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30) -사이버 사디즘, 사이버 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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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30) -사이버 사디즘, 사이버 나르시시즘
  • 강신업
  • 승인 2017.09.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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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얼마 전 SNS에 240번 버스기사를 향한 비난이 쇄도했다. 한 제보자가 ‘240번 버스운전기사가 아이가 혼자 내렸으니 세워달라는 엄마의 애원을 무시하고 달렸다’는 목격담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버스기사는 졸지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급기야 서울시가 조사에 나서고 노선 상 “안전문제 때문에 정류장이 아닌 곳에 버스를 세우고 사람을 내리게 하기는 어려웠다”는 발표가 나왔다. CCTV가 공개되고 경위가 확인되면서 소위 240번 버스괴담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인터넷에 글을 올렸던 첫 제보자가 공개 사과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버스기사와 그 가족이 엄청난 고통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과거 유럽의 마녀사냥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부활하는 느낌이다. SNS를 이용해 개인 누구나가 1인 뉴스공급자가 되고 난립하는 인터넷 언론이 여과 없이 받아쓰는 일이 많아지면서 무고한 시민이 인터넷 대중들로부터 무차별 인신공격을 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일단 누군가가 자신의 목격담이나 간접 체험한 사실을 그럴듯하게 양념을 쳐서 인터넷에 올리면 이후 이에 동조한 인터넷공화국의 시민들이 각자 자신의 주관을 더해 실체를 부풀려 거듭 유통시키고, 이 과정에서 공격대상을 향한 분노와 저주의 말들이 여과 없이 쏟아진다.

인터넷에서의 공격이 가혹한 것은 인터넷의 자기검열기능의 부재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현실세계와 달리 다른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렇게 보장된 익명성은 많은 경우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을 괴롭히는 사디즘(sadism)으로 전환된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자신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때에 이르러서는 현실에서와 전혀 다른 광기의 주체가 된다. 실체를 드러낼 필요가 없는 모니터 속에서는 현실의 제약 때문에 하지 못하던 행동이나 생각도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다. 내 현실적 정체를 감추고 나를 익명의 다수 가운데 하나로 자리바꿈 시키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남을 공격하고 비방하는 것이 쉬워진다. 이것이 검열 받지 않는 정체성이다.

한편 SNS에 취한 사람들은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애착을 갖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런 식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과도해지면 자신과 다른 상대에 대해 근거 없는 비판과 욕설을 퍼붓게 된다. 현실 속에서 얼굴을 서로 맞대고 이야기할 때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상대의 생각과 의사를 되물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대화는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정제되고 정화된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자기애적(自己愛的) 확증편향성(確證偏向性)을 가진 송신자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해석되어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실재와 가상의 자아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에 대해 서술한 디지털 시대의 주도적인 사상가 셰리 터클(Sherry Turkle, 1948~)은 1997년 펴낸 『스크린 위의 삶(Life on the screen)』에서 현실세계에서는 인식론적 자아가 존재론적 자아에게 굴복하지만 사이버공간에서는 육체를 떨쳐버린 인식론적 자아가 주도권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현실세계의 정체성은 육체와 직업에 의해 규정되는 단일한 정체성인데 반해 사이버공간의 정체성은 생각과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온라인에서 만들어지는 자기 아이덴티티는 즉각적이고 즉흥적이며 미완성인 것인데다 기분과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사물에 대한 성찰과 자신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연대감 형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인터넷에서는 더욱 절제하고 자제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터넷에 올리거나 다른 사람들을 따라 무차별적으로 저주에 가까운 욕설을 퍼붓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한다. 특히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인터넷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디즘이나 나르시시즘에 빠져 남을 다치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은 분명 또 다른 하나의 세계다. 그러나 그 곳 역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곳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은 피와 살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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