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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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03)
  • 박준연
  • 승인 2017.10.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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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테크놀로지의 편리와 위험

최근 줄임말로 흔히 리걸 테크(legal tech)라고 부르는 법무에 사용하는 기술(legal technology) 분야에서 화제가 된 뉴스는 모 미국 로펌에서 전략을 논의하는 팀 내부 이메일을 실수로 외부인, 그것도 우연하게도 시스템이 이메일 주소가 저장되어 있는 기자에게 보내어 그 내용이 그대로 신문에 보도되었다는 소식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메일 뉴스레터에 포함된 그 뉴스를 보고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짐작컨대 이 사고는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의 이메일 주소 자동완성 기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이메일 주소라면 로마자로 ju나 jun까지만 입력하면 남은 이메일 주소가 자동으로 이메일 주소창에 뜨는 기능이다. 특히 긴 이메일 주소의 경우에는 한글자씩 입력하고 오타가 없나 확인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꽤 편리한 기능이다.

그날 회사에 출근하여 IT를 담당하는 동료와 이 뉴스 이야기를 했다. 회사에서는 이메일에 아웃룩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이메일의 안건 기록 보존 기능, 회사 문서 첨부 기능, 문서의 버전별 내용 비교 기능 등을 포함한 기능이 추가되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아웃룩과는 조금 다른 외관(user interface)이다. 또한 회사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상대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메일 수신이나 참조란에 회사 이메일 주소 이외의 외부 이메일 주소가 한 개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경고 메세지가 자동으로 뜨도록 하고 있다. 또 전부 회신(reply all) 기능도 일부러 제한하고 있다. 동료는 실수로 이메일을 보내는 상황이 걱정된다면 자동완성 기능을 막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 그래도 자동완성 기능을 쓰겠다고 했다. 이메일 사고의 가능성과 평소의 시간 절약 효과를 고려하여 이른바 비용-편익 분석을 한 셈인데, 그래도 새삼스럽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올해 여름에 화제가 된 뉴스는 미국 법무부가 재판소에 제출한 문서 중 삭제(redaction)한 부분이 실제로는 해당 부분을 복사해서 새 창에 붙여넣기를 하면 읽을 수 있게 되어 내용이 공개된 해프닝도 있었다. 소송이나 정부 조사 등에서 증거를 제출할 때 문서 전부가 아닌 일부에만 변호사와 고객의 의사소통(attorney-client privilege), 변호사의 업무 성과물(attorney work product)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을 경우, 그 내용을 지우고 제출하는데, 이를 삭제(redaction)라고 부른다. 종이 문서로 제출하는 경우는 검게 색칠하여 지운 후 제출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경우 문서를 PDF나 TIFF형식으로 바꾸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해당 부분을 검게, 혹은 공백으로 표시하여 제출한다.

이 해프닝이 있은 후 미국 법무부는 문서의 메타 데이터(문서에 대한 정보)는 조작 가능하게 되는 오류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제대로 삭제된 문서를 법원에 제출하였지만 이미 삭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먼저 발견한 언론사가 이 내용을 독점 보도한 후였다. 역시 업무 과정에서 여러 문서 삭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입장에선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이다. 물론 예전에 검게 칠해서 제출하는 경우에도 잘못 색칠하여 문서 뒷면을 보면 내용이 보이는 실수가 있었다는 옛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이용 가능한 기술의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발생할 수 있는 실수의 가능성도 커지게 되었다. 비단 로펌이 아니고 어떤 회사나 개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로펌에서 이런 사고가 벌어지면 여파가 다른 조직에서 일어난 사고보다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뉴스를 마음 편히 읽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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