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관리질’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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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관리질’ 하지 마세요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7.09.22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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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제일 심한 말 중 하나가 “꼭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고 한다. 심한 말이라고는 하지만 꽤나 많은 자식들이 들어 본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기자도 그 많은 자식들 중의 하나에 속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속을 썩는 데는 정말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진로나 결혼과 같은 인생의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정말 아주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자식은 부모의 속을 썩이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밥을 잘 안 먹는다거나 오히려 너무 많이 먹는다거나, 공부를 너무 안한다거나 반대로 너무 열심히 해서 다른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기자의 경우 타고난 반골 기질이랄까 반항기랄까 하는 부분이 ‘똑같은 자식 낳아봐’라는 말을 들은 원인이 됐다. 스스로 납득하거나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좀처럼 굽힐 줄 모르는 아이였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했고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아이기도 했다. 언제나 “왜?”가 따라붙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찌 쉬웠겠는가.

여기저기 뾰족뾰족 모난 돌이었던 아이는 나이를 먹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다듬어졌고, 이제는 꽤나 둥글둥글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가끔 “왜?”라며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는다.

최근에 “왜?”라는 질문이 떠올랐던 순간은 한 토론회를 취재하던 중이었다. 무려 30년을 이어온 논란, 민사소송의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 여부에 관한 토론회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자는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반대한다. 도입해야 한다는 측에서 도입해야만 하는 많은 이유들을 제시했지만 도무지 설득이 되지가 않았다.

법원 업무 경감으로 보다 충실한 재판이 가능해지고 돈은 좀 들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으니 궁극적으로는 사법복지가 실현된다고 하는데, 법원의 업무가 과중하다면 판사를 늘리거나 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지 국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해서 해결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돈을 들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다 편하게 소송을 할지 패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소송을 수행할지를 왜 당사자 자신이 결정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 중 일부는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국가의 후견적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자식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부모가 손을 놓아줘야 하는 일들이 있고 떠나보내야만 하는 시기가 있듯이 국가의 후견적 역할에도 분명히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가 있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를 두고 생각해보자면 변호사 강제주의의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제안한 것처럼 스스로 소송을 하려는 당사자들의 선택권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더 잘 소송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필요한 정보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또 정말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국선변호인 등 법률구조제도를 확충하는 것이 국가가 할 수 있는 후견적 관리의 적정선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로 사법시험을 폐지해야 하는 사유 중 하나로 제시된 ‘고시낭인’ 문제와 변호사시험 ‘5탈제’를 들 수 있다. ‘인력낭비’니 ‘국가적 손실’이니 하는 이유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진로에 관한 선택을 제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보호’와 ‘관리질’은 다르다. 그 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개선’이라는 포장으로 누군가의 권리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정말 너무 좋은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선택하지 않는 것 같다면 그걸 잘 알리고 홍보해라. 그런데도 그 좋은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거다. 더 좋게, 기꺼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개선해라. 다른 선택지를 빼앗아서 울며 겨자 먹도록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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