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27) -무죄추정(無罪推定)
상태바
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27) -무죄추정(無罪推定)
  • 강신업
  • 승인 2017.09.01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사람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주사위를 던져서 홀수가 나오면 유죄, 짝수가 나오면 무죄로 할 수도 있고, 점성술사나 무당에게 맡겨서 죄의 유무를 가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며, 공동체의 최고지도자에게 그 판단을 전적으로 일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이들 방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설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형사재판을 함에 있어 죄 있는 사람이 무죄가 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되지만 죄가 없는 사람이 유죄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무죄자(無罪者)가 몇 년씩 억울한 징역을 살고 심지어 사형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판단 오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오류(無誤謬)는 신(神)의 영역이다. 인간이 신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재판에서 오류가 없기란 불가능하다.

마녀재판(魔女裁判)은 인간이 신을 빙자하여 광기를 표출한 역사상 최악의 오류 재판이다. 15세기 이후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이 광신도적 현상은 16세기 말~17세기에 그 절정에 달했다. 그나마 종교재판소가 마녀재판을 전담한 초기에는 희생자가 적었지만 나중에 세속법정이 재판을 주관하면서 살육의 광풍이 몰아쳤다. 누구든 일단 마녀라는 혐의를 받게 되면 뜨겁게 달군 의자에 앉히는 등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갖가지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자백을 하지 않으면 혐의자의 손과 발을 묶은 뒤에 강물이나 물통에 세 번 담그는 것으로 마녀 여부를 판별했다. 이 때 혐의자가 수면위로 떠오르면 마녀고 반대로 오랫동안 물속에 가라 앉아 있으면 마녀가 아니라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사람이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물에 빠지면 물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고, 떠오르면 마녀란 증거가 되어 처형을 면할 수 없었다. 떠오르지 않으면 무죄가 입증되는 것이지만 그 때는 이미 익사를 면할 수 없으니 죽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스스로 이성적 존재임을 자처하는 인간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세상의 질서가 변하는 격동기에 희생자가 필요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마녀사냥은 인간이 갖고 있는 마성(魔性)과 집단광기(集團狂氣)가 묘하게 어우러져 일어난 일대 참극(慘劇)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언제든 벌일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사실 마녀재판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은 인간 사회에서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형사사법에서의 인권보호와 적법절차를 그토록 부르짖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자리한다.

근대 사법시스템은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인간이 반성적 이성을 출동시켜 만들어낸 인간의 비이성적 판단과 집단광기 제어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법제도의 제 원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이다. 프랑스 권리선언에서 비롯된 이 원칙은 기소된 피고인은 물론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도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을 때까지는 누구든지 범죄자로 취급당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무죄추정의 원칙은 혐의만으로 처벌하는 소위 혐의벌(嫌疑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판사가 피고인을 유죄로 하려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의 입증(立證)이 있어야 한다. 입증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증거를 제시할 책임, 즉 입증책임(立證責任)은 소추(訴追)를 하는 검사에게 있다. 검사가 입증을 다하지 못하면 피고인은 당연히 무죄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마녀재판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인간 사회의 결단이며 절대 어겨선 안 되는 제 원칙이다. 때문에 우리 헌법도 ‘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 된다’고 규정하여 이를 재삼 확인하고 있다.

법정에서의 증거 판단은 판사에게 맡겨져 있지만 판사는 심증을 형성하고 검사가 제시한 증거를 판단할 때는 당연히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판사는 신이 아니다. 때문에 판사가 증거가 아닌 심증에 의해 유·무죄를 판단하려 하거나 부족한 증거로 만연히 판단에 나선다면 이는 스스로 점성술사나 무당과 같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재판에 임하는 판사들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마음속에 수없이 반복해서 새겨야 하는 이유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