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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진주, 과거와 새로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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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진주, 과거와 새로움을 만나다.
  • 신희섭
  • 승인 2017.10.27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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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전임 

10월 26일. 오늘은 어머니께 감사드릴 날이다. 귀가 빠진 날이기 때문이다. 날씨 좋은 가을날 어머니는 나를 낳기 위해 고생 좀 하셨을 것이다. 머리가 큰 첫 아이를 낳으셨으니.

어려서부터 음력생일을 지내왔고 그래서 아직도 음력을 따른다. 나이가 들고 나서 생일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는 별 불편이 없다. 그런데 생일을 챙겨주는 주변에서는 불편하다고 한다. 양력으로 바꾸라고, 요즘에 누가 음력생일을 하냐고,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이 고루하다고, 기타 등등. 생일 축하보다 더 많이 듣는 이야기들.

1979년에는 생일이 10월 27일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었다. 박정희대통령 저격사건 바로 다음 날이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가족, 학교, 국가 모두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어릴 때 맞는 생일이니 나는 기쁜 데 모두가 울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왜 음력 생일을 고수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꼭 양력으로 바꿔야하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여전히 음력으로 생일을 쇠신다. 여동생들은 양력으로 바꿨다. 처가도 양력으로 지낸다. 딸아이들도 양력으로 생일을 챙긴다. 아 그러고 보니 나만 중간에 어정쩡하게 끼었다.

따져보면 나만 중간에 어정쩡하게 끼인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도 그렇다. 추석과 구정은 음력을 따른다. 예전에 신정을 정책적으로 강조하던 때도 있었다. 이런 이유 말고도 신정을 지내는 가정들도 있다. 음력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한다. 그런데 또 복 덜이는 한다. 그래서 음력에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수많은 닭과 개들이 있다.

블로흐가 말한 대로 한국에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작동한다. 공존하기 어려운 시대들이 같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음력과 양력이라는 전통과 근대가 별다른 저항 없이 섞여 살고 있다. 사회 곳곳에 그렇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각기 다른 시대들의 어중간한 동거.

진주를 갈일이 있었다. 진주행 KTX 열차에서 이런 시대의 어중간한 동거에 깜짝 놀랐다. 3시간을 넘게 가는 차안에는 커피를 팔거나 음료수를 파는 카트가 없었다. 이런 수요를 몇 개의 칸에 설치된 자판기를 이용하게 되어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자판기들의 신용카드 읽는 기계는 고장이 나있고 현금은 오로지 천 원짜리만 이용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칸에 식당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한 것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특히 기차여행의 백미, 캔 맥주와 훈제 오징어를 못 먹는 불편.

KTX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현대 기술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것을 운영하는 체계는 그 속도를 못 따라가는 듯 하다. 시속 300km의 속도가 거리감이라는 인식공간을 줄였으나 다른 인식공간은 여전히 과거에 매달려 있다. 어쩌면 과거 카트에 연연해 하는 나의 인식이 지체된 것이 문제일 수도 있겠지.

시대적 부조화를 경험하면서 도착한 진주. 처음 가본 진주 역시 시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한옥형태의 역사는 KTX라는 유선형의 현대 문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진주에는 구시가지가 있고 아파트들이 빼곡한 신시가지가 있었다. 진주를 휘감고 있는 남강을 따라 가니 임진왜란 시 오랜 투쟁으로 유명한 진주성이 나왔다. 넓은 성안은 7만 진주시민들이 그 당시에 얼마나 치열하게 버텼을 지를 생생하게 상상하게 한다. 가장 오래된 망루중 하나라는 촉석루도 시대의 공존을 보여주었다. 촉석루는 한국전쟁 중 불에 타버린 것을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급히 복구하느라 고증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탓에 현재는 국보나 보물에도 끼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남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촉석루 아래 논개의 의기를 보여주는 의암이 있었다. 진주성 옆 현대식 다리에는 논개를 기리기 위해 금가락지 형상을 달아두고 있었다. 한국의 오래된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경상좌도의 관찰사가 있던 행정중심지였던 진주는 지금은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가 되었다. 주변 도시들이 커져버린 탓이다. 그렇게 시간이 진주를 변화시킨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가 변화해 간다. 급격한 시대적 변화에 사람들은 발 빠른 적응과 맹렬한 추격이 있을 때가 있다. 한편으로 일부 사람들은 강력한 보수적인 아니 정확히는 수구적인 저항을 할 때가 있으며 마지못한 순응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변화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와 겹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변화와 지속의 공존이 있다.

오랜 도시 진주에서 나는 새로움을 만났다. 교육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접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아이들 교육에 종사하신 분의 소개로 아이들을 위한 철학적 접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이 철학적 접근의 토대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철학을 창시하신 몽클레어 대학교의 고(故)매튜 리프먼 교수님의 아이디어를 듣고 이에 공감했다. 핵심은 철학적 사고를 미리 훈련하면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 창의적, 배려적 관점에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사고를 통한 교육. 이것은 미래를 맞이하는 새로운 무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천지개벽을 하고 있다. 우리가 감지하는 것보다 빠르게. 이 다가오는 거대한 폭풍우속에서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들은 “기계와 공존”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적인 것”을 찾아야 하는 딜레마에 맞닥뜨리고 있다. 과거와 현대가 어중간하게 공존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전혀 다른 시대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저항과 마지못한 순응을 어렵게 하는. 전혀 낯선 새로움. 우리 삶의 방식을 재편하고 위협할 수도 있는. 교육을 통한 창의성의 훈련. 이것은 혁신적 속도의 KTX를 타면서 과거 홍익회의 카트를 추억하는 심리적 저항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카트야 없으면 편의점에서 미리 물건을 사는 것으로 대체하면 된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변화,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큰 틀에서 지식을 암기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는 인간 세상에서의 의미 없는 지식암기는 촉석루처럼 그저 강물의 흐름과 시간의 흐름을 지켜볼 뿐인 것이다. 지금 시대는 창의성을 요구한다. 다가올 시대는 더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누군가가 있어야 활용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 = 리더’. 새로운 시대의 공식. 창의성 즉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지배하는 세상. 음력과 양력이 공존하듯이 시대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가장 확실한 방법.

자 알겠고, 그럼 다음은? 이제 남은 것은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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