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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영화 ‘범죄도시’와 캐릭터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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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영화 ‘범죄도시’와 캐릭터 전성시대
  • 신희섭
  • 승인 2017.10.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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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 전임 

배우 마동석에게 꽂혔다. 정말 오랜만이다. 배우에게 이처럼 빠져보는 것은. 영화 ‘범죄도시’를 보았는데 후유증이 있다. 범접하기 어려운 팔뚝, 살벌한 인상, 헤라클레스와 같은 가공할 힘, 그리고 중간 중간에 보여주는 짧은 개그. 영화의 중심에 배우 마동석의 캐릭터가 있다.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구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밋밋한 줄거리이다. 사악한 악당과 불쌍한 조선족 동포들과 악당을 때려잡는 강력한 형사 주인공. 이 단순한 구성을 121분간 끌고 가는 것은 오직 마동석의 캐릭터이다. 조폭을 맨손 한방에 보내는 힘과 조폭들로부터 떡값을 받는 정도의 평범한 정의감이 현실성을 더하면서 중강 중간 쳐주는 귀여운 멘트들. 그렇게 무겁지만 무겁지 않은 캐릭터가 완성되면서 영화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흘러간다.

이런 강력한 캐릭터를 언제 만난 적이 있었던가? 최근 배우 원빈이 주연한 ‘아저씨’의 역할도 굉장히 강력한 캐릭터였다. 그 이전에 ‘강철중’이라는 영화에서 배우 설경구의 캐릭터도 있었다. 물론 이런 영화들이 대체로 주윤발로 상징되는 홍콩 느와르의 변형된 형태이다. 또한 그 원형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프랭크 네로와 같은 캐릭터를 만든 미국 서부극인 마카로니 웨스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마동석이라는 배우는 원빈, 주윤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캐릭터와는 다르다. 우선 이들처럼 잘생긴 전형적 배우가 아니다. 또한 데뷔 초반부터 스타가 아니다. 사실 마동석은 영화를 혼자 이끌어갈 주인공감은 아니었다. 다양한 작품들에서 조역을 거쳐 ‘부산행’, ‘베테랑’과 같은 1000만 영화의 조역으로 눈에 띄게 되었다. 그리고 쉽게 지워지지 않은 인상으로 화장품광고를 찍었다. 그러면서 ‘마동석 + 러블리’의 ‘마블리’로 불리게 되었다. 여기가 포인트다. 거대한 덩치와 조폭도 잡아먹을 듯 한 무서운 얼굴에 다소 초점이 안 맞는 듯한 눈을 가졌지만 그만이 발산하는 귀여움이 ‘마블리’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범죄도시’에서 보여주는 배우 마동석의 힘은 대단하다. 영화 ‘범죄도시’는 유명배우들이 총집합한 영화 ‘남한산성’이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킹스맨’과 경쟁을 하면서 전쟁터와 같은 추석 극장가에 입성했다. 초반 얼마 안되는 스크린만을 가지고 개봉한 범죄도시는 이후 본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이 돌면서 앞선 영화들을 제치고 흥행 1위에 올랐다. 물론 이 영화를 떠받쳐주는 조연들의 빛나는 연기가 있지만 흥행에서 역주행을 이룬 것은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보여준 캐릭터의 힘이다.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나와 영화관 주변을 걸었다. 그런데 영화관 주변에 변화가 있었다. 예전부터 있었던 군밤을 파는 노점이 없어진 것이다. ‘군밤 먹을래? 꿀밤 맞을래?’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꽤 오랫동안 영화관 근처 전철역 앞에서 장사를 하던 작은 수레가 없어진 것이다.

여기서 반전. 군밤을 파는 수레의 근처 상가입성. 제법 많은 손님들이 모인 곳을 보니 그곳에서 군밤 파시던 분들이 떡볶이와 간단한 분식도 팔고 계셨다. 군밤장사가 잘 되어 노점인 수레에서 업그레이드하여 상가 건물로 들어온 것이다. 주인 부부가 참 대단하다. 작은 노점에서 군밤을 팔아서 비제도권에서 제도권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것도 군밤이라는 특화된 상품으로.

그 순간 떠오른 한 가지 생각. 아 캐릭터가 있는 사람이나 가게들이 먹히는 구나. 아차 싶었다. 이미 우리는 캐릭터들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었다. 캐릭터 전성시대를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는 이미 캐릭터전성시대를 보여주었다. 과거 표독스러워 보였던 정치인보다 이미지가 부드러워진 유시민 작가의 박학다식함, 기자에서 이제는 우리나라 대표 맛칼럼니스트로 자리 잡은 황교익 선생의 음식분야의 박식함, 뇌를 연구하는데 어떤 인문학자보다 강의를 잘하는 정재승 교수의 지적인 호기심과 이를 풀어가는 능력. 이런 캐릭터들이 모여 정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에 시청자들을 집중하게 하였다.

캐릭터로 주목을 받게 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가지에 주목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을 특화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영역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만의 특징을 만들어낸 것이다. 두 번째는 다양성을 선호하는 시대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개인들의 노력을 시대가 알아주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현상이 주는 정치적 의미는 명확하다. 첫째,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다원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둘째,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specialist)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은 보편적인 인간과 보편적인 지식인(generalist)을 선호해왔다. 한국은 개인의 개성보다는 사회의 조화를 강조하는 유교문화와 사고방식이라는 전통이 근대적인 사유체계인 자유주의의 경제논리와 만나면서 획일성을 강조하는 철학과 문화를 강화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대체로 이미 서열화된 사회적 가치를 신봉하며 교육도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비판의 핵심은 전통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의 사회적 가치가 있고 전통이 있다. 또한 이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마치 큰 물결처럼.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전통자체가 아니라 획일성을 강조하는 논리가 시대 상황에 부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융복합을 이야기 하는 시대에 다른 가치와 다른 삶의 자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획일성의 논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획일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가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는 것이다. 그러니 삶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미 사고에서 배제된다. 다름을 추구하지 않으니 창의성은 거세당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모두 열심히 살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 자신을 맞추고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산다. 그러니 자신의 캐릭터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살고 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자신은 무미건조하고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지언정 캐릭터를 가진 사람들을 찾고 그들처럼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획일성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며 다른 이들의 특화된 노력에 귀 기울인다는 것이다.

새로운 캐릭터들에 대한 호감. 다른 방식의 삶을 받아들이려는 자세. 다양성을 받아들이려는 개방된 태도. 다양성에서 다원성으로 그리고 관용(tolerance)으로. 관용 즉 다름에 대한 인정의 자세. 그리고 관용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발전가능성. 영화를 보고 난 뒤 일상에서 작은 희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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