은 시간이며 노량진을 잊고 싶은 장소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꿈을 꿀 수 있다는 것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헛되고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정이 필요하고 인내(忍耐)와 기다림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 수험생활 몇 년 간을 어렵게 공부하다가 다시 나를 만난 수험생 병진이는 지금을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를 감동시킨 수험생이기에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간 하루였다.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수업을 하였기에 몸은 지치고 피곤하였지만 다녀온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고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필자의 2년 역시 드라마틱(dramatic)하였다. 한 명의 수험생을 찾기 위해 3시간 동안 전단지를 전봇대에 붙이면 한 달에 한 명의 수험생을 만났다. 그리고 그 수험생을 합격시키기 위해 최소한 6개월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렇게 한 명의 합격생을 만들어야 또 한 명의 수험생이 나를 찾았다.

밤을 새우며 공부를 가르쳐 합격 방법을 연구한 것을 가르치지만 필자의 노력을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나를 알아주는 수험생이 지금은 적지 않지만, 그 때는 밥 한 끼 사먹을 돈조차 벌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무원 수험준비를 하는 병진이와 같은 수험생을 종종 만나는 요즈음이다. 모두 나의 스승이다. 배울 것이 많으면 그는 나의 스승이라고 늘 생각하였다. 화려하지 않은 옷차림과 왜소한 신체를 가지고 나에게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그들은 나의 선생님이며 내가 배워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늘 일깨워주는 존재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신체의 장애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시대 태조에서 세종 대까지 벼슬을 지낸 청백리(淸白吏) 허조(許組)는 척추장애를 앓았다. 또한 간질장애를 앓은 권균(權鈞)은 중종 때 우의정을 지냈고, 지체장애를 가진 심희수(沈喜壽)는 광해군 때 좌의정까지 올랐으며, 사시(斜視)였던 채제공은 정조 때 명재상(名宰相)으로 이름을 떨쳤다. 또한 8세 때 열병을 앓고 청각장애를 가진 이덕수는 영조 연간에 대제학과, 형조판서까지 올랐다.

영국의 최근 조사에서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는 윈스턴 처칠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를 이끈 그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처칠이 남긴 명언(名言) 하나를 전한다.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 안에서 위기를 찾지만, 낙관론자는 모든 위기 안에서 기회를 찾는다.”

병진이의 여정에 동행(同行)할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그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돌아오는 길은 많은 배움을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다시 필자의 몫을 할 차례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가르치고 합격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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