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쉽게 쓰이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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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 쉽게 쓰이지 않는 삶
  • 정인영 기자
  • 승인 2017.10.31 12: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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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자노트를 쓰게 됐다. 지난 5월부터 매주 A4용지 한 장의 분량에 공무원 수험가나 시험제도에 대한 생각, 무엇보다 수험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담았다. 스물 두번째의 마지막 기자노트를 쓰기에 앞서 그간의 기자노트를 쭉 읽어봤다.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이 실린 글을 다시 꺼내보는 것 자체도 굉장히 부끄러운 일인데 이런 글들이 공개되고 읽혔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한층 더 깊어졌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수줍음(shy)과 수치스러움(shame)의 중간 정도라고 느끼곤 하는데, 이 감정이 생길 때 떠오르는 시가, 시인이 있다. 바로 윤동주 시인의 ‘길’,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 등인데 시대의 엄중함 속에서 고뇌하며 자신의 시를,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 그 심정을 감히 헤아려 보곤 한다.

오랜 기간 수험생의 자리에 머물다보면 여러 가지 ‘부끄러움’이 죄스러움의 형식으로 발현되곤 한다. 경제적 능력이 제1 인간가치로 평가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모님 등에게 빚을 지며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단순한 취업의 준비로서 혹은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말지’ 하는 다소 가벼운 마음가짐이라면 조금은 덜 할 텐데, 공직자로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뜻을 품고 공무원으로 ‘쓰이고자’ 하는 수험생이라면 수험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끄러움’은 더 커지고 고뇌도 깊어지기 마련이다.

‘쉽게 쓰이지 않는 삶’이란,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이지만, ‘쉽게 쓰임 받지 못하는 삶’을 의미하기도 하고 ‘쉽게 써내려가지지 않는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쉽게 쓰임 받지 못했기에 쉽게 써내려가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야만이 쓰임받을 수 있고, 그 쓰임받는 인생대로 쓰여지게 된다.

반대로 쓰임받고, 그대로 쓰여지는 인생을 살려면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기까지 필요한 ‘시기’를 견뎌야 한다. 실패와 좌절, 안일과 나태, 기타 여러 가지 부끄러움과 죄스러움 등을 짊어지고 끝까지 버텨야 하는 시기이다.

이 ‘부끄러운 시기’는 공무원 수험생뿐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전체 삶에서 무엇을 이루고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견뎌내야만 하는 시기다. 때문에 본인이 기획한 미래의 삶을 이루기 위해 겪어내야 하는 이 시기는 부끄러운 시기가 아니라 미래와 현재의 삶 모두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시기이며 용기와 의지로 살아내는 시기이다.

윤동주 시인은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쉽게 씌어진 시였을지는 몰라도 그의 삶은 누구 못지않게 쉽지 않았다. 어쩌면 쉽게 쓰임 받고, 쉽게 삶을 써내려 갈 수도 있었던 그였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내면서도 부끄러워했고, 부끄러워하면서도 그의 길을 갔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냈던 그의 삶과 시이기에 엄청난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었을 테다.

100명중 3명도 채 합격하지 못하는 시험에 인생을 걸고, 뜻을 품고, 미래를 꿈꾸며 용기 있게 도전한 그 자체만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을 택한 결심 자체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이루어내는 것도, 그 과정을 끝까지 걸어가며 살아내는 시간도 모두 값지다.

각고의 노력 끝에 합격의 영광을 안은 수험생과 여러 가지 ‘부끄러움’을 안고 최선을 다해 정진하고 있는 수험생 모두에게 축복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붙여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고 댓글, 메일, 전화 등으로 소통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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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2017-10-31 23:14:16
좋은 글 감사해요. 힘과 용기를 갖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마지막이라니 정말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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