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시간의 정직성, 적폐청산과 별빛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 시간의 정직성, 적폐청산과 별빛
  • 오시영
  • 승인 2017.11.03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시간은 참으로 정직하다. 시간은 맑은 시냇물이다. 씻기지 않는 것이 없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시간의 의미를 참으로 자주 잊는다. 역사는 시간을 잊지 않는 자들의 핍박받아 온 기록이다. 수없이 반복해 온 소리이지만, 정의는 백 번의 싸움에서 한 번 이길 뿐이다. 아흔아홉 번 불의가 이기고, 그 불의는 시간의 의미를 왜곡한다. 순간을 영원이라 우기거나 착각한다. 한 번의 승리를 위해 정의는 아흔아홉 번 패배의 고통 속에서 인내한다. 지금, 역사는 아흔아흡 번 패배해 온 정의가 승리하는, 승리할 수밖에 없는 순간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 한 번의 승리가 얼마나 오래 갈 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주 짧은 찰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도한다, 이번의 승리의 기간은 좀 길었으면 좋겠다고.

MBC 주식 70%를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여권 측 이사진이 김장겸 MBC 사장 해임안을 지난 1일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해 달라고 방문진 사무처에 제출하였다. 해임안에서 “김 사장은 방송법과 MBC 방송 강령을 위반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짓밟고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훼손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 결과 “MBC를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어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임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MBC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해임사유를 밝히고 있다. 잘못된 정권에 빌붙어 옳은 소리를 하는 MBC직원들을 부당 전보하거나 부당징계하는 등 노동법을 위반하면서 일신의 영달을 위해 반민주적이고 분열주의적 리더십으로 MBC의 경쟁력을 소진해 MBC를 쇠락의 벼랑 끝에 서게 했다며 그에 대한 해임사유를 강조하고 있다.

한 사람의 리더, 언론인으로서, 방송인으로서 자존심조차 없는 자가 권력에 붙어 자신의 출세와 이익을 위해 조직을 망가뜨리고, 동료를 핍박하며, 여론을 호도하여 국가의 기본질서를 혼란으로 인도하며 승승장구해 온 결말은 곧 개최될 이사회에서 해임이라는, 쫓겨남의 패망으로 종결날 듯하다. 그의 간신 같은 삶은 기록으로 남겨질 것이고, MBC 역사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이르러서도 그에게서 참회의 기도가 나오지 않음을 보면서, 잘못 경도된 가치를 자신의 철학으로 간직한 어리석음은 모질게 한 인간을 갉아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이사회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이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이사장 해임을 요청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영주 이사장 역시 공안검사 출신으로 70년대의 반공이데올로기에 갇혀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한 채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공언할 정도로 자기 고집에 사로잡혀 있다. 지성인으로서의 합리적 사고체계를 결여한 자들이 중요 보직에 임명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갈등구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정보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이라고 불리던 이재만, 안봉근 비서관에게 수십억 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주어 왔음이 검찰 수사결과 밝혀지고 있다. 특수활동비는 영수증조차 필요하지 않는 국가예산이다. 그러다 보니 국정원 기조실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국정원장의 내부 결제과정을 거치겠지만, 초록은 동색이라, 함께 어우러져 국가예산이 주머니 쌈짓돈처럼 여기저기 부정 용도로 뿌려지고, 그 한 사례가 청와대 비서관에게 건너 간 것이다. 청와대 비서관뿐만 아니라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과 현기환 정무수석에게도 매월 500만 원 정도의 특수활동비가 지급되었다고 한다.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아 추후 수사를 통해 자금 출처 및 사용처가 더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에는 저 특수활동비가 야당 국회의원들을 회유할 목적으로 부정사용되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모르긴 해도 위와 같은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에게 뿐만 아니라 여당이나 야당 국회의원들에게도 정치공작적 차원에서 적지 않은 돈이 뿌려지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라 안이 상당히 복잡하다. 엉킨 실타래처럼 모든 국가 질서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 이를 바로잡는데, 적폐를 청산하는데 너무나 힘이 들고, 국민들도 힘들어하고 있다.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호도하며 진실을 거짓으로 왜곡하려는 이들도 넘쳐나고 있고, 적폐의 대상인 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도 방대한 수사량에 힘들어 하고 있고, 쌓인 피로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 거기에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범죄들이 엉키고 설켜 세상을 더욱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다. 개가 사람을 물고, 사람이 사람을 물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혼탁해져버렸는지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지난 1일 내년도 예산안제출과 관련하여 국회 시정연설을 하였다.

1997년말 찾아왔던 아이엠에프의 고통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된 시정연설은 세계화라는 WTO체제의 문제점–실업증대, 빈부격차 증대, 경제저성장, 중산층 붕괴–을 지적한 후, 한국경제가 건강해진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겠는가 라는 의견을 조심스레 피력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과로(過勞)사회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슬픔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지적하고,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식과 원칙을 무시한 채 편법과 부정한 방법들이 용인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바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현상의 막바지에 세월호 광장과 촛불집회라는 이중적 구조가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가 이렇게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처방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화려한 서사가 아니라 가슴으로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고 껴안고자 하는 따뜻한 리더십을 소박한 언어로 또박또박 밝히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부정부패와 단호히 결별하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바로잡아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함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보다 민주적인 나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을 책무로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진솔하게 국회도 이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하루 8시간 일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 불평등 해소방안을 마련해야 하고(경제구조의 개선), 사람 중심의 경제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중심 경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로, 일자리와 늘어난 가계소득이 내수를 이끌어 성장하는 경제이고, 혁신창업과 새로운 산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경제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권력기관의 개혁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그 정점에 국정원 개혁이 자리잡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검찰도 경찰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신설을 위한 입법에 국회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를 발본색원할 것이며, 기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구조적인 채용비리 관행을 혁파하여, 부정행위자와 청탁자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임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한반도의 안보를 튼튼히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사전 동의 없는 군사적 행동을 결코 용인할 수 없으며, 한반도의 비핵화는 남북한 가림이 없이 공유되어야 할 가치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운전자론을 강조하고 있다. 구한말의 식민과 8ㆍ15 광복 후 분단처럼 우리 민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우리 운명이 결정되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오직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평화목적론에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도 가치를 같이 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목적이 이루어질 때가지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굳건한 한미동맹 토대 위에 군사력 우위전략을 꾸준히 수행할 필요성을 주창하고 있다. 새해 예산은 이러한 정부의 목적 달성을 위해 편성되었음을 밝히며, 구체적 사용처와 예산의 규모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적폐의 청산과 공정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의 정비,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을 사심 없이 운영해 나갈 인식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갑질이 자행되고 있고, 수많은 부정과 불의가 저질러지고 있다.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 세력이 워낙 강고하기에, 수십 년 다져진 적폐는 화강암처럼 단단하다. 그래서 저항은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은 가을, 여름내내 울창함을 자랑했던 초록의 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있다. 벌거벗고 있다. 가녀린 나뭇가지만이 실핏줄처럼 허공을 휘저을 날이 멀잖았다. 적폐의 나무들도, 그렇게 입고 있던 허위의 옷들을 벗게 될 것이고, 민낯이 드러날 것이고, 부끄러운 이브의 젖가슴과 아담의 아랫도리가 드러날 것이다. 벌거벗은 자만이 수치심을 느낄 것이기에, 시간은 그렇게 투명한 유리창이 되어 적폐의 잎으로 가리고 있는 그 허위의 몸통을 발가벗기울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냉정하다. 그냥 흘러가는 것처럼 무심를 가장하지만, 언제나 시간은 송곳이다. 가시바늘이다. 시간이 날을 세우면 피 흘리지 않을 자 누구며, 적폐의 옷을 벗지 않을 자 누구겠는가?

정진규 시인의 “별”이라는 시를 보자.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전문). 정진규 시인은 지난 9월 28일 79세로 하늘나라로 갔다. 현대시학 주간으로서, 현대시 동인으로서, 아름다운 시를 많이 남겨 놓고 영면하였다. 필자도 현대시학회 회장을 맡아 현대시학 출신 시인들과 함께 해 왔기에 선생님과의 인연은 깊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적폐세력들은 대낮의 삶을 살았다. 호의호식하며, 세상 모든 것이 자기들 것인 양 거들먹거리며, 불의와 부정과 부패를 밥먹듯이 저질러왔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죄의식도 없었다. 그들에게 시간은 정지되어 있었고, 햇빛이 쨍쨍 내리째이는 오뉴월 한낯이었다. 그들 눈에 별이 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고통당한 많은 이들은 어둠 속에서 별들을 보았다. 영롱하고, 찬란하고, 반짝거리는 별들을 보았고, 수많은 꿈을 꾸면서 수많은 별들을 낳았다.

적폐의 시간 속에서 꿈꾸며 낳았던 수많은 별들이 지금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우주의 운행질서를 올바로 곧추세우고 있다. 밤하늘 수없이 보았던 별들이 하나씩 둘씩 정의로 피어나고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별을 낳았던 이들은 적폐의 순간이 지나더라도 별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낮 속에서 살겠다며 별들과 함께 살았던 어둠이 시간들을 버려서는 안 된다. 밤하늘은 어둡지만, 아주 투명하다. 그러기에 별들이 반짝일 수 있는 것이다. 정진규 시인 같은 분이면 그의 죽음에 대해 대통령이 조화 하나 정도는 보내 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문화훈장 정도는 추서되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수많은 영혼들에게 짧은 시어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었는지 모를 한 시인을 너무 소홀히 대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별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의 세계가 아니라, 적폐로 대낮처럼 살아온 이들이 진짜 어둠 속, 쥐구멍 속에서 떨고 있다.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겁내고, 별빛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적폐 청산의 힘은 세다. 어둠을 뚫고 별빛이 반짝이듯, 아주 세다. 시간은 정직하다. 별빛이다. 떨고 있는 너! 계속 떨어라. 떨어서 남 주냐.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