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둥이 엄마’ 신한미 판사 “아들‧딸‧아들‧딸‧아들 조합 드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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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둥이 엄마’ 신한미 판사 “아들‧딸‧아들‧딸‧아들 조합 드물죠”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10.12 15: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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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정 양립, 주변 도움 덕에 가능”
모유수유 홍보대사 맡아 활동하기도
“소년범 문제, 처벌강화 해법 아니다”
가정법원서 10년 “가사재판 특수해”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제 고등학교 동창들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학창시절 때부터 ‘결혼하면 2남 2녀를 낳을 거다’라고 말하고 다녀서 친구들이 특이하게 생각했대요.(웃음)”

인터뷰 내내 그녀는 마치 나뭇잎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여고생들처럼 자주 웃었다. ‘판사’하면 생각하게 되는 정적이고 근엄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아홉 살짜리 막내한테 맞추며 사니까 그런가 봐요.”라며 이유를 찾아 주었지만, 인터뷰를 마치자 “수다를 정말 많이 떨었네요.”라며 일어서는 그녀는 역시나 가진 분위기가 여느 판사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녀의 다둥이들, 그리고 남편 이야기

인천가정법원의 신한미 부장판사는 자녀가 다섯이다. 올해 고3인 첫째부터 9살 막내까지 아들‧딸‧아들‧딸‧아들이 고루 분포된, 보기 드문 조합의 5남매를 뒀다.

그녀가 말했다. “셋째가 자기소개를 할 때 꼭 하는 말이 있다고 해요. ‘나는 형, 누나, 여동생, 남동생이 다 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친구들이 ‘거짓말 하지 마!’라고 쏘아댄다는 거예요. 흔치 않으니까요.(웃음)”

그녀는 여행도 계획 없이 무작정 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자녀계획 역시 따로 세워두지 않아 지금의 5남매가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부부가 모두 어릴 때부터 또래 친척이나 형제가 없는 환경에서 외롭게 자란 탓에 늘 형제 많은 집의 친구들을 부러워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저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애는 저희 집안 5대 독자고, 제 남편은 4대 독자예요. 저는 늘 주변에 딸 부잣집 친구들을 부러워했는데, 제 남편도 저처럼 형제 많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고 해요. 요즘 난임 부부들이 많잖아요. 저희는 다행히 아기가 잘 생겨준 것도 감사하죠. 굳이 (아이 갖는 것을) 막을 이유를 못 느꼈다고나 할까요.”

문득 그녀의 자녀들 역시 형제가 많은 것을 좋아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신 판사는 “아이들이 각자 생각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것도 재밌죠.”라며 웃어보였다.

아래로 줄줄이 동생들이 딸린 첫째는 제법 싫은 티를 내는 편이라고 했다. 고3이라 예민할 시기이기도 하지만, 부모의 관심이 다섯 자녀들에게 분산되는 것을 못내 불편해 하는 내색을 종종 보인다고.

그녀의 9살 막내는 ‘다섯 자녀 중 막내’라는 지위의 존재감을 스스로 잘 깨닫고 있다는 설명이다. “걔는 빵점 맞아 와도 그냥 예뻐요.”라고 말하는 신 판사의 표정을 보니, 그녀의 막내가 어느 정도로 사랑스러울 것인지 짐작이 갔다.

신 판사에 따르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아이들이 많다 보니 그만큼 사건 사고가 잇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더 아이들로 인해 즐거운 시간도 많았고, 변호사라 신 판사 못지않게 바쁜 남편과는 아이들 이야기만으로도 대화거리가 늘 넘친다고 했다.

“남편과는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하다가 만났어요. 결혼을 해서 같이 살다가 함께 연수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때도 화제가 많이 됐었죠. 부부가 같은 기수로 연수원에 들어오는 경우가 잘 없거든요.”

부부가 법조인인 경우 대개는 서로 이해받을 수 있는 영역이 넓어 윈윈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다. 신 판사 역시 동일한 생각이었다.

“판사도 공무원이지만 다른 샐러리맨과 비교했을 때 업무강도가 상당히 높거든요. 회식이나 잦은 야근, 업무량 등에 대해 법조 직역 이외의 사람들은 이해를 잘 못해주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제 남편은 제가 주말에 일해야 하는 상황이면 자기가 애들 다섯 데리고 찜질방을 간다든지 해서 배려해줘요. 남편이 늘 희생을 많이 해 주죠.”

좋은 점을 이야기 했으니 나쁜 점이 나올 차례라는 생각에 남편의 단점을 물어 봤지만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저는 제 남편한테 굉장히 만족하고 있거든요.(웃음)”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일‧가정 양립 어떻게 했나 /
‘모유수유 홍보대사’ 이색활동도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다 제 앞가림을 하고 동생들을 돌보기도 하니까 힘든 것이 많이 덜해졌죠. 그래도 가끔 후배 여성 판사들이 갓난아이나 미취학 아동들을 키우면서 힘들게 일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랬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신 판사에 따르면 그녀가 첫 아이를 낳은 29세 때나 막내를 낳은 39세 때나 우리사회는 여성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섯 아이나 낳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운이 좋아서 여건이 됐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학 재학 중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신 판사는 첫 아이를 시부모님 손에 의존해서 키웠다. 지방 근무 때는 시어머니가 도맡아 키워주셨고 다시 그녀가 서울로 올라오게 되자 시부모님도 집 주변으로 함께 이사, 아이가 서너 살이 될 무렵까지 육아를 도왔다.

시간 활용이 그녀에 비해 자유로운 남편은 상대적으로 육아를 담당하는 몫도 그녀보다 더 크다. 신 판사는 ‘남편이 그 정도의 몫을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처럼 일과 가정을 양립해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전주에서 근무할 때 자녀를 맡겼던 어린이집 원장 또한 그녀에게는 큰 도움이었다. 야근이 잦다 보니 신 판사는 어린이집 문 닫을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기가 어려웠는데, 그런 그녀의 사정을 알고 어린이집 원장은 퇴근 후 아이를 자신의 집에까지 데리고 가 돌보아 주었다는 것.

그녀가 말했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들이 운 좋게도 그때그때 잘 갖춰졌어요. 그렇지 못했다면 제가 지금처럼 다둥이 엄마일 순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어린이집을 24시간 운영한다든지 하는 등으로 워킹맘의 사정에 맞춰 육아를 돕는 것은 다 정부가 해줘야 할 일인데, 아직 잘 안 되고 있죠.”

한편 신 판사는 2010년 한 해 동안 산부인과 의사, 간호사, 육아방송, 시민운동가 등이 만든 ‘한국모유수유넷’이라는 단체의 제2대 모유수유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그녀가 다섯 아이를 낳은 강남의 모 병원 주치의가 제1대 모유수유 홍보대사였는데, 그녀가 신 판사에게 다음 자리를 권했다는 것이다.

신 판사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판사가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고. 하지만 함께 근무했던 여성 부장판사들의 독려로 활동에 나서게 됐다.

“그때 홍보대사를 하면서 여성의 권리와 아동의 권리에 대해 제가 많이 배웠어요. 사실 모유수유도 엄마의 권리이기보다는 건강한 것을 먹고 자랄 아이의 권리기도 하거든요. 엄마로서 아이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모유수유만큼 좋은 방법은 없죠.” 그녀는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좋은 활동을 했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소년범 대책? “처벌강화는 아니다”

신한미 판사는 지난 7월까지 소년재판을 하다가 어느 판사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업무가 바뀌어 지금은 가사재판을 하고 있다.

소년재판을 하면서 그녀가 만난 청소년들은 대개가 어릴 때 부모와 떨어져 지낸 경우였다. 즉 어릴 때 부모와 애착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소년들이 소년재판을 받으러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실제로 유아동기에 부모와 애착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것은 사람의 인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판사 역시 같은 생각이라며 “그런 아이들은 사회를 신뢰하지 않고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많은 소년범들을 대했을 그녀이기에, 소년범들이 보이는 공통된 성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에 따르면 소년범들은 대개 감정조절이 안 되고 자기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가정환경 등에 큰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정서적 결핍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 위법성이란 것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데, 심지어는 자신의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 다 이유를 갖고 있다고.

예를 들면 “저 애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때렸다”는 식이다. 신 판사는 그런 아이에게 “네가 보기에 상대방이 맞을 짓을 했다 하더라도 폭력을 행사한 너의 위법성이 더 큰 거야”라고 이야기 해 주어도 해당 소년이 그 말 자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많이 봤다고 전했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들이 늘 자기 기준으로만 생각해봤지 자신의 행위가 남으로부터 어떻게 평가받을지 스스로 생각해본 일이 없기 때문인데요. 이건 이 청소년들을 올바로 교육해주고 가르쳐줄 사람이 부재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봐요. ‘다른 친구의 행동이 거슬릴 때 네가 취해도 되는 방법은 폭력과 같은 불법적 행동이 아니다’란 것을 알려주고 훈육할 수 있는 보호자가 이들에겐 없었으니까요.”

한편 그녀는 최근 이슈가 된 부산 여중생 사건과 관련하여 사회가 보인 반응에 대해서는 다소 안타깝다는 심경을 전했다.

오랜 기간 일선에서 소년재판을 해오면서 ‘(제대로 된) 보호자의 부재’가 소년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절감해 왔다는 그녀는, 사회가 도무지 이런 소년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늘 야속했다고 한다. 평소에 사회가 이들을 돌보고 관심을 가져 주었다면 사회적 비용도 절감하고 더 근원적인 해결이 됐을 거라는 의견이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이들은 투표권도 없고 사회적 영향력도 없으니까 이들을 위해 무얼 하겠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늘 사회적으로 관심 밖이고 소외되어 있다가 이렇게 한 번씩 문제가 될 때에야 반짝 관심을 받죠. 하지만 평소에 무관심하다가 표면에 잠깐 드러났을 때 관심 갖는 정도로는 근원적인 대책을 생각해 내기가 어려운데요. 소년 범죄 문제에 대해 처벌 강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여요.”

더구나 전국의 소년원이 과밀화에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시설적인 부분에 대한 고려나 개선 논의는 없이 무턱대고 처벌만 늘리자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설명이다.

가정법원 10년 근무...
“우리 가정법원 더 발전할 것”

 

신한미 판사는 2005년에 처음 생긴 ‘가사소년 전문법관’으로 선발된 이래로 10년간 가정법원에서 근무했다.

잠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사 단독을 맡기도 했었다는 신 판사는 가사재판과 일반재판을 상호 비교하며 가사재판의 특수성을 짚어줬다.

그녀에 따르면 우선 가사사건은 법률문제로서만 취급하여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민사재판의 경우 물건이 누구 것인지,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줘야 하는지 등 권리 관계만 확인해 주면 대개가 끝이 나는 구조지만 가사재판은 그렇지 않다고.

한 번의 판결로 사건이 무 자르듯 판가름 나는 게 아니고 당사자들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에도 개입할 필요가 생긴다는 것이다.

가사재판에 있어 이 같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여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그런 인식이 점차 커졌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적극 받아들이고 발전을 거듭한 끝에 현재 우리 가정법원은 부모교육이나 상담, 전문가 진단 등이 상당히 활성화된 상태라고 그녀는 전했다.

“2005년도만 해도 우리가 일본의 우수한 제도를 배우면서 발전을 도모하는 입장이었는데 2011년에는 일본이 우리 가정법원의 제도를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으로 입장이 바뀌었어요. 얼마 전에는 일본 NHK 방송이 서울가정법원의 면접교섭센터와 협의이혼시 의무상담제도 등을 취재해 가기도 했고요. 우리가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을 이루었죠.”

그렇다보니 가정법원은 유관기관이 많다. 신 판사도 상담위원, 조정위원, 소년원이나 보호관찰소 관계자, 상담센터 직원, 경찰 등 다양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 토론하며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고.

“일반법원에서는 재판만 하면 되는데 가정법원은 좀 특수한 면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성격이 사교적이라 재판만 하려면 좀 밋밋하고 심심하고 그렇더라고요.(웃음)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포럼 등 행사도 많이 갖는 가정법원이 제 성격과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한편 전문법관 출신인 그녀는 전문법관제도와 전문법원제도가 상당히 좋다고 평가했다. 판사가 보통 2~3년 마다 업무가 바뀌는데, 전문법관은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어 그것이 재판의 질 향상과 법학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그녀는 내다봤다.

전문법원제도 역시 같은 취지에서 긍정적으로 봤다. 그녀는 “우리 특허법원 같은 경우 그 우수성이 세계의 흐름을 주도할 정도라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해요. 저희 가정법원도 앞으로 더 많이 일할 것이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법원이 될 것입니다.”라고 장담했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안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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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7-10-17 17:49:38
기사재밌어요 ㅎㅎ 인테리어 보니 법원앞카페에서 인터뷰한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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