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원세훈 파기환송심 판결, 김민효의 “빛나는 완전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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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원세훈 파기환송심 판결, 김민효의 “빛나는 완전한 범죄”
  • 오시영
  • 승인 2017.09.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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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완전한 범죄”는 과연 이 세상에서 가능할까? 그것도 “빛나는, 완전한 범죄”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 완전은 완전한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다시 말해 가능성일 뿐 완전한 자가 반드시 완전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완전은 완전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질 수는 있겠지만, 완전자가 언제나 완전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 성경 창세기 속 하나님 이야기를 읽으며 창조자라는 하나님마저도 완전체를 만들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를 닮은 자”를 만들겠다고 만든 게 인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바람이었을 뿐 창조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뜻대로 완전하지 못해, 뱀에게 꾀임을 받고,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알게 되고 만다. 비로소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선악을 아는 순간, 인간은 하나님이 생각하고 있었던 완전체에서 완전체가 아닌 결함체에 불과하였음이 완전하게 정의된다. 다시 말해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선악을 알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기 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인간은 선악을 알지 못했다고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두 가지 상념에 잠긴다. 하나는 말 그대로 선악을 알지 못하기에 그 행위에 선악이 있을 수 없어 모든 생각과 행위가 완전무결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기 전까지는 인간에게 선악을 구별할 수 없는 의지와 분별력이 없었기에 그냥 하나님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것이다. 성경은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을 하나님이 분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것으로 귀결하지만, 그리하여 인간이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고통 중에 있게 하지만,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에덴동산에서의 방출은 인간의 신으로부터의 독립이고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게 됨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행동하고 책임지며 살아가는 주체적 인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복합적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민효는 자신의 초단편소설 “빛나는, 완전한 범죄”에서 완전한 범죄, 그것도 빛나는 완전한 범죄는 “범죄가 누군가에게 발각되지 않은 동안 가능한 결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의 동명 제목의 소설집에는 41편의 초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통상적인 단편에 비해 훨씬 분량이 짧은 순간순간의 현상들을 카메라 렌즈로 잡아내듯 묘사한 소설들이기에 초단편소설이라고 칭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수록된 소설마다 제각기 송곳 같은 예리함이나 날선 비수의 날카로움으로 독자의 심장을 후벼 파내는 독특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김민효는 “빛나는, 완전한 범죄”에서 자동차를 주인공으로 의인화한다. 울산바위가 보이는 진부령 어디쯤에서 한 남자가 주인공 자동차를 일부러 고장 낸 후 설악산 줄기를 향해 오줌을 갈기는 순간 이를 알지 못한 한 여자가 주인공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고장 난 주인공을 제어하지 못한 채 계곡으로 추락하고 마는, 그리하여 발견되지 못한 채 여자가 자동차 안에서 백골이 되고, 그 해골 사이에서 썩어진 여자의 몸이 양분이 되어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장면을 주인공 자동차의 시각으로 담담히 묘사하고 있다. 김민효는 소설 어디에서도 남자가 무슨 이유로 여자를 죽이기 위해 주인공 자동차를 고장 내는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막연하게 김민효 소설가가 작품의 마지막 꼭지로 남긴 자동차 광고 카피 – 당신도 몰랐던 당신의 모습을, 몹시도 두근거렸고 아팠지만 아름다웠던 사랑을, 나는 당신과 함께 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자동차입니다. 당신의 빛나는 인생입니다–를 통해서 상상해 볼 뿐이다.

계곡 속에 추락한 자동차, 그 안에 백골로 변해버린 여자, 그 여자의 해골, 눈과 입과 코를 뚫고 자라는 양치식물과 이름 모를 꽃들, 아직은 완전 범죄이다. 소설 속 남자가 추락하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듯 자동차 뒤편에서 다른 계곡을 향해 오줌 줄기를 힘차게 내뿜었던 남자 주인공의 범죄는 아직은 완전 범죄이다. 그것도 빛나는, 완전한 범죄! 작가는 이 상황에서 멈춰서 있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아직까지만”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그 자동차는 발견될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번호가 인식될 것이고, 관련자의 범위가 좁혀질 것이고, 해골이 되어 버린 여자의 신원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멈춰서야 한다. 예리한 관찰자는 남자 주인공이 자동차를 고장내기 위해 일부러 자동차에 전자 센서들을 고장 낸 흔적을 발견해 낼 것이다. 하지만 무책임한 방관자라면 이러한 흔적들을 찾아내지 못한 채 운전 부주의에 의한 단순교통사고 피해로 결론짓고 말 것이다.

발견되기 전까지는 모든 범죄는 완전범죄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들킨 죄” 하나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발견된 이후에도 방관자들은 완전범죄를 방조한다. 오직 예리한 관찰자만이, 책임감 있는 수사관만이 완전범죄가 될 수도 있었던 범죄의 허점을 발견해내고 범행한 자를 추적할 것이다. 이처럼 완전범죄를 완전히 발가벗기는 것은 집요한 예리한 수사관에게서만 가능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지난 30일 있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후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일부 증거채택 잘못이라는 이유로 파기환송된 후 2년 넘게 지루한 재판이 진행되더니 재판부가 바뀐 후 선고가 내려졌는데 그 형량이 오히려 4년으로 늘어났다. 원세훈 피고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절초풍할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그때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더라면 3년형이 확정되어 징역살이를 적게 할 것이었는데, 대법원에 상고하여 증거채택이 잘못되었다는 – 필자가 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대법원에서 증거채택을 건드리는 것은 어찌 보면 증명책임의 잘못이라는 법률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증명책임을 핑계로 사실관계를 건드리는 것으로 법률심인 대법원의 월권행위가 될 개연성이 크다 – 이유로 파기환송되는 바람에 형량이 3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는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원세훈 피고인에 대한 파기환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였다. 방관자를 기대했는데 더 무서운 관찰자가 나타나버린 것이다.

원래 대법원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통상적인 상고심 재판을 진행한다. 그런데 대법원이 소부에서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기는 것은 첫째, 국가법질서나 가치체계 변화에 따라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이 있을 때, 둘째, 선례가 없어서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재판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셋째, 소부에서 대법관 사이에 견해가 일치되지 않아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때 등이다. 이처럼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 사건은 대단히 중대한 경우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실재 전원합의체 판결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원세훈 피고인에 대한 파기환송 사건은 위 세 가기 사유 중에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부의 책임 회피로 전원합의체로 이관되었다. 대법관들의 비겁함이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 결함이 있는 것이다. 전원합의체로 이관될 이유를 찾으라면 세 번째 사유가 있을 수 있는데, 문제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대법관 전원이 참석한 13대 0으로 파기환송이 만장일치였다는 것이다. 만일 소부에서 의견이 불일치해서 전원합의체로 넘어간 것이라면 그 반대의견을 피력한 대법관은 전원합의체에서도 반대의견을 피력해야 하기 때문에 13대 0의 만장일치 결의가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파기환송사유도 극히 애매모호하였고, 판결문에 설시한 정도의 내용이라면 그냥 대법원에서 판결하여도 무방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은 법조인이라면 고등법원에게 “좀 봐 주지 뭘 그래!”라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정원에서 검찰에 임의 제출한 관련증거들이 고등법원 재판부에 추가제출되기도 했지만, 파기환송사건을 담당한 고등법원은 소신 있게 당초의 3년 형량을 더 높여 4년 징역형을 선고하고 원세훈 피고인을 법정구속하였다. 두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원세훈 피고인의 얼굴이 몹시도 파리하고 초췌하다. 다른 뇌물사건으로 1년 2개월의 징역형을 살고 나온 직후, 국정원 댓글로 상징되는 지난 18대 대통령선거에 불법개입한 선거법 위반사건으로 구속된 후 대법원 파기 환송 후 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다시 파기환송심의 4년 징역형으로 다시 구속되니,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심장이 벌벌 떨릴 일이다. 자포자기한 듯한 그의 모습과 함께 다시 재상고하겠다는 변호인들의 결연한 의지표현이 오히려 공허롭다.

원세훈 피고인이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국정원의 조직과 예산을 거의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고군분투할 때 결코 자신의 행위가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사를 거부할 수 있고, 재판을 거부할 수 있는 재량권이 보장되어 있어, 그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행사가 모두 정당화되거나 사법부의 재판으로부터 배제된 사각지대에서 보호되어 왔던 전력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러한 사례들을 강고히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호 아래 그의 범죄사실이 상당 부분 은폐되고 조작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채동욱 검찰총장과 윤석렬 부장검사라는 강직한 검사들 앞에서 정권 비호의 한계가 노정되어 꼬리가 잡히기 시작하였고, 그러는 와중에서도 채 총장과 윤 검사를 옷 벗기거나 좌천성 인사를 통해 물을 먹이는 발악을 통해 일단은 완전한 빛나는 범죄가 되는 듯하였으나, 거기에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굿거리 장단에 동원되어 범죄의 진실이 축소되는 듯하였지만 결국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로 국정원이 스스로 환골탈태의 반성의 길로 들어섬으로써 감추어져 있던 국정원 내의 여러 문서와 녹음파일 등이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제출됨으로써 그의 완전범죄의 꿈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말았다.

소설가 김민효 선생은 말한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만들어낸 길 위로 오래전에 발효된 그녀의 살냄새가 바람 자락을 붙들고 달려 나갔다 되돌아온다. 나(자동차)는 외출에서 돌아온 그녀의 황홀한 살냄새를 온몸을 열어 안아 들인다. 내 안에서 발기된 양치식물들이 일제히 포자를 터뜨린다. 감당하기 어려운 쾌감, 나는 지금 행복하다.”라고. 한 남자의 범죄도구로 사용되어 한 여자를 태우고 계곡으로 추락하여 녹슬어가고 있는 자동차, 그 자동차의 블랙박스에는 모든 범죄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완전범죄체, 녹슨 자동차 안에서 범죄의 흔적들, 여자의 살이 썩고, 썩은 살이 양치식물의 자양분이 되고, 썩은 살냄새가 계곡을 떠돌고 있다. 주인공 자동차는 말한다. 그러한 그녀의 살냄새가 황홀하다고. 진실을 찾아가는 검찰과 법원이 그러하지 않을까?

하나님마저도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지 못했지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신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은 언제나 완전체를 꿈꾼다. 이루어질 수 없는 완전체를 꿈꾸며 신의 손발이 되려고 한다. 완전체가 되어 신이 허락한 세계,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려 한다. 에덴동산으로 복귀하는 순간, 인간은 선악을 분별할 수 없게 되고, 자유의지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완전체를 꿈꾸고, 자신의 행위 속에서 언제나 완전범죄를 꿈꾼다. 완전범죄를 꿈꾸며 국정원이라는 거대한 국가권력을 통해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여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범죄행위를 저지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죄는 참으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옆에서 이를 방조한 수많은 무리들, 그를 교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확대 여부가 국민적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지은 죄가 너무 크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들키지 않은 범죄는 있을 수 있지만, 이 세상에 완전범죄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범죄자에게는 양심이 있고, 죽을 때까지 그 양심이 끝없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채찍질로 범죄를 단죄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민효 선생의 “빛나는, 완전한 범죄” 속 한 구절 – 황홀한 살냄새-이 너무 리얼하다. 한참 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숨쉬기를 멈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범죄의 끔찍한 악취들이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완전체임을 인정하고, 우리 모두 선하게 살았으면 한다. 선하게 살자, 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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