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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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99)
  • 박준연
  • 승인 2017.09.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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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가방 속의 주사위

회사 내부 회의로 짧게 홍콩에 다녀왔다. 출장 전에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 전후로 다른 일 때문에 바빠져서, 편도 4시간 남짓, 왕복으로는 9시간에 가까운 비행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지만, 정작 홍콩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이메일로 연락이 오갔지만 처음 보는 동료들을 보니 비디오나 전화 회의에서는 얻지 못하는 대면 회의의 좋은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같은 회사라서 같은 간판, 비슷한 로비, 리셉션, 회의 공간과 개별 업무 공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지역의 특색을 느끼는 것도 즐겁다. 처음 도쿄로 와서 창 밖으로 보이는 도쿄의 빌딩숲 풍경을 보고 경탄했던 것처럼, 홍콩 오피스에서 보이는 바다와 빅토리아 항구의 풍경은 가끔 갈 때마다 넋을 잃고 보게 된다. 또 그곳에선 당연한 것이 방문하는 사람 입장에선 신기하기도 하다. 아침 회의에 맞추어 나온 패스트리, 과일과 함께 아침 식사에 딤섬과 홍콩식 국수, 디저트가 들어간 도시락이 나온 걸 보고, 도시락의 사진을 찍는 나를 보고 양 옆자리에 앉은 친한 동료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 도쿄 돌아가기 전에 우리가 맛있는 딤섬집 데려가야겠다.

회의와 다른 일정을 마친 후, 같이 일하고 중국 출장도 함께 가면서 친해진 T가 윙크를 하면서 물었다. 노래방 갈 거지? 그리곤 T가 오후 일정 마치고 일하느라 가져온 서류, 업무용 노트북 컴퓨터에다가 도쿄의 동료들에게 가져다 줄 쿠키 상자로 꽤나 무거워진 내 가방을 다른 동료 D에게 맡겨서 들게 했다. 노래방에 도착하고 방이 나기를 기다리면서 대기실 겸 게임룸, 분홍색 플라밍고 장식을 보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며 D가 말했다. 여기가 아주 일반적인 홍콩의 노래방이야. 음정과 박자는 엉망이어도 노래방가기는 싫어하지 않는 내가 이 팀과 노래방 가는 건 처음이 아니지만, 홍콩에선 처음이었다.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북경어)를 배울 때 익힌 옛날 중국 노래를 부르면 홍콩의 동료들은 웃으면서 칭찬해주었다. 홍콩에 있는 동료들도 출신지역, 변호사 자격이 있는 곳이 조금씩 달라서, 한국 출신으로 뉴욕에서 로스쿨을 나오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도쿄에서 일하는 나는 이들과 말이 잘 통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선택하는 곡도 각양각색이지만 아는 노래가 나오면 함께 부르면서 왁자지껄한 금요일 밤을 보냈다. 또 주사위 다섯 개로 하는 유명한 게임도 배웠다. 일명 거짓말 게임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게임이라는데, 마이크와 함께 당연하다는 듯 주사위와 게임을 할 수 있는 컵이 손님 수에 맞춰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토요일 밤에 도쿄로 돌아와, 의미도 있고 즐거운 출장이었지만 역시 집이 최고지, 하는 나다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일요일엔 밀린 일을 하기 위해 홍콩에 가져갔던 서류를 꺼냈다. 그러자 가방 바닥에서 작은 주사위 한 개가 나왔다. 몇 초 생각한 끝에 금요일 밤의 주사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당장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주사위 사진을 찍어 금요일 밤 함께 있었던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가방에 이런 게 있었는데, 금요일 밤은 지금 생각해도 즐거웠어. 몇 분도 지나지 않아 T의 답장이 왔다. 내가 떨어뜨린 모양인데 바닥엔 아무리 찾아도 없더니 네 가방에 들어갔구나. 그러게 말야, 금요일엔 네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

나는 늘 내 자신을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로는 클라이언트를 돕고 이야기를 듣고, 또 내가 이야기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내성적인 부분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일 외의 측면에서는 본래의 내성적인 성격이 드러날 때도 없지 않고,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기가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다. 이번 회의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일을 하며 이야기가 통하는 동료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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