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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질풍노도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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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질풍노도의 시기
  • 신희섭
  • 승인 2017.11.24 11: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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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전임 

지랄병 총량의 법칙. 요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 중심 화두다. 중2병, 초4병, 죽이고 싶은 7살, 미운 6살, 이런 이름들로 상징되는 성장과정을 아우르는 용어다. 지금은 이런 행동을 하지만 그 ‘지랄’도 평생에 사용할 총량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 그 양을 충분히 사용하면 오히려 고등학교 넘어서면서는 달라질 것이라는 부모의 자기 안심장치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중학교 여자 아이들의 화장을 들 수 있다. 한번 씩은 일본 가부키 배우를 학교 앞 길에서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너무 과한 화장이 어색하여 쟤는 왜 저럴까 싶지만 자기 부모도 통제 못하는 남의 자식 일에 신경 쓸 필요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꼴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 부모들이 화장을 금지시키면 오히려 아이들이 밖에서 질 나쁜 화장품을 사서 바르거나 해서 피부 트러블로 더 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자 중학생 부모들은 오히려 품질 좋은 화장품을 사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랄병의 수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1970, 80년대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그 시기가 당겨진 듯하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놀만큼 놀았는데 이제 뭘 더 노냐?”라거나 “애냐? 그럴 나이 지나지 않았냐?”며 형님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지랄병을 치유하고 이제는 관조적인 입장으로 돌아온 듯이.

어른이 되면 잘 알게 되듯이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을 가고 아니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청년기를 보내다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처럼 보내기가 쉽지 않다. 사회가 자신의 응석을 잘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신체 성장을 정신 성장이 따라오면서 어른의 몸을 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지랄병이 다시 발병하기 어렵다.

사회도 사람과 비슷하다. 탄생하고 유년기를 보내고 성장하고 노쇠하게 된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사회로 바뀌게도 된다. 인생사의 우여곡절은 한 사람만이 아니라 한 사회전체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경험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각기 다르다. “그래 그런 때가 있었지”라고 동감하는 어른들도 있을 것이고 “세상 말세야 말세”라며 혀를 차는 어른들도 있다. 같은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당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머리로 공감하지만 마음으로 공감을 못 하는 어른들도 있다. 사회의 변동을 보는 입장도 같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질문이 든다.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과잉 현상을 어찌 보아야 하는가? 정치적 의식이 강해지고 정치 문화가 변화하면서 정치 참여가 증대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것이다. 세상을 이끄는 가장 강한 힘이 정치라면 자신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를 이해하고 변화를 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올바른 일이다. 그런데 모든 이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정치과잉을 우려하는 주장도 있다.

정치과잉을 걱정하는 주장의 이론적 뿌리는 꽤 깊고 길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이 서양의 출발점이다. 정치를 예의 문제로 전환하고 사회적 통제를 정치와 연결하면서 치자와 피치자의 역할을 구분하고자 했던 유교의 도덕정치는 동양의 시작이다.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걱정했던 로크와 같은 자유주의이론가들이나 프랑스혁명과 민중의 무질서를 비관적으로 본 버크의 보수주의 이론도 정치과잉을 걱정했다. 현대에는 파시즘이 정치과잉을 통해 정치제거로 이어진다는 한나 아렌트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또한 헌팅턴은 과잉민주주의 이론으로 신좌파들의 등장과 사회 전 영역에 대한 정치화를 거부하였다. 최근 민중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학자 오도넬의 ‘위임민주주의’의 비판 역시 지도자가 국민을 상대로 하여 과도한 인기 몰이로 비정치적인 분야를 정치화한다는 입장이다.

규범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보아도 최근 한국은 정치가 사회를 지배할 만큼 강해져 있다. 전 영역이 정치와 연결되어 있으며 정치화하고자 한다. 그 중 성남시의 청소년배당과 중고등학교 신입생 무상교복 지원 사업과 같은 이슈는 복지에 해당하는 이슈로 본질적인 정치적 이슈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이슈가 아닌 이슈들도 있다. 몇 가지 예를 보자. 류여해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포항지진과 관련해 최고위원회의에서 포항지진이 “문재인정부에 대한 하늘의 준엄한 경고, 천심”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발언을 했다. 이후 본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재난을 정치화했다는 점에서 비난의 중심에 섰다. 다른 사례로 북한군 귀순병사와 관련된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발언과 그에 대한 김종대 정의당의원의 ‘인격살인’발언을 들 수 있다. 총격을 받고 죽어가는 병사를 수술하고 그 수술결과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은 환자의 동의 없이 환자 상황을 알린 것에 대한 인권침해만은 아닐 것이다. 이 이슈를 가지고 북한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려고 하는 반공주의나 애국심의 상품화도 문제를 삼으려 하는 주장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공격과 방어가 기사화되면서 의료행위가 정치이슈가 된 것이다.

한국의 지금 상황은 특별한가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1968년 68혁명을 거친 뒤 사회가 새로운 정치적 참여로 폭발하였다. 한국은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지는 탄핵정국과 조기 대선으로 1960년과 1980년과 1987년 이후 다시 한 번 정치적 폭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이참에 시민들의 힘으로 고쳐보겠다는 열망과 도덕적인 정치에 대한 희구가 합쳐져서 현재의 역동성을 만들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는 어떤 이슈든지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있다. 재난이 정치화되고 의료 본연의 업무가 정치화된다. 이뿐이겠는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슈들이 국가와 정부 그리고 권력의 동심원 안으로 가고 있다.

지진이나 의료행위라는 세부적인 이슈는 잠시 놓아두고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된다. 이런 정치폭발과 정치 과잉은 과연 바람직한가? 이 현상들을 정치참여의 확대와 참여민주주의의 승전가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과잉민주주의와 민중주의의 진군가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 청소년들을 보는 어른들의 다양한 답과 같지 않을까? 무엇이든 긍정적인 것이 있고 부정적인 것이 있을 테니 어떤 논리와 기준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사회도 사람처럼 삶의 주기를 가진다면 그 관점에서 내려지는 답은 조금 다를 것이다. 한국 사회는 해방, 국가건설,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성장기를 거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사춘기일지 두 번째 사춘기일지를 떠나 우리 사회는 정치화라는 거센 파도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신체성장과 사회적 정신성장의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 과잉에 따른 갈등과 반목도 그 총량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이 상황이 좀 더 객관화되고 관용정신이 늘어나면 이 질풍노도의 시기도 역사 속 한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더 정치화되고 더 갈등하고 갈등을 해결하려고 죽을 듯이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의 한 세대가 지나가듯이 우리도 이 우여곡절 속에서 또 한 세대를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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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2018-06-14 01:47:00
이런 헛소리 나불거릴 시간에 교재 오타나 수정하시길... 구글 번역기로 책 쓰는 건가요?? 비문이랑 오타 넘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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