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33)- 從心所慾 不踰矩(종심소욕 불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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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33)- 從心所慾 不踰矩(종심소욕 불유구)
  • 강신업
  • 승인 2017.10.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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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사상은 甲=甲이라는 정명론으로 연결된다. 정명론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명제다. 공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임금답고 신하다운지를 결정해 주는 것은 예(禮)이고, 주례(周禮)에 따르는 행동만이 임금답고 신하다운 것이라고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 공자는 다른 이유를 들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의(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개별적 인간이 아니라 무수한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적 존재다. 다시 말해 인간은 역할들의 집합적 총체의 담지자이며, 인간의 하루란 아니, 일생이란 역할 교체의 연속이다. 예컨대 집에 있을 때 아버지 앞에서는 아들로, 학교에서 선생 앞에서는 학생으로, 친구들과 있을 때는 친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또 사회적 인간관계란 언제나 상대와 짝을 이루는 관계로, 예컨대 아버지-아들, 남편-아내, 어른-아이, 친구-친구 등의 관계가 된다. 사회는 개인 역할의 집합적 총체이기 때문에 모든 개인은 어떤 역할을 맡게 되더라도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정명론이 가지는 함의이다.

정명론(定命論)은 의미 없는 동어반복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을 나누는 동시에 현실은 이상에 접근해야 한다는 명제이다. 현실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부여받은 개인은 그 역할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본질을 구현해야 한다. 공자는 변화하는 현실 속의 개체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이상을 구현할 가능성이 인간의 마음속에 보존되어 있다고 본다. 즉 공자에게 있어 甲이 甲답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보존되어 있는 이상으로서의 甲을 구현해내야 하고 이는 수양을 통해 덕을 쌓음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공자의 인(仁) 사상은 공자의 정명론이 인간의 덕의 문제로 나타난 것이다. 공자에 있어서 인(仁)은 ‘사랑함’과 ‘완벽한 인격’을 의미한다. 정명론으로 볼 때 개인의 수많은 역할 수행은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仁)의 다양한 표출이다. 한 개인이 아들의 입장에 있을 때 그 사랑은 아버지에 대해서 효라는 사랑으로 나타나고, 신하의 입장에 있을 때는 임금에 대해 충이라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남편, 형제, 친구 등등 모든 역할 수행은 결국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이 다양하게 표출된 현상이다. 충효 등 역할 수행에 따른 덕목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덕목 또한 인(仁)에 포함된다. 공자에 따르면 역할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는 것이 지(智)이며, 그 행동 방식이 예(禮)이고, 그렇게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용(勇)이다. 이렇게 볼 때 인은 모든 덕을 포괄한다. 그 모든 덕을 다 실현하면 인자(仁者)가 되는데, 인자는 곧 완벽한 인격을 갖춘 자이다.

공자는 정명론을 통해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려 한다. 이상적인 사회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구성원 각자는 우선 인의, 충서 등의 덕목을 닦아야 한다. 모든 개인들이 덕목수양을 통해 완벽한 인격을 이룰 때 역할의 집합체로서의 사회 체제가 각 개인들에게 내면화되며, 또 그렇게 되면 각 개인들이 저마다 마음먹은 대로 해도 사회 전체가 마치 ‘뭇 별들이 북극성을 에워싸고 도는 것’처럼 조화롭게 된다[공자는 논어의 爲政(위정)편에서 이러한 상태를 從心所慾 不踰矩(종심소욕 불유구)라고 하였다]

오늘 우리 사회가 매우 어지럽다. 인륜이 땅에 떨어지고 패악이 넘친다.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고 아들이 아들답지 않고 스승이 스승답지 않고 학생이 학생답지 않다. 사람들 각자가 저마다의 편리와 이익을 좇다 보니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만 간다. 우리가 오늘 오래된 책장에서 ‘공자님 말씀’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문제 해결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사회에서, 인간관계에서 부여받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뭇 별들이 북극성을 도는 것처럼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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