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축약의 시대, 조작에는 승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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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축약의 시대, 조작에는 승리가 없다
  • 오시영
  • 승인 2017.11.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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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축약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변호사 시절 이혼소송을 할 때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적게는 몇 달에서부터 길게는 몇 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의 파탄난 삶을 몇 페이지의 소장으로, 준비서면으로 축약하면, 내 의뢰인은 선한 사람이 되고, 상대방은 악인이 된다.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하지 않고 배우자의 잘못만을 늘어놓은 의뢰인의 이야기를 축약해 주장하다 보면 상대방은 영낙없이 악인이 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디 상대방이라고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리가 있겠는가? 상대방 역시 같은 이유로 내 의뢰인에 대한 악행(?)을 축약해 제출하면 내 의뢰인도 마찬가지로 악인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재판이 끝날 때쯤은 조금 덜 악하게 축약된 이의 승소판결로 끝이 나지만, 쌍방 모두 만신창이가 되고, 그것이 재판기록으로 오래오래 저장되고 기억된다는 진실 하나만 남게 된다. 이처럼 축약은 모든 것을 뒤집어엎는 마력을 가진 무서운 조작이다.

18년은 너무 길다. 우리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18년의 세월은 너무 긴 세월이다. 그 18년의 세월이 축약되어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념의 갈등 속으로, 대립과 분열의 단초가 되고 있다. 모두들 그 축약된 한 인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좌우가 갈리고, 동서가 갈려서 여전히 투쟁 중이다. 사라진 자의 존재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있는데, 그 유령의 그림자를 붙잡고 산 자들이 제 생명줄의 뿌리, 생명줄의 근간으로 삼으려 아등바등이다. 자신의 정치가 없고, 죽은 자의 정치가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은 그런 면에서 여전히 미개하다. 한 쪽 축약은 그를 가난에서 국민을 먹고 살 만하게 만들어 준 부국의 아버지라며 추앙한다. 다른 쪽 축약은 그를 군부쿠데타를 통한 군부독재자로 철권을 휘둘러 수많은 국민을 죽이고 고문하고 고통받게 했다고,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의 갈등구조의 씨앗을 발아시킨 독재자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서 둘 다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그 축약은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한 것으로, 한 인간을 둘로 나눌 수 없는 근본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독재자이면서 동시에 근대산업구조의 기틀을 닦은 이라고 평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축약의 포로이다. 기질적으로 양쪽을 모두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축약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개코를 흥흥거리고 사는 사람도 넘쳐나기도 하고, 의식의 경계를 붙잡고 의도적으로 회색지대에 머무는 자도 있다. 어찌 되었든 축약은 진실을 가장 명확하게 명시하기도 하고, 가장 거짓을 조작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인식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이러한 축약의 조작에 휘둘려서는 안 되겠지만, 의외로 인간은 나약하거나 부족하여 축약의 조작에서 벗어난 달관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드디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내걸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출생한 1917년 11월 14일을 기해 100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여 그의 사진을 자유한국당 당사에 걸었다. 더불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 역시 나란히 걸었다. 하지만 차마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어찌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유한국당과 전혀 상관이 없는 대통령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유당 소속으로, 자유당과 현재의 자유한국당은 전혀 관련성이 없다. 정당의 동일성이 인정되려면 단순한 당명 개정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당과 합병이 있어야 한다. 즉 사람이 개명하더라도 동일인이듯, 또는 부모의 결합으로 태어난 자식이라면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동일한 계보를 이루듯 법인이라 할 수 있는 정당 역시 단순한 개명이나 부모의 결혼에 해당하는 정당 간의 합병이 있어야만 동일한 정당이라 할 수 있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당은 4.19의거로 소멸하였기 때문에 현재의 자유한국당과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화당 역시 10.26 사태로 인해 소멸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공화당 역시 현재의 자유한국당과 전혀 법적인 관련성이 없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민정당)과 같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자유한국당이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979년 12ㆍ12반란을 통해 군부를 장악하고, 1980년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총칼로 탄압하여 정권을 탈취한 후 세운 정당이 민주정의당이고, 민주정의당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8년 실시된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어 국회를 장악할 수 없게 되자, 야당인 김영삼(당시 통일민주당), 김종필(당시 신민주공화당, 박정희의 공화당과 달리 1987년 10월 5일 창당된 별도의 공화당)과 합의하여 3당이 합당(합병)하면서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당명을 바꾸었고, 국민의 의사와 달리 3당 야합을 통해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었지만 (구)신민주공화당계(김종필 중심)가 민자당 내부 권력 투쟁에서 김영삼의 (구)통일민주당계에 밀리게 되자 1995년 집단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이라는 당을 새로 창당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반란수괴로 구속기소하면서 (구)민자당계를 탈색해야 한다면서 1996년 2월 당명을 민주자유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바꾸었고, 다시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후보가 된 후 당시 조순 민주당(꼬마민주당으로 불리던 당)과 합당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1997년 12월 당명을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바꾸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탄핵소추 가결에 대한 국민의 거센 저항으로 역풍을 맞아 총선에서 참패하자 당시 박근혜 의원을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세우며 영등포 천막당사를 운영하는 결기를 보여주면서 2012년 2월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었고, 다시 최순실게이트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색채를 지우고자 2017년 2월 13일 다시 당명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바꾸었다.

결론적으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이 바뀌었을 뿐 별도의 새로운 정당이 창당된 것이 아니므로, 현재의 자유한국당은 민주정의당과 같은 당인 것이다. 이름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당대표는 자신의 당사에 사진을 걸려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차례로 걸어야 하는데, 남의 당 출신인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면서 자당 출신 대통령인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지 않은 것은 모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축약의 묘미(?)를 홀로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러한 축약의 조작에 사람들이 혼란을 겪겠는가, 오히려 자당 출신의 전직 대통령을 스스로 편가름으로써 욕되게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아채 버린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 당사에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김종필계)의 공동정부를 출범시키면서 2000년 1월 20일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노무현계와 동교동계의 갈등으로 노무현계가 2003년도에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며 분당해 나갔고 새천년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하였으나 패배한 후 2005년 당명을 다시 민주당으로 바꾼 후 2007년 열린우리당에서 집단탈당한 김한길계가 창당한 중도개혁통합신당과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고, 이후 중도통합민주당에서 탈당한 일부 인사와 한나라당 일부 탈당파(손학규계) 등이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이 합당하여 2007년 8월 5일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명을 바꾸었고, 정동영 후보가 2007년 제17대 대선후보로 참패한 후 민주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후 몇 번의 당명 개정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바꾼 당명이 현재 더불어민주당으로, 그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동일성은 계속 유지하여 왔다. 하지만 이 역시 축약의 또 다른 일면일 뿐이다.

2017년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제 대입수능고사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포항 지역에 밀어닥친 지진 여파로 그쪽 지역 수험생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 수능일이 일주일 연기되었지만, 어제 시험 당일 커다란 비상상황없이 무사히 수능시험이 마무리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이를 두고 포항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시험일 연기를 놓고 불평하는 이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국민의 수능연기 타당성을 인정하는 합리적 합의를 이루어냈다. 좋은 선례라고 할 것이다. 거기에 축약의 비정상이 들이닥치면 절대 수능연기불가라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고, 절대 연기라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축약이 아닌 보편적 타당성을 통해 연기가 합의되었고, 수능은 무사히 마쳐졌다.

18년은 너무 길다. 현대사에서 18년의 장기집권이 미친 여파는 축약을 통해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 인간은 누구에게나 공과가 있게 마련이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되어야 하고, 이를 합한 총체적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 그게 통합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축약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한쪽은 적폐청산이라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정치보복이라고 한다. 한쪽은 일방통행이라 하고, 한쪽은 맹목적반대만을 일삼는다고 야단이다. 모두가 축약의 실패자들일 뿐이다.

한반도 남쪽의 네 배의 땅, 인구 1,500만 명 가량, 국민소득 1,000불에 채 미치지 못하는 아프리카 동남부에 위치한 짐바브웨 공화국이 무가베 대통령의 37년 독재정치를 마감하였다. 군부 쿠데타임에도 불구하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무혈혁명이 성공하였고, 무가베 대통령에 대한 신변 및 재산 보장 조건으로 무가베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는 타협이 이루어졌다. 국민들은 기뻐 어쩔 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후임자로 내정된 짐바브웨국민연합애국전선 소속의 에머슨 음난가그와(75) 전 부통령 역시 비밀경찰 중앙정보기구(CIO)를 이끌면서 수많은 인권 탄압을 자행하여 악어라는 별명이 붙어 있고, 폭로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는 그를 “무가베보다 더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군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우리가 1980년에 맞았던 서울의 봄을 그들의 수도 하라레에서 맛보고 있다. 37년의 독재철권정치가 어떻게 축약되어 그 나라 국민들에게 평화를 줄지 고통을 줄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의 무혈혁명이 아프리카의 빈국 짐바브웨 공화국에서 일어난 것은 일단은 축하할 일이다.

좋은 지도자,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지도자가 나와서 세계 열강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세계 3위의 플래티늄(백금)이나 세계 5위의 리튬(충전지 필수 소재) 등의 자원을 지키며, 독재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축약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일단 독재자 무가베는 제외되었다. 그의 생명이 보장되고 재산이 보장되었다. 욕심꾸러기 젊은 부인 그레이스(53세)에게 대통령 정권을 물려주려던 사랑(?)에 눈 먼 무가베(94세) 대통령의 노추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연상시키지만, 이제는 다 부질 없는 짓이다. 결국 37년의 독재자 역시 자신의 심복에게 쫓겨났으니 말이다.

축약의 시대,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상징은 크다. 그러나 축약의 조작을 통해 지지세력을 결집하려 하는 것은 작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언정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진정한 지지세력의 확보는 자신의 공정함과 통창력, 지도력 등을 통해 국민적 신뢰가 생길 때 저절로 따라오는 것임을 정치지도자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하지만 오늘까지 살아온 삶에 때가 많이 묻었으니 이를 어떡하나. 씻고 또 씻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더러움을 씻어내지 않고, 조작된 축약에 인생을 거는 것은 무모할 뿐이다. 지진의 두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대학수능을 치른 포항지역, 아니 지난 12년 열심히 공부해 온 모든 수험생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대들의 답안지는 축약된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진정한 실력이다. 첫발을 당당히 내디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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