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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아마추어의 아마추어를 위한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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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9  12: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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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문재인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이 외교에서 빛을 발휘하고 있다. 우왕좌왕이 심하다. 화성 14형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임종석 비서실장은 분 단위로 무슨 일이 있었고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를 알려주었다. 대국민 안심용. 이것은 투명성이 부족했던 전임정부의 영향이 크다.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도 불구하고 대화론을 계속유지했다. 그리고 800만 불의 대북인도적 지원카드도 꺼내들었다. 몇 일전에는 미국의 B-1 랜서 폭격기가 동해의 북방한계선을 유유히 지나갔지만 이 작전이 한국과의 정책조율 속에서 나온 것인지를 정부는 명확히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다.

일관성의 부족. 민주주의의 소통이라는 원칙과 안보의 비밀유지성이 충돌하고 있다. 또한 대북온건파와 유화파들의 주장과 대북강경론이 충돌하고 있다. 여당대표와 대통령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런 비일관성은 미국과 북한간 말폭탄 전쟁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과연 이 위기를 헤쳐갈 수 있는지와 우리의 동맹국가인 미국과의 정책조율은 가능한지를 걱정하게 만든다. 그래서 안보에 대한 불안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위기상황이 되면 안보불안을 증폭시키는 이들이 있다. 안보불안으로 안보 장사를 하는 집단도 있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발언권을 키우려는 연구소나 개인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지금 한반도는 시장이 열린 상황이다. 그래서 전쟁이 날 가능성이 몇 프로이고 전쟁이 나면 매일 2만 명씩 죽어갈 것인지 라는 구체적인 수치도 이야기 한다. 국내단체나 국제기구든 경제에 민감한 단체일수록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고 한국경제가 어떤 불확실성이 생길지를 예측한다.

그렇다고 ‘안보무사태평론’을 믿고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돼!”라고 무사태평하게 지낼 수도 없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것도 아니지만 너무 늘어지게 관객처럼 있어도 안 된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문제는 정부가 너무나도 아마추어같다는 것이다. 정부가 아마추어 같다는 생각은 현 정부가 일관성있게 대처를 못하고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대화론이나 인도적 지원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이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의 핵심은 민주주의와 안보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본래 민주주의는 아마추어들인 ‘인민(demos)’이 통치하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처음 민주주의를 구현했을 때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인민의 통치 즉 보통 사람의 통치였다.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이라는 평범한 이들이 정치체제를 운영하면서 의회에서 입법도 하고 500인평의회에서 행정도 맡아보고 재판에서 배심원의 역할도 하였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대의민주주의의 토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민주주의는 본래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이들을 위한’ 정치체제였다. 링컨이 조국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이야기 한 대로 ‘인민의(of the people), 인민에 의한(by the people), 인민을 위한(for the people)’이다. 달리 말하면 ‘아마추어의’ ‘아마추어에 의한’ ‘아마추어를 위한 정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보는 아마추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민주주의의 원형을 보여준 아테네에서도 안보를 다루는 장군은 민주주의에서 비껴있었다. 10명의 장군은 선출되었는데 이것은 군인의 능력이 중요했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안보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아테네를 통해서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아테네가 기원전 406년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스파르타에게 이겼다. 그런데 아테네 원정군은 난파선의 선원들을 구하지 못해 익사하게 만든 불행한 사고가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원정군을 이끈 아테네 장군들은 병사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일부 장군은 이 상황을 미리 알고 망명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안보 위기에서 구해줄 장군이 없자 가장 강력한 패권국가인 아테네도 스파르타에게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안보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안보는 민주주의의 원리대로만 운영되기에는 복잡한 사안들이 많다는 것이다. 처칠은 독일의 비밀전문을 알아내는 암호해독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공군이 영국의 도시를 폭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칠에게 이는 딜레마였다.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폭격을 허용해야 하고 영국시민을 구하기 위해 공습경보를 울리면 독일에게 암호해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게 되는 것이다. 처칠은 결국 전쟁승리를 택했다. ‘전쟁 승리’라는 대 명제 앞에서 처칠은 자신의 시민들이 독일군의 폭격으로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또한 처칠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자신이 그렇게 끔찍하게 싫어하던 스탈린과도 손을 잡았다.

미국과 북한이 말폭탄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평화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런데 평화는 안전이 확보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대화를 하고 인도적 지원을 통해서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다. 평상시라면 이런 정책을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겠나?

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이런 정책제안들은 국내정치에서 평화를 만들어내자고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틀별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한국안보정책 결정이 미국 특히 워싱턴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아왔다. 워싱턴의 정책결정은 미국 국민들이 하기 때문에 북한은 남한 대신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지으려고 해왔다. 이런 기조는 김정일과 김정은으로 이어져왔다. 그래서 북한은 대한민국을 위협하지 않고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전략에 대해 한국이 미국과 동떨어진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북한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지를 좁히는 것이다.

안보문제는 민주주의에서 정권을 지지하는 이들의 목소리만을 반영하는 민주주의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평범한 인민들을 위한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하는 정치체제라고 해도 안보는 그 사안의 복잡성으로 인해 프로페셔널한 공간이다.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이 적다고 해도 그 좁은 공간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가 내세울 논리는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대한민국도 대북 제재를 가하고 강력한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과 이런 정책은 국제사회의 일치된 견해라는 점이다. 현재 국제사회의 규범은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는 것이며 북한도 이를 따르는 것이 정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정책을 바꿀 것이라면 같은 민족구성원으로서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돕겠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안보 논리와 국제사회의 규범논리를 제시해야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중국도 압박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아마추어의 아마추어를 위한 정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좀 더 프로다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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