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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33)-3.15 부정선거, 민중은 바람보다 늦게 울지만 더 빨리 일어난다.- 김수영, <풀>
이유진  |  gosilec@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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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6  12: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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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남부고시학원 국어

국사전공지식 : 이재혁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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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외부의 시련인 ‘바람’에 맞서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민중의 모습을 ‘풀’로 형상화한 현실 참여시입니다. <풀>, <폭포>, <눈>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수영’ 시인도 1950년대 말까지는 그저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썼습니다. 그랬던 그가 현실 참여 시인이 된 계기는 ‘4.19 혁명’이었습니다.

4.19 혁명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였습니다. 정부는 이전에 이미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비상수단을 써서 장기집권을 유지했죠.

발췌개헌 전, 야당의 의석이 여당인 자유당의 의석을 압도하였고, 이승만에 대한 지지가 무너지면서 자유당도 내분을 일으키고 있었죠. 기존의 국회 간선제 방식으로는 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희박했습니다. 이승만은 전쟁 중이라는 비상사태를 이용하여 헌병을 동원해 야당 국회의원들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당과 야당의 개헌안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국민직선제 방식을 통과시켰죠.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또한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중임 제한을 철폐하기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단행하였습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회에 존재하는 의원의 2/3가 개헌에 지지해야 합니다.(의원 정족수) 자유당은 1954년에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3선 제한 조항을 철폐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헌법 개헌을 국회 표결에 붙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국회 재적 의원 203명 중 135명만 찬성표를 던졌고 60명이 반대, 7명이 기권하면서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부결되었습니다. 자유당에서 203명의 2/3는 135.333인데 자연인은 소수점 이하로 처리할 수 없다며 정족수는 135명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른바 ‘사사오입’ 논리였죠. 이에 따라 부결이 취소되고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1956년 또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두 번의 불법적인 장기 집권 시도로 분노한 민심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 결과에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승만이 504만여 표를 얻어 당선되기는 했지만,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신익희나 조봉암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부통령 선거에는 야당의 장면 후보가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고요.

1960년 정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 무렵, 미국과 소련의 사이에 화해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반공을 기치로 내거는 이승만 정권을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고,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점차 줄여 나갔습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이승만을 포함한 자유당 후보들은 1960년에 있을 정부통령 선거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했습니다.

이에 이승만 정권은 부정선거를 계획했죠. 최인규 내무부 장관은 각 도지사, 시장, 군수, 경찰서장들에게 공문으로 부정선거 계획을 지시했습니다. 그의 계획은 ‘4할 사전투표’와 ‘공개투표’ 등으로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을 85%까지 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당 선거위원이나 참관인들은 매수가 되지 않으면 테러를 가하거나, 고의적으로 시비를 걸어 투표소에서 퇴장시키고 그것도 어려울 경우 이들의 직계 가족이 사망했다는 허위 정보를 전달해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 강력한 경쟁후보였던 민주당의 조병옥이 급사하면서 이승만의 당선이 확실해졌습니다. 이제 대선의 관심사는 부통령 선거로 모아졌죠. 당시 자유당 후보는 이기붕, 민주당 후보는 장면이었고, 많은 유권자들이 장면의 부통령 당선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당은 이기붕을 당선시키고자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노골적으로 시행했죠. 각 투표소에 정·사복 경찰관을 배치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야당 참관인의 접수를 거부하고, 3인조 강제 편성 투표를 하고, 공개 투표를 강요하고, 기권을 강요하고 대리로 투표를 하여 무수한 유령 유권자를 만들어내고, 투표 개시 전 무더기 표를 투입하는 등...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부정과 불법 행위가 난무했습니다.

재야 각계 인사를 중심으로 ‘공명선거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전국 주요 도시에서 고교생들이 부정선거 규탄대회를 열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3월 15일 밤 개표 과정에서 이승만과 이기붕의 득표가 95~98%에 육박하는 지역이 속출하였고, 이승만은 86%, 이기붕은 73%의 지지를 받아 당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말했습니다. ‘풀’은 바람보다 늦게 울지만 더 빨리 일어난다고. 3.15 부정선거는 민의를 명분으로 오히려 민의를 짓밟은 독재 정치의 결과였습니다. 야당 세력과 학생, 지식인, 일반 시민들이 이승만 정권의 각종 부정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전국에서 일어났고,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자유를 위하여 /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 / 노고지리가 / 무엇 보고 / 노래하는가를 /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김수영, <푸른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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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과 제1공화국,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 서중석, 역사비평사
2)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현대사교육총서 5,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윤성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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