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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채점에서 담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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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채점에서 담론으로
  • 신희섭
  • 승인 2017.11.03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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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전임

10월은 의미있게 어려운 달이다. 대학에서 중간고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의 중심에 채점이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시대의 인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세상으로 나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론을 통한 세상의 작동원리, 역사를 통해 앞선 이들의 세상 대처법을 알려주고 이론과 역사를 토대로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음 시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다른 어떤 일보다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의미와 보람은 채점과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채점은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평가하는 행위이다. 학생뿐 아니라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흥미롭지만 힘든 일이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까와 어떤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칠까를 기대하면서 글을 읽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평가는 다른 일이다. 평가는 객관화, 점수부여라는 기계적인 일을 동반하기 때문에 흥미로만 글을 읽는 것을 거부한다. 또한 어렵게 글을 구성한 이들을 실망시키는 일도 해야 한다. 어느 부분의 논리가 허술한지 그리고 논리전개가 어디서 꼬였는지를 이야기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채점자에게 아름다운 일만은 아니다.

채점을 하고 답안에 첨삭을 하여 돌려주기 때문에 좀 더 힘이 든다. 그래도 이 부분은 원칙이 있다. 대학 강의의 중간고사는 학생들의 글을 평가해서 돌려주는 것이다. 시험을 오픈북으로 하고 주제는 학기 초에 미리 알려준다. 학생들은 2달 동안 알려준 주제를 가지고 최대한 좋은 글을 쓰게 준비한다.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쓴 글은 읽고 전체 코멘트를 하여 다시 돌려준다.

이렇게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암기해서 시험 보는 것이 이들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암기한 이론이 일생에 한 번이나 사용될까? 둘째는 자신이 쓴 글을 소중히 여기는 습관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 이후 돌려받지 못할 답안지는 오로지 점수용이다. 답안을 쓴 순간 그 글을 글쓴이의 인생에서 사라진다. 다시 돌아올 답안지는 인생에 계속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소중하게 글을 만들 것이다. SNS의 단문이 넘쳐나는 시대에 몇 주일과 몇 일을 고민하고 몇 시간에 걸쳐서 글을 구성해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다시 채점으로, 채점은 고통스럽다. 특히 정확히 기술되지 않은 답안들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어느 부분을 수정해주는 그 지점은 보람이라는 규범과 고통이라는 현실이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채점에서 배운 것이 있다. 바로 공감력. 채점을 하면 그 글을 만들 때 논리 구성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혹은 이 부분을 구성할 때 얼마나 신났을까를 공감하게 된다. 이를 공식화하면 ‘채점부수의 증대 = (글쓰기)고통에 대한 공감력 확대’가 되지 않을까!

체계적인 글쓰기는 전과정이 어렵다. 문제제기를 하고 그 문제제기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문제제기에서 자신의 결론까지 가는 과정에 논리를 만드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쓸 것인지를 정하는 것, 무엇(설명요인 혹은 독립변수)으로 어떤 대상의 어느 부분까지 글을 쓸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글쓰기 훈련은 ‘무엇을 쓸 것인가와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의 정리과정이다. 이런 정리이후 개념적 글쓰기. 간명한 글쓰기, 논리를 통한 글의 질서부여, 입증성높이기, 지시성높이기 등등. 논리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교화하는 과정들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정교화과정은 자신의 글은 논리적 설계도를 따라 한층 한층 벽돌을 쌓아올리는 훈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원론적인 이야기 하나 하자. 글쓰기는 체계적인 훈련을 거쳐서 개선된다. 이런 연습은 자신의 글을 잘 만들게도 하지만 다른 이의 글을 잘 볼 수 있는 안목도 키워준다. 남의 이야기를 잘 볼 수 있어야 그와 다른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글쓰기 원론 끝!

개인적 글쓰기 문제에서 나와 사회이야기를 해보자. 채점의 경험이 있는 이들은 채점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몇 사람이 아닌 사회전체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전으로 치면 대학생은 지식인이다. 사회를 이끌고 갈 인재들이다. 그런 대학생들의 글을 채점하는 것이 도대체 왜 어려울까? 이것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채점에서도 똑같다. 몇 몇 학생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글을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자신 주장과 논리를 정확히 관철시키지 못 한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긴 시간동안 공교육 사교육을 넘나들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왜 우리 차세대 인재후보들은 자신의 주장을 체계화하는 것이 어려울까?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은 어디에 투자된 것일까? 물론 모든 학생들이 장래 고시와 같은 논술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것은 공부의 일반적 목적과 관련된다.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하고 정리하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관철하게 하는 것. 그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가장 발전된 사교육제도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할지나 왜 몇 페이지 않는 자신의 글을 만드는 것을 힘들어 할지는 진지하게 고려될 문제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경제논리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투자와 산출 간의 괴리. 부모와 자식들이 피를 말리면서 투자한 시간과 경제적 지출 대비 사회적 산출은 초라하다. 물론 대학에 가서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비율이 굉장히 낮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한국의 미래를 걱정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이런 변화는 새로운 방식의 대처법과 이것을 체계화한 담론의 변화를 이끈다. 4차 산업 혁명과 5세대 자본주의로의 변화가 현재 담론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이 담론은 우리가 이끄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담론을 우리가 이끌지 못한다면 다음 담론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인재들을 만들어야 한다. 5차 산업혁명 시대와 6세대 자본주의가 만나는 21세기 중반의 새로운 민주주의.

이런 담론들을 이끌어 가려면 우리는 지금 공교육과 사교육 전반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비싼 돈을 들여서 암기교육만 잘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정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현재 담론을 따라가면서 시대의 흐름을 더 잘 적응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새로운 담론을 구성할 수 있는 인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다음 세대들의 글을 보고 채점을 한다. 그리고 글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한다. 새로운 담론을 이끌 새로운 교육. 거기에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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