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괜찮아, 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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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괜찮아, 김 변호사
  • 엄상익
  • 승인 2017.11.24 11:4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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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소설가

골목길 고물상 앞 힘없이 걸어가는 가난한 노인들의 물결을 보면서 거리의 변호사 두 명이 앉아 있다. 나와 김 변호사다. 육십대 중반인 나는 30년 직업의 문을 닫을 때다. 이제 막 로스쿨을 졸업한 김 변호사는 시작이다. 이제 나는 후배에게 경험과 생각을 전해 줄 의무를 느낀다. 젊은 날의 이상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절망의 벼랑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저녁 그런 회의를 묘사한 영화 한 편을 우연히 봤다. 미국의 대학에서 한 우수한 젊은이가 NGO활동에 인생을 걸었다. 사회의 그늘로 내려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세월의 강물 위를 흘렀다. 어느새 그가 사십대 말의 나이가 되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이 대학에 지원할 나이가 됐다. 어느 날 그는 대학시절 절친하던 동창 몇 명의 화려한 성공을 보면서 마음이 납같이 무거워 졌다. 백악관 대변인이 되어 언론의 조명을 받는 친구도 있었고 펀드회사로 성공한 친구는 전용기로 세계를 누볐다. 벤처기업에 성공한 친구들은 회사를 팔아 거액을 챙긴 후 은퇴해서 천국 같은 태평양의 섬에서 미녀들과 즐기고 있었다. 모두들 화려한 성공을 거머쥐었는데 그만 실패자라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는 항상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기부를 받기 위해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말을 들어주는 척 하다가 삼분만 지나면 피하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투명 인간이 되어 버렸다. 성공한 친구들은 자기들의 모임에 더 이상 그를 끼워주지 않았다. 우정이 아니라 성공이 인간을 연결하는 고리였다. 삶에 대한 회의가 그의 영혼을 짓눌렀다. 그렇다고 지나온 인생을 지우개로 지우고 돌이킬 수도 없었다.

거리의 변호사를 경험해 보기 원하는 젊은 변호사에게 그런 절망감이 엄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김 변호사가 재벌그룹 백화점에서 직원으로 일할 때 얘기 좀 해 보지.” 내가 옆에 있는 김 변호사에게 물었다.

“매장에 있다 보니 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봤어요. 백화점에서 옷을 사간 후 3년 뒤에 와서 생떼를 쓰는 손님이 있었어요. 명품에 홀려 영혼이 없는 사람이죠. 재벌그룹인 백화점 측은 직원인 나보고 갑질을 해서 그 책임을 입점한 약한 업체에 떠맡기라는 거예요. 재벌 백화점 안에 엄청나게 많은 업체가 들어차 있죠. 엄청나게 높은 수수료를 받고 입점업체 중 실적이 하위면 쫓아낼 수 있어요. 바지 하나 만드는 데 천원이라고 치면 실제 생산비는 오십원 정도로 보기 때문에 많이 뺏어도 괜찮다는 계산이죠. 그렇게 번 돈으로 부자집안은 돈으로 성을 쌓고 그 안에 계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 안에는 예쁜 영화배우출신 사모님도 있고 없는 게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회장님이 거대한 성주가 아니라 그 돈으로 만든 거대한 벽 안에 갇히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항상 불안해들 하는 것 같아요. 투자에 실패하면 어쩌나 급할 때 어디로 도망해야 하나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돈이란 어느 정도 사기성과 불법과 손을 잡아야 크게 벌 수 있는 것 같았어요. 그 분들이 화려한 것 같아도 이제는 별로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 있을 때 저질 고객도 싫고 재벌백화점 직원으로 갑질도 싫고 해서 중간에서 차라리 제 월급으로 변상을 해 준 적도 있어요. 그러면서 좋은 게 좋다하고 타협해 가려는 제 자신을 발견했죠. 그래서 사표를 쓰고 변호사가 된 겁니다.”

“우리가 보는 거리의 소비자들 모습은 어떤 것 같아?” “제가 보기에는 가난을 무기로 또 다른 생떼를 쓰는 ‘블랙 컨슈머’들이 많아요. 어디나 영혼이 마비되어 있는 그런 존재들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존재들을 보면서 회의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얘기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아름다운 숲도 그 속에 들어가 보면 밋밋한 나무 사이의 허공이 헐거울 뿐이다. 남의 화려한 성공도 속에 들어가 보면 흡사한 면이 있지 않을까. 영화 속 주인공이 본 일확천금을 얻고 일찍 은퇴해 천국 같은 섬에서 사는 것으로 보이는 친구는 권태 속에서 알콜과 마약에 젖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전용기로 세계를 누비던 펀드회사 경영자인 친구는 투자에 실패해 파산의 불안 속에서 절망하고 있었다. 화려한 성공으로 보이는 이면은 그게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평소 열심히 일해서 품삯을 받고 잘 살 필요가 있다. 동시에 재능과 시간의 얼마라도 세상에 바치는 거리의 변호사도 괜찮다고 젊은 변호사에게 중도의 길을 말해주고 싶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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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1 2017-11-25 19:15:49
소비자얘기가 나왔으니 그냥 하는 말인데.
내가 예전에 이민갔을때 동네에 팥죽집이 있었거든.
근데 그 팥죽집에서 백인에겐 팥죽한그릇을 천원에 팔면서 흑인인 나에겐 똑같은 팥죽한그릇을 삼천원을 달라하는거야.그래서 나는 이민온 흑인이고 그들은 원래 백인이니깐 다소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달라는대로 3천원을 주고서 팥죽을 먹었지.문제는 백인팥죽비용까지 흑인에게 부담시키려면 상식적으로 새알하나를 더 넣어주고 서비스혜택을 더 주지는 못할 망정,똑같은 팥죽을 더 비싼가격에 사먹으면서 백인비용까지 부담하는 흑인을 차별하며 불친절대우까지 하는

ㅋㅋ 2017-11-25 19:06:42
요즘은 가난을 무기로 쌩떼쓰는 거지들이 백화점가서 물건 사나보네ㅋㅋ
오십원짜리바지를 천원이나 바가지 씌워 팔면서 영업방식은 아울렛수준이면 당연히 지랄하지ㅋㅋ
호구마냥 물건값 바가지쓰는마당에 일처리는 아울렛수준인냥 낭창하게 피해주면 누가 참냐?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이 백화점가서는 할인요구하고 물건값 깎아달라하고 막상 동네시장바닥이나 소규모의 영세상점가서는 바가지도 쓰고 다니고 물건값도 안 깎고 그러는거임.
그건 경제적으로 가난하다거나 부유한것과는 아~무 상관없고 필연적으로 뭔가를 소비하며 살아갈수밖에 없는 일반사람들의 걍 인식같은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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