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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적폐청산은 착하고 사람답게 살기 운동
오시영  |  sunwhis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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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9  12: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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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밝음 가운데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다. 따라서 밝은 대낮에 아무리 어둠을 가져다 놓아도 어둠은 스스로 자신을 잃고 사라지고 만다. 마치 침묵이 말 한 마디에 사라지듯 어둠은 빛 가운데에서 사라진다. 반면에 아무리 어둠이 크고 넓더라도 작은 불씨 하나를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 작은 불씨는 큰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당당하다. 제 존재감을 잃지도 않는다. 이게 어둠과 밝음의 차이라면 차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9월말, 대한민국의 최대화두는 “적폐청산”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며 그만 두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적폐란 말 그대로 “누적될 대로 누적되어 쌓여 있는 폐단”을 말한다. 국어사전은 “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옳지 못한 경향이나 해로운 현상”을 “폐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사람은 적폐, 즉 누적된 폐단을 청산하지 말자고 하는 것에 대해서 여태 우리가 교육받아 온 지성과 배치된다고 느끼게 된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지난 9년의 특징은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헌법과 법률을 유린한 범죄행위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국가 공권력의 행사는 그 자체가 폭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가는 강제로 국민으로부터 돈을 빼앗아가고, 시간을 빼앗아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빼앗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국민의 합의에 의해 정부에게 그러한 폭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도록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위임의 범위를 넘어서서 공권력을 남용하게 되면 이는 폭력 중에서도 가장 악하고 나쁜 폭력이 된다. 지난 60년 간 적대시해 온 북한 정권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얼마나 죽임을 당했을까? 정확한 통계를 알지 못하지만 많아야 300명 남짓 되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부기관 등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죽임을 당한 숫자는 얼마나 될까?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사법살인, 거창난민학살사건, 제주4·3사태로 인한 제주도민학살사건, 4·19의거 당시 피해자,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무고한 시민 학살 등 자체 피해자가 몇 백 배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부기관이 국가 공권력을 잘못 사용하면 얼마나 잔인한 결과가 유발되는지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공권력이 잔인한 폭력이 되지 않도록 국민은 정권을 잡은 이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은 무식했지만, 솔직하게 국가공권력을 행사한 측면도 있다. 다시 말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을 남영동 대공분실이나 서빙고동 등의 모처로 붙잡아가 보란 듯이 고문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여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물고문을 해서 죽이고, 최루탄을 쏘아서 죽이고, 총을 쏘아서 죽였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남해안 바닷가에서 죽고, 산에서 떨어져 죽고, 참으로 많이도 죽었다. 까닭에 죽임을 당하는 자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일반 국민도 국가가 불법적 폭력을 동원하여 국민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랬기에 저항할 수 있었다. 저항하다가 붙잡혀가 다시 고문당하고 두들겨 맞기도 했지만, 인간의 의식은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저항하고 또 저항하여 6·29선언을 받아냈고, 87년 헌법체제를 그나마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있는 국민의 저항을 두려워해서인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가난하고 배고프게 만드는 고도의 비열한 전략”을 구사하였다. 합당하게 배분되어야 할 국가 세금을 화이트리스트 명단 속 사람들에게 끝없는 자비를 베풀고, 블랙리스트 명단 속 사람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는 이중정책을 사용한 것이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제발 사람답게 살자는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쫓아내고, 주어야 할 돈을 주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이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허기지게 만들었다. 연극배우를 무대에서 쫓아내고, 가수를 공연장이나 티비 등 방송에서 쫓아내었다. 그리고 활동무대를 열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육신을 배고프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을, 영혼을 황폐화시켰고, 이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정서의 고갈과 문화의 향유를 빼앗아갔다. 반면에 아부와 찬양을 통해 자신들의 부조리를 감추고 오히려 혹세무민하는 낯 두꺼운 철면피들에게는 좋은 자리, 많은 돈, 엄청난 권력을 안겨주었다. 약아빠진 인간들은 그러한 시류를 잘 알아, 차를 갈아타고 배를 갈아탔다. 역사가 시간 속에서 운행한다는 그 소박한 진리를 외면한 채 부정한 권력이 천년만년 갈 줄 알았다가, 촛불혁명으로 상징되는 정권교체를 통해 자신들의 민낯,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던 온갖 비리들이 하나둘씩 까발려지자 이를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저지해 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에 이어, 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이 표면에 드러나고, 이어서 기무사령부와 국방부가 깊이 관여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이 정치 공작을 허락하고, 청와대에 보고한 문서들에 결제 사인한 사실들이 공식문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김관진 전 국방장관을 출국금지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오래 전 보수논객이라고 자처하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에 대한 자금출처가 의심스럽다며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국정원이 앞장서서 변희재 씨의 미디어워치 설립과정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자금 지원을 국정원이 하였음이 밝혀졌다. 이렇게 감추어진 비밀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진실은 묘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物)은 시간이 흐르면 썩어 사라지게 마련인데, 역사의 진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며 비형상에서 형상으로 변이되는 특이한 속성을 갖는다. 우리는 지금 비형상의 형상화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한 마디로 특징지으라면 필자는 “얼렁뚱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세상에는 원칙주의자와 타협주의자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원칙을 고수하고 양보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는 당시에는 답답해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게 옳았구나 하는 판단을 받게 된다. 타협주의자는 원칙과 현실을 잘 조화시켜 당시에 가장 적합한 결론을 얻어내기 때문에 당시에는 제일 좋지만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원칙이 무너지게 되는 폐단이 있다. 그런데 얼렁뚱땅주의자는 모든 기준이 “자기 이익 여부”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익이 되면 법이나 원칙도 무시되고 그 이익을 덥석 물게 마련이다. 반면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 전에 해온 자신의 말과 행동을 모두 부정하면서라도 등을 돌린다. 이런 얼렁뚱땅주의자는 진정한 상인이 아닌 장사치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속성이 있다. 진정한 상인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이익 못지않게 거래하는 상대방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 역시 공정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익에 함몰된 장사치는 순간의 이익에 집착하여 거의 사기꾼 수준의 이익추구에 골몰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익에 골몰하는 사람은 계산이 영악스럽고 재빠르다. 의심이 많고,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수많은 가상세계를 예측하는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대처해야겠다는 계산을 맞춘 다음에 행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어 있다. 모든 단서는 계획을 수립하는 본인에게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그렇고, 이제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그 역할을 넘겨받을 듯하다. 그런데 어찌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에서 멈춰질 것인가? 얼렁뚱땅은 총체적인 것이기에, 다음에는 당시의 교통부장관에게서 4대강개발사업의 단초들이 제공될 것이고,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에게서 해외투자개발사업의 비리 단초들이 나올 것이다. 나아가 이에 연루되어 떡고물을 얻어먹었던 일부 정치인들, 여야 국회의원들의 초라한 비리들이 드러날 것이다.

적폐청산의 물꼬가 이렇게 어디로 흘러들지 알 수 없게 되자, 아니 곧 나에게 닥쳐오겠구나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의 최후 발악이 서서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600만 불 뇌물수수사건의 재수사라는 프레임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야당 정치인들의 이러한 프레임 저항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한 프레임 전쟁 승리를 위한 무기가 고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집권 여당일 때에 자신들이 거짓 프레임을 만들면 그 거짓 프레임이 진실 프레임으로 탈바꿈되는 신기한 기적(?)을 수없이 목격하면서 자신들 스스로마저 그 거짓 프레임을 진실 프레임으로 믿는 착각, 착시 현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리 거짓 프레임을 진실 프레임인 양 획책한들 거짓 프레임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반기적(?)의 역설만이 확실해진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실이 국민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감추기 위해 거짓 프레임을 만들고, 또는 자신들이 사리사욕을 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실 프레임을 만들면, 그것을 실행해 주는 우호적인 국가기관이 있었고, 거짓 함성을 질러주는 우호적으로 조작된 보수단체들의 시위가 있었고, 이를 진실인 양 떠들어주는 엉터리 언론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작동케 하는 거대한 자금줄이 있었고, 그들의 논공행상에 나누어 줄 공직 및 수많은 자리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게 되어 버린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아직 그러한 현실 변화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여전히 종전의 거짓 프레임 전략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은 것이다. 국민들은 발가벗은 임금님의 참모습을 보아 알 듯이 거짓 프레임을 짜면 짤수록 그게 거짓 프레임이라는 사실만을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될 뿐이다. 그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여야대표 초청 청와대모임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연속되는 참석 거부와 일 대 일 면담이면 응하겠다는 시대착오적 주장이 나오고, 국민들 대다수가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고 동의하는데, 엉뚱하게 적폐청산을 하면 안 된다고 적폐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보수는 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 국가의 질서를 지키고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보수의 핵심가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을 위반한 사례가 있으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그 환부를 도려내고, 잘못을 시정해 다시는 그러한 위법사례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그런데 적폐 정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자유한국당이 입으로는 보수정권이라고 하면서 행동은 위법행위를 은폐하고 적폐를 청산하지 말라고 주장하니 보수정당이 맞아 하는 국민적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긴 연휴의 시작이다. 한가위 추석이다. 많은 국민들이 연휴 기간 동안 많이 쓰고, 많이 놀고, 많이 즐겼으면 한다. 너무 부지런해서 십년 뒤 먹을 것까지 걱정하며 놀지 않고 쓰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는 우리 국민들이 이번 연휴기간 동안에 “내 평생에 이렇게 호의호식한 적이 없다.”라고 스스로 자평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먹고 잘 놀고 잘 살았으면 싶다. 10년 뒤 먹으려고 저금해 놓은 것 조금 쪼개서 이번 연휴에 왕창 썼으면 한다. 물론 이 연휴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수많은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남들은 해외여행이다, 국내여행이다, 맛있는 것 먹는다 놀러간다 하는데도 당장 끼니걱정을 하거나 치료할 돈이 없어 쩔쩔매는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이런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에게도 따뜻한 한가위 추석 명절이 될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다 해 줄 것을 촉구한다. 기독교,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단체들도 내부 권력싸움에 함몰되지 말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돌보는 종교의 본심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적폐의 청산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적폐 청산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적폐 청산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골고루 국가로부터 상응한 대우를 받는 존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 주변에 혹시 여러분의 손길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분은 없는지 한 번만 되돌아봅시다. 그리고 “내 평생 딱 한 번 착한 일 했어”라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착한 일”을 그냥 해 버립시다. 음냐 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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