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 가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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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가을 속으로
  • 신희섭
  • 승인 2017.11.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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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전임

은행잎. 붉게 타들어가는 단풍. 그리고 바람. 가을이다.

바람에 낙엽들이 하늘을 휘휘 젓는다. 고개를 들어본다. 고개를 들고 보니 나는 이 계절, 가을의 중심에 서 있다.

바람이 불어야 알 수 있다. 가을이 왔다는 것을. 노란 은행잎 비를 맞아야 알 수 있다. 가을이 이제는 끝자락이라는 것을. 은행잎의 폭신한 길을 걸어야 알 수 있다. 남은 은행잎이 지면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추위를 견딜 것이라는 것을.

심금(心琴). 우리 마음에 거문고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한국적인 정서이다. 또한 가을과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마음속 거문고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에도 살랑하고 울린다.

‘심금’은 옛 선비들의 그림이 떠오르게 한다. 청명한 가을하늘. 외로운 정자. 멀리 저무는 가을을 지긋이 바라보는 학처럼 고고한 선비. 가을과 함께 세상이치가 마음으로 들어오고. 그리고 고요함속 한편으로 마음의 현을 켜는.

가을은 한껏 감성을 부풀린다. 스산해진 바람이 그렇고, 더 이상 붉을 수 없게 타버린 단풍이 그렇고, 우수수 비를 내리는 은행잎이 그렇다. 그리고 이 감성은 해가 갈수록 더해진다.

왜 그럴까? 왜 나이가 들면서 가을에 감성적이게 될까? 간단한 답은 가을이 인생을 닮아있어서 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가을을 좋아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가을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들이 늘어난다. 안 보이던 가을 풍광이 눈에 들어오고. 떨어지는 낙엽이 아쉽게 느껴지고. 특히 추수를 한 논을 보면서 그리고 갈무리를 기다리는 들녘을 보면서.

상투적인 비유를 하자면 가을은 인생의 중년이다. 노년기처럼 추위에 몸을 그저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 겨울은 아니다. 그렇다고 청소년기처럼 생기 있는 봄도 아니다. 한창 뜨겁게 타오르는 청장년기의 여름도 아니다. 이제는 완숙함으로 한 해를 정리하면서 다음 계절을 여유 있게 기다린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듯이 올 한 해가 지나가면 내년 한 해가 다시 온다. 다시 봄이 오고 더위가 찾아오고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릴 것이다. 새로운 해가 올 것이고 계절이 반복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을은 한 번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은 계절에 인생을 대입하고 그 속에서 다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삶의 의지이다. 가을 감성 속에는 새로움을 만들고 싶은 생의 욕구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만 이럴까? 두 사람이 연결된 결혼도 비슷하다. 새로 만나고 신선함을 느끼는 시간을 거쳐 불이 타오르는 시기를 지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고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이도 커있고 부부의 나이는 한 참을 지나있다.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에서 육아를 하며 가장 뜨거운 시기를 지나고 나면 부부간에도 가을이 온다. 연인의 열정이 식고 가족의 온화함이 남는. 의리와 형제애로 살아가는.

누군가 이야기 했다. 부부애의 끝은 전우애라고. 산전수전을 다 거친 전우의 끈끈함만이 남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굳건하게 다가올 겨울을 같이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개인들만 계절을 타는 것은 아니다. 가을은 국가들도 탄다. 특히 동맹으로 연결된 국가들은 가을을 탄다.

마치 연인처럼 동맹의 시작은 강렬하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원한다. 연인이 선물공세를 하듯이, 자신들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동맹 국가들은 더 많은 헌신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실행한다. 다른 연적에게 자신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을 듯이. 그리고 시간이 지난다. 이제 동맹이 만들어질 때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고 계획에 없던 일들이 생긴다. 부부사이에 돈 관리를 누가 할 것인지를 두고 다투듯이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두고 언성을 높인다. 이런 관리과정을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생각하는 동맹은 이혼한다. 그리고 의리와 형제애를 나눈 부부처럼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관계가 남아있는 동맹은 가을을 같이 맞이한다. 전우애를 나눈 부부처럼 지겹지만 어떻게 하겠냐는 마음으로.

한미동맹도 부부로 비유하자면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거쳤다. 1953년 어려운 구애 끝에 부부의 연을 맺은 뒤 1964년 베트남 파병과 1969년 닉슨 독트린을 경험했다. 1970년대 주한미군철군과 1980년대 미국의 한국정치에 대한 후원과 방관이라는 모순도 경험했다. 1993년 1차 핵 위기와 2002년 2차 핵 위기를 같이 해왔다. 최근 한미관계는 한국이 진보정부일 때 미국은 보수정부이고 미국이 보수정부일 때 한국은 진보정부가 들어서면서 서로 맘 상하는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리고 2017년까지 왔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7일 국빈방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미국 대통령 중 7번째 국빈방문이라는 점과 25년 만에 국민방한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의전 상 서열이 높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현재 한반도의 위기와 긴장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이 강력한 의지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후대의 역사는 21세기를 동맹의 시대라고 평할 것이다. 18세기는 비공식적인 세력균형체제였다. 19세기는 공식화된 세력균형체제였다. 20세기는 냉전의 시대였고 이념의 대립이 중심이 된 시대였다. 그러나 탈냉전이후 21세기는 주된 적이 없는 세상에서 미국이 단극을 관리하는 시대이다. 그 중심에는 주적의 의미를 잃어버린 동맹(alliance)과 제휴관계(alignment)가 있다. 패권국가 미국에 대한 도전자와 적대국이 없는 세상에서 미국은 동맹을 이용해서 국가들을 관리하면서 21세기를 이끌고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유일한 존재인 북한을 두고 한국과 미국은 다시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어떤 무기를 구입하고 어떤 이슈를 논의했는지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제쳐두자. 본질은 트럼프 대통령이 날씨로 회항을 했지만 DMZ를 방문할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의지가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황혼의 이혼을 걱정하던 한미관계도 지금 가을을 맞고 있다. 한미동맹이 맞이하는 가을은 인생 한 바퀴에서만의 가을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해가 올 것을 알면서 맞는 가을처럼, 한미 동맹이 지금 맞고 있는 가을은 ‘삶의 의지’로서의 가을이다. 21세기를 지탱하게 될 동맹이라는 틀에서 한미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계절로서의 가을이다. 부부가 한 해 가을을 맞이하면서 더 완숙해가듯이 우여곡절 많은 한미동맹도 그렇게 같이 완숙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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