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마지막 사법시험 최연소, 만20세 검정고시·비법학의 이승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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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마지막 사법시험 최연소, 만20세 검정고시·비법학의 이승우씨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7.11.07 14:18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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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제59회 사법시험 최연소·중고교 검정고시·서울대 국사학과 3년

 

“정의를 구현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어요”

[법률저널=이상연 기자] 법무부가 오늘 사법시험 최종합격자를 발표했다.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로 시작된 사법시험은 이번 발표를 끝으로 이제 종지부를 찍게 됐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인재 등용문 역할을 해 온 사법시험은 55명의 법조인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한때 연간 1천명 이상의 합격자를 배출한 사법시험은 2009년부터 전국 로스쿨이 문을 열면서 단계적으로 축소됐다. 선발인원 단계적 감축으로 인해 경쟁의 문이 좁아지면서 수험생들의 수험기간은 점차 늘어났다. 덩달아 합격자의 평균연령도 더욱 높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이번 마지막 합격자의 평균 수험기간은 80개월, 6년 8개월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도(72개월)에 비해서는 8개월, 로스쿨 도입되기 전인 2008년(54개월)보다는 무려 26개월, 2년 이상 길어진 셈이다. 합격자의 평균연령도 33.36세로 전년도(31.87세)에 비해 1.49세, 2015년(30.57세)에 비해서는 2.79세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수험기간의 장기화로 합격자의 연령이 크게 높아졌지만 여전히 ‘소년등과’는 있었다. 마지막 사법시험에서 1996년 11월 19일생, 만 20세의 약관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그는 명문고나 특목고 출신이 아닌 중고교 과정을 홈스쿨링을 통해 검정고시로 마친데다 서울대 국사학과 재학 중으로 법학 전공자도 아니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최연소의 타이틀을 꿰찼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승우(사진)씨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로스쿨로 갈아탈 수 있었지만 사법시험이라는 외길을 택했다. 그는 마지막 사법시험이라는 막다른 길로 몰린 극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해 결국 간절히 바라던 법조인의 꿈을 이루게 됐다.

합격자 발표 후 그는 법률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합격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며 “제가 최연소라는 것은 합격에 뒤따르는 추가적인 영예라고 생각한다”고, 어린 나이 답지 않게 담담하게 최연소 합격의 소감을 전했다.

만 20세에 합격한 그는 더 어린 나이에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더욱이 법학 비전공자로서 사법시험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애초에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법대에 진학 해 법조인의 길을 가고 싶었으나, 로스쿨 제도로 인해 일부 법대가 폐지되었고 비록 비전공자라 하더라도 독학사 제도를 통해 충분히 사법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일단 사법시험에 응시하는 이상 비전공자라는 불리함은 공부에 들이는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필 왜 법조인일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정의를 구현하는 법조인이 되기를 원하셨다”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유치원 시절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를 읽고 암행어사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가장 근접한 직업이 법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 후 그는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사회를 위한 법조인의 중요성을 접하면서 법조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

법조인으로서 자신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묻자 그는 ‘속독’을 그의 장점으로 꼽았다. 많은 자료를 단기에 소화해야 하는 법조인에게 속독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아직 어린 나이와 사회생활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미숙함을 그의 단점으로 들었다.

사법시험 폐지가 임박한 가운데 도전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하자 “도전할 당시에는 아직 4번이라는 기회가 남아 있으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아직 어린나이이므로 그 경험들이 인생에 큰 양분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의연하게 답했다.

마지막이라는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도 어린 나이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무작정 암기하려 하지 않고 우선 개념을 이해한 후 그에 따라오는 법리와 견해대립 등을 암기한 것이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많은 회독 수를 채우려고 했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회독 수가 아니라 거듭되는 회독을 통해 정확한 법리를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이씨는 수험기간동안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8시부터 공부를 시작해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평일에는 하루 12∼13시간 꾸준히 공부했다고 했다. 주말에도 하루 8∼9시간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는 합격하는데 가장 중요한 마음의 자세로 ‘자신감’을 꼽았다. 누구도 합격을 장담하기 어렵고 심리적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시험이기 때문에 항상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지만 그의 수험기간은 결코 짧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건강과 매너리즘과의 싸움이 그를 힘들게 했다. 선천적인 거대 편도로 인해 한 달에도 몇 번씩 편도가 부어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고, 귀에 염증이 생겨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특히 2차 시험 기간 중 편도선염으로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 그날의 시험을 망치고 평정심을 잃었던 적도 있었다. 결국 수술을 통해 문제 부위를 제거해야 했다.

또한 수험생활 기간이 길어지면서 찾아오는 ‘일상화’가 그를 괴롭혔다. 반복되는 일상을 아무런 생각 없이 따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는 일은 수험기간 내내 그를 힘들게 했다.

2차 시험 과목에서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행정법과 민사소송법이었다. 중고교를 검정고시를 거친데다 대학마저 법학과는 거리가 먼 국사학과로 진학한 탓에 사법시험 도전을 결정하기 이전에는 거의 접할 수 없는 사례들이 낯설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과목 자체의 생소함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서 해당 법조문에 쓰인 용어를 한문 그대로 풀어서 이해하려고 했고, 회독 수를 늘리는 전략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2차 공부방법과 관련,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법조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판례는 결국 법조문의 해석이기 때문이라는 것. 특히 사례문제의 경우 관련된 판례를 암기하지 못하였더라도, 관련된 조문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판례와 유사한 법리로 사례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수만 개의 판례를 모두 암기할 수는 없지만, 조문의 경우 주요 조문은 1천 개가 채 되지 않고, 기타 조문의 경우에도 개략적인 주소를 암기해 두면 오픈 북 시험인 2차 시험 특성상 조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차 시험에서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중요한 과목은 민법이라고 말했다. 민법은 다른 과목에 비해 공부해야 할 양과 배점 모두 50% 높고, 민법을 소홀히 하면 다른 과목에서 아무리 잘하더라도 점수를 보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총칙과 친족상속법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조문이라고 말했다. 대리, 유류분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조문과 그 응용만으로도 상당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재산법의 경우, 재산법의 조문만으로는 수많은 판례를 모두 커버하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판례 위주의 학습을 했다고 말했다.

2차 마무리 전략으로는 먼저 지금까지 익힌 내용을 체계화하는 것에 주력했다. 각 과목당 2-1-1순으로 정리했다. 다음으로 최신판례를 숙지했다. 이번 사법시험의 경우 각 과목당 20점 가량이 최신판례를 묻는 문제였고, 특히 민법의 경우 시험 보름 전에 나온 판례가 출제되는 등 최신판례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험 전주까지의 최신판례를 정리해 놓고 반복적으로 공부했다.

답안작성의 노하우에 대해 그는 “답안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답안 전체의 인상이라고 생각했다”며 “한 눈에 보기에도 답안이 논리적으로 작성된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노력했고, 또한 이러한 논리의 흐름을 인상만이 아니라 실제 답안 작성에 반영하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험기간 동안 다른 수험생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공부방법이 맞는지, 공부량이 어느 정도인지 비교할 수 없어 막막함에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또한 학원 근처에서 생활하지 않고 원거리 통학을 했기 때문에 통학으로 인한 시간 관리 스트레스도 컸다고 말했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가끔 초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또한 주말에 가족과 등산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다.

수험기간 중 체력관리는 통학하며 차 안에서 틈틈이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집으로 오는 시간에는 학원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며 체력을 길렀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기간에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며 체력을 보충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은지 궁금했다. “어떠한 법조인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법조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제 자신과 가족에게만큼은 떳떳할 수 있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 정의를 구현하는 법조인이 되길 바라시는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법조인이 되고 싶다.”

존경하는 법조인으로는 초대 대법원장이신 가인 김병로 선생님을 꼽았다. 사법부의 철저한 독립을 주장하였고, 실제로 자신을 임명한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유지한 점에서 그 분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희망하는 진로에 대해선 그는 “아직 재학 중인 학생이고 사법연수원 기간과 군복무 기간도 남아있기 때문에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시간이 있다”며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정의를 구현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덧붙여 그는 본지 설문조사에서는 앞으로의 진로가 검사라고 답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감사할 분이 많겠다는 생각에 질문하며 인터뷰를 맺었다. “수험 기간 내내 저를 한 시간이라도 더 자게 하려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셔서 학원까지 차로 데려다주시고 저에게 필요한 자료를 찾아가며 조언해 주신 아버지, 언제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매끼 새로운 메뉴로 입맛을 잃지 않도록 신경 써주시고 제가 나태해질 때마다 다독이고 이끌어주신 어머니, 늘 그럴싸한 농담과 장난으로 정신적 위안이 되어 준 동생, 항상 저의 합격과 건강을 염원해 주신 할머니, 저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지원해 주셨고 가끔 불러내 맛있는 것을 사주시며 묵묵히 지켜봐 주신 이모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의 지지와 염려 덕분에 수험 생활도 견뎌낼 수 있었고 합격의 영예도 얻게 되었다. 저의 합격을 염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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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2019-12-11 00:27:56
96년생이면 만20세가 아니라 만 23세인데요??

놀자 2017-11-27 22:03:15
대단하다증말.. 부러워서 죽고싶다.

고시촌신선 2017-11-23 18:29:50
개쩌네,,

ㅇㅇ 2017-11-11 18:42:22
지잡 멍청이들은 10년을 고시공부해도 1차도 못붙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런애들이 지금 키보드로 존치운동중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ㅇㅇ 2017-11-09 16:47:36
와 진짜 인간적으로 대단하다.. 저 나이때는 놀고 싶은 마음이 많을텐데 12시간씩 맨날 공부하면서 그것도 곧 폐지되는 사법고시에 도전 ;;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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