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박경자 시인의 “상처는 가장자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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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박경자 시인의 “상처는 가장자리가 아프다”
  • 오시영
  • 승인 2017.11.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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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가을은 사람을 웃게 만든다. 사람은 쓸쓸하면 웃는다. 울고 싶을 때 웃고, 웃고 싶을 때 우는 게 사람이다. 가을은 어리석은 자마저 현인으로 만드는 신의 선물이다. 몇몇 악당은 여전히 여름을 살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을은 쓸쓸함으로 사람의 미소를 쓰다듬는다. 가을은 스쳐지나가던 바람을 불러 세운 후 무언가 하나쯤 숨겨둔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기도 한다. 세월을 먹어 가면서 시인의 한 꼭지를 붙들고 살아온 삶이 불현 듯 고맙다는 생각이다. 수십 권의 법서를 저술하였지만 그 책 어디에서도 생명을 느끼기 어려운데, 얇은 한 권의 자그마한 시집 속 언어들은 필자의 의식을 깨운다. 아마 가을을 심하게 타는 모양이다. 서가에 꽂혀 있는 수많은, 이름이 낯설지 않은 시인들의 시집을 쓰다듬고 스쳐지나가다 박경자 시인의 “상처는 가장자리가 아프다”라는 시집에 손길이 머문다. 속표지에 2003년 가을 끝 무렵에 박경자 시인이 필자에게 전해 주었음이 사인되어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였으니 이 시집 속 시들을 지금과는 다른 느낌으로 읽혔으리라.

“염색-번짐에 대하여”의 마지막 꼭지글을 시집 제목으로 뽑은 박경자 시인의 순발력이 경이롭다. “길이 따로 없다/ 온몸이 길이다/ 손도 발도 머리도 없는 막장 같은 몸/ 몸이 길을 내어/ 온몸의 길을 온몸으로 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작정/ 맨살의 길 따라/ 아득히 젖어드는 일이란/ 서로를 서로에게 내어 주는 일이란/ 욱신대는 접경에서/ 환하디 환한 통증 견디며/ 함께 함몰되어 가는 것// 상처는 가장자리가 아프다” (전문). 증정받을 때 읽고 14년만에 다시 꺼내든 시집 속 시어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닌다.

검은 머리 사이로 새치가 보이고, 뿌리에서부터 하얌이 검음을 몰아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참아 견디지 못한다. 백이 흑보다 아름다운 것이라며, 백이 흑보다 우월한 것이라며 살아가는 것이, 살아오는 것이 일반적 의식이었는데, 유독 머리 빛깔에서만은 흑이 백보다 좋은 것이라며 염색을 시작한다. 그 작고 가는 머리카락이 평생 검은 제 길을 가다 다시 새롭게 하얀 길을 가겠다고 자기주장을 시작하면 한몸이, 온몸이 이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게 염색이다. 머릿결이 검을 때는 길이 따로 없다며, 온몸이 길이라며 온몸의 길을 온몸으로 살아내었는데, 검음과 하얌의 접경지대에서, 편안함과 아픔의 접경지대에서, 상처와 맨살의 접경지대에서 가장자리의 아픔에 민감해진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겠는가?

이 가을, 숨통을 조여 오는 역사의 송곳 같은 물줄기 앞에서 숨 막혀 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리며 국가권력을 전횡했던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임박했다. 국고손실을 가져오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의 부당사용과 직권남용 등의 죄목이다. 검음의 골방 속에서 길 아닌 길을 가며 온몸으로 사는 것이라고 자신의 삶들을 자랑스러워했던 그 권력의 힘이 하얀 머릿결처럼 삐죽삐죽 삐져나오는 진실의 힘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남의 몸에 생채기 내는 것을 조금도 서슴지 않았던 그들, 남들 상처의 가장자리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지 못했던 그들이 자신들 몸속에 깊은 상처, 치유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상처 앞에서 서서히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는듯하다. 가을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다.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군사이버사령부 댓글부대 운영과 관련한 직접 보고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일상적으로 하여 왔음이 밝혀지고, 그 자리에 동석했던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에 대한 수사가 마쳐지게 되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멀지 않았다고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상가도, 철학가도 아니다. 오직 잇속에 따라 온갖 협작과 불의도 마다하지 않은 채 돈 부풀리기에 일생을 바쳐온 기업가일 뿐이다. 어디에서 돈이 벌릴까 하는 돈냄새에 민감한 재물주의자였을 뿐이고,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커다란 수익을 올릴 것인지에 몰두한 실용주의자였을 뿐이다. 그에게는 이익이 생기지 않거나 실리적이지 않은 분야는 불필요한 영역이고, 무익한 가치였을 뿐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5천만 국민의 가치체계를 통합하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조율해야 할 뿐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국가를 운전해야 하는 자리에 앉은 것이 국가적 비극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즉 기업가의 수고는 자신에게의 이익떨어짐인데, 대통령의 수고는 전 국민의 이익일 뿐 자신에게 직접 떨어지는 떡고물이 없는 수익제로의 영역이어서 서로 걸맞지 않다. 만일 대통령이 공익적 가치관을 상실하고 사익적 떡고물에 맛을 들이게 되면 큰 일이 난다. 이처럼 재물주의자, 실용주의자일 뿐이던 그가 왜 보수라는 아름의 유령을 품에 안고 진보라는 가시를 피하려 발버둥을 쳤던 것일까? 더군다나 자신의 대통령 선거과정 및 대통령 시절의 정보 취합 등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능력 부족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그녀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를 총동원하는 불법행위를 자행하였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에 와서 추론해 보면 지금의 사태, 즉 100조 원 규모에 이른다는 4대강사업과 해외자원외교 과정상의 국고 유출 상황에 대한 수사를 회피하고자 하는, 돈, 돈, 돈의 논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대통령 시절 여전히 돈의 논리에 의해 불필요한, 대다수 국민이 반대해 온 4대강사업을 해 멀쩡한 강바닥에 돈을 쏟아 붇고, 성공불융자금제도(해외자원에 투자했다가 성공하지 못하면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쉽게 말해 떼어먹어도 되는 대출금제도)를 교묘히 활용하여 수많은 국고가 한순간에 허공으로 사라져버리게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잘못이 저질러졌을까 싶은 것이다.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에 투자하여 하루아침에 2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날려버린 사례가 대표적 케이스라 할 것이다. 2조 원을 주고 산 하베스트라는 회사가 막상 인수해 운영해 보니 깡통 회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2조 원이라는 매수자금을 손해본 것이다. 그 과정에 어찌 부조리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박경자 시인은 말한다, 염색, 그 번짐에 대하여. 흰 머리라는 것이 그렇다. 한 번 나오기 시작하면 죽을 때 흰 머리만 날 뿐 다시 검은 색 머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검은 머리가 흰 머리가 되면 아무리 염색을 한들 그건 흰 머리인 것이지 검은 머리가 아니다. 검은 머리라고 우기며 저질러왔던 수많은 권력자들의 불법행위들, 그것들이 세월이 흘러 새로운 세상이 되자 흰머리의 본색을 드러내며 삐져나오기 시작한다. 무작정 맨살의 길 따라 정체를 드러낸다. 그 접경에서 진실을 감추려 온갖 몸짓을 해보지만 무망할 뿐이다.

전병헌 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롯데홈쇼핑방송 재인가 관련 3억 원의 후원금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전병헌 정무수석은 자신이 관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이 회장으로 있었던 e스포츠협회에 롯데홈쇼핑방송으로부터 3억 원의 후원금이 전달되었고, 그 중 1억1천만 원의 돈이 조폭을 경유한 자금세탁과정을 거쳐 전병헌 수석의 비서관에게까지 전달된 과정은 확정되었으니 수사망을 빠져나가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사건 수사검사들이 보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병헌 수석에 국한해 보면 사건이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는데도 오히려 수사검사들이 보강된다는 것은 그 이후에 수사가 확대될 것이라는 암시가 숨어 있다. 이 사건은 2015년에 발생한 사건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롯데홈쇼핑 채널의 방송재인가 여부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는 당시 야당의원이던 전병헌 의원보다는 당시 여당의원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이었다고 할 것이다. 당시 힘없던 야당의원인 전병헌 현 정무수석에 대한 청탁보다는 여당 소속 의원인 최경환 등 실세 친박 인사들에 대한 로비가 더 크지 않았겠는가 하는 당위론적 생각을 해보면, 수사검사를 보강하며 수사팀을 확장하는 취지가 읽히기도 한다. 낚시에서의 일종의 미끼이론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하여튼, 세상은 점차 맑아지고 있다. 가을 하늘이 맑듯이, 대한민국의 시계가 점차 맑아져 멀리멀리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 전망치를 연초의 2.8%에서 3%로 상향 발표하였다. 내년도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IMF, 골드만삭스, JP모건 등은 모두 올해 우리 경제성장율이 3.2%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지난 3분기까지의 경제성장율을 감안하면 위 성장률은 능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년초에는 2.5%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며 부정적이었으나, 탄핵정국과 19대 대선과정을 거치며 결집된 국민의 경제성장에 대한 긍정적 활동이 무려 3.2%라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자국민에 대한 최저임금수준을 급격히 인상하는 정책을 통해 내수를 진작시킴으로써 실질 고용률 증대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중국민의 소득수준을 향상시키는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최저임금의 인상이 실업률 증대와 소득수준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리나라 대기업이나 보수층의 주장을 무색케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최저임금을 2017년 6,470원에서 16.4%를 인상한 7,530원으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최저임금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그렇다면 무디스나 IMF에서 예상하고 있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의 급격한 상승예상과 최저임금 인상정책이 맞아 떨어진다면 내년도 경제성장율은 3.5% 내지 3.8%까지 인상될 가능성조차 예상된다고 하겠다. 이렇게 되면 최근 10년 동안 2010년(6.5%, 이 성장은 그 전년 성장률이 0.7%에 불과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환율 정책으로 인해 급격하게 축소된 성장률이 다시 급격하게 늘어난 명목상의 성장일 뿐이어서 실질적 성장률로 인정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던 해이다)을 제외하고 최고 높은 경제성장률이 될 전망이다. 정치가 안정되고, 모든 것이 투명하게 되어 갑질의 횡포가 사라지고 합리적 경제논리가 작동하는 정상적인 시장경제체제가 된다면 우리의 저력에 비추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이리 되면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려는 소득주도경제성장론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성장률이 높아지게 되면 실업률이 낮아지고 고용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우리 국내 경제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 효과로 작용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10여 년이 지나 꺼내든 낡은 시집 속의 시 한 편, 그것은 10여 년 전에는 미처 걸어보지 못했던 오솔길의 산책이다. 검은 머리의 길에서 흰 머리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고, 가장자리의 상처가 가장 아프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염색의 고뇌이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혜의 사색이고, 시를 가까이 접하며 살아왔다는 감사의 기도이다. 흰 머리의 길, 내 몸 속에 난 세월의 길을 구태여 염색으로 감추려 하지 말자. 온몸으로 난 길을 온몸으로 살며, 가슴 한 편에 타인의 가장자리 상처의 아픔마저 매만지며 살아가보자. 어떤 이에게는 흰 머리의 돌출이 아픔의 시작일 것이다. 자기네 삶에 그런 아픔의 순간이, 고통의 순간이 오리라 예상하지 못한 채 십 년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다. 수많은 현상 속에서 자신의 몸속에 수많은 길이 새로 생겨나고, 옛길이 막힘을 자각하고 산다면 어찌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 수 있겠는가?

박경자 시인은 말한다. 원자 물리학에서 만물의 근원은 진동이라고, 그 작은 떨림이 생명의 원천이라고, 끊임없이 파동 치는 진동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그 파동의 율격으로 우주적 질서가 유지되고, 우리를 파동 치게 하는 시 또한 떨림이라고, 늘 보아오던 사물들이 어느 순간 새롭게 진정으로 만나지는 순간의 파장이라고. 이 가을에 한 편의 시를 읽자, 세상의 탐욕을 멀리 하고. 맞다, 14년만에 다시 꺼내든 시집에서 또 다른 파장을 만나고, 떨림을 만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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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소 2017-11-17 12:34:35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과 그 시를 오염된 정치 얘기에 섞어넣는 것이 몹시 불쾌합니다. 전 전 수석 거론하면서 야당보다 여당 의원들한테 검은돈을 더 주었겠지 미끼니 뭐니 이런 추론도 너무 함부로 하시네요. 정치인도 아니신데 모양새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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