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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58) - 가을낙엽
차근욱  |  gosilec@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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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31  1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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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1982년에 발표된 이용의 1집 수록된 곡 중에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0월 31일이 되면 어김없이 각종 매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들어본 분들은 공감하시리라고 생각하는데, 가사도 선율도 아름다워서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상념에 젖기 마련인, 가을이 되면 그리운 노래라고나 할까. 그런 연유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듣게 되기라도 할라치면 그 자리에 서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뭐, 누가 뭐래도 10월의 마지막 밤이니까.

   

‘잊혀진 계절’을 듣게 되면 ‘낙엽’이 떠오르고, ‘낙엽’을 보면 ‘잊혀진 계절’이 떠오르는데, 결국 어느 쪽이든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하아,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10월의 마지막 밤이 지나면 이젠 11월이니 만추(晩秋)의 정취라는 인생의 선물을 놓칠 수야 있나.

얼마 전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선로 곁 곳곳에 단풍에 물든 나무들을 보았다. 더불어 길에는 낙엽이 제법 쌓이기 시작해 새삼 계절이 변했음을, 그리고 이젠 치열했던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음을 문득 떠올렸다.

‘낙엽’은 ‘벚꽃’만큼이나 계절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음을, 향 좋은 차 한 잔이 행복한, 그런 계절임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르지. 뭐, 인간들 멋대로 붙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가을이 되면 정말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바람이 선선한 곳에 앉아서 조금은 느긋하게. 뭐, 의자와 테이블이 놓아진 공원이라면 테이크아웃 커피가 한 잔쯤 곁에 있어도 좋다. 한 해 동안 이론서적만 허겁지겁 읽었다면, 이런 계절에는 문득 ‘문학’이 그리워진다. 나이가 드니, ‘소설’보다는 역시 ‘문학’이랄까. 소설이라면 재미만 있으면 되겠지만, 문학이 되려면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인생은 이런 거 아닐까? 라고 다정히 말하고 지나가는 간지러운 바람처럼.

국내 작가 중에서는 ‘박완서’선생님의 글이 좋았다. 깊이 있는 문장과 사색에서 선생님의 내공이 느껴지는 탓이랄까. 대학시절부터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라면 뭐든 모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심오한 문장도 있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좋았다. 그래서인지 박완서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더 이상 선생님의 글을 읽을 수 없고 신작을 새로 책장에 꼽아 놓을 수 없다는 것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법정스님이 떠나신 충격에서 몇 달 지나지도 않은 채였기에 더욱 먹먹하기만 했다.

삶은 부조리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문학이 있어 자신이라는 좁디 좁은 세계에서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문학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스승이 되기도 한다. 아둔한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의미를 찾을지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는 것은, 문학의 위대함 일게다.

가로수 속을 걷다 올려 본 하늘에서 노을이 가루가 되어 번졌다. 어디선가 자동차 경적음이 들리기도 했지만, 하늘은 무심해 보였다. 문득, 대학시절 전주 완산 7봉에서 보았던 하늘의 노을이 생각났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 인데 시간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뜨끈한 수제비가 먹고 싶다. 감자가 풀어져서 조금은 걸쭉한 국물에, 애호박이 총총총 썰어져 있는. 그럼 나는 후추를 듬뿍 뿌려서 호호 불며 올망졸망한 수제비를 쫀득 쫀득 씹어 먹어야지.

11월이 가기 전에,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들고 여행을 가야겠다. 조금은 길게, 그래서 가을의 시간 속에서 한 권쯤 느긋하게 읽고 돌아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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