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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31) - 생존(生存)과 유희(遊戱)
강신업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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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9  12: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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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생존은 모든 생명의 지향이다. 생존한다는 것은 곧 살아남는다는 것이고 생존게임에서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생존엔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존한다는 것은 또한 생명에너지를 외부로부터 얻는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생존에너지를 스스로 얻지 못할 때 다른 생명 에너지원에 기생(寄生)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사멸(死滅)할 수밖에 없다. 인간 역시 이런 자연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생존은 생존게임에서 성공하고 스스로 삶의 에너지를 마련할 때만 영속 가능하다.

유희는 모든 생명의 목적이다. 생명의 목적이 오로지 존재하는 것에 있다면 이것은 맹목적인 것이 되고, 오로지 자손을 남기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허무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생명의 목적이 유희에 있다고 할 때 비로소 생명 자체의 존재 이유가 그나마 그럴듯해 진다. 어쨌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유희적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바, 때문에 인간 존재의 많은 양태는 유희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방식으로든 유희를 추구하는바, 어쩌면 인류 문명의 역사는 인간이 일로부터 탈피하여 유희의 시간을 늘려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일이 생존 에너지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유희는 생존 자체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인간 본성에 보다 가까운 것은 일이 아니라 유희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음악이든 시든 그림이든 간에 모든 예술은 인간의 유희와 관련된 것이다.

일이 아닌 유희가 인간 본성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동물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동물들은 먹는데 많은 시간을 쏟기는 하나 그들은 생존을 위해 먹을 뿐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기동물들이 엄마 젖을 빠는 순간을 빼고는 거의 항상 어떻게든 까불대며 놀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데서 이러한 사실을 안다.

유희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인간의 생존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존의지를 작동시킬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생존의지는 유희에서 그 동력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유희는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도 그것 자체로서 흥미를 느끼게 되는 활동을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유희가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고 할 때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유희를 제거한 상태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가사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인간다운 삶이 아닌 그저 살아 있는 생물로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심지어 독일의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 1805)는 “인간은 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만이 완전한 인간이다”라고 하였거니와 유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 요소다.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희하는 인간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명제는 성립한다. 유희하는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인간이다.

인간 유희의 정점에는 사랑이 자리한다. 사랑은 인간이 생존과 유희를 결합시킨 것으로 인간의 계속적 존속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다. 때문에 인간을 말할 때 사랑을 빼고 나면 더 이상 실체형용(實體形容)이 불가능하다. 사실 인간이 보다 인간다워지고 인간의 본성에 충실해지는 방법은 사랑이라는 유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물론 여기서 사랑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차원의 개념이 아니라 높은 경지의 정신적 승화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렇게 되지 않고선 사랑은 인간 사회를 영속시키는 유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인륜적이라고 하는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심지어 소년들까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악행을 태연히 저지른다. 그들에게는 범죄가 하나의 유희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위 ‘범죄유희(犯罪遊戱)’라는 것이다. 소년범죄를 막기 위해서 소년법을 개정하고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것이 소년법을 개정해서 될 일은 아니다. 가정과 학교를 사랑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이미 너무나 많은 가정이 그리고 학교가 진정한 의미의 생존이 불가능한 폐허로 변해 버렸다. 이러한 폐허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쩌면 생존을 위해 범죄라는 몸부림을 치는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가정과 학교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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