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발칸반도의 화약고, 세르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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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발칸반도의 화약고, 세르비아
  • 제임스 리
  • 승인 2017.08.3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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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리(Rhee James)
호주 사법연수과정(SAB), 시드니법대 대학원 수료
호주 GIBSONS 법무법인 컨설턴트 역임
전 KOTRA 법률전문위원
전 충남·북도, 대전광역시 외국인 투자유치 위원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고객위원
저서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 (KOTRA 발간, 2004)
현재 100여개국 해외여행 경험으로 공공기관 및 대학 등에서 강연

2012년 10월.

구 유고연방 시절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해체 후에는 ‘신 유고연방’, 슬로베니아가 연방에서 탈퇴하면서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가 분리를 하면서는 ‘세르비아’.

보통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모진운명으로 파란만장하게 국적이 여러 번 바뀌어왔기에, 지금도 국경을 넘을 때마다 국적 때문에 국경검문소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다.

발칸반도의 역사와 유고연방을 주도해온 세르비아는 그 동안 유고연방을 벗어나 독립하려는 나라들과 내전을 벌이면서, 참혹한 ‘인종청소’를 벌인 나라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정적으로 깊게 각인이 되어있다.
 

▲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전승기념탑'...원래는 시내 중심에 있었으나 벌거벗은 모습이 볼성 사납다고 하여 이 곳으로 옮겼다 한다.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버스터미널에서 하루에 한번만 떠난다는 국제버스를 타고 말로만 듣던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하였는데, ‘베오그라드’의 원래 의미는 ‘하얀 마을’이라는 뜻이다.

국경에 다다르자 국경수비대 소속 경찰들이 출입국심사를 하였는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외국 젊은 커플이 세르비아 국경검문소에서 입국이 거절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는 이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겨놓고는 ‘베오그라드’로 그냥 떠났다.

‘저 커플이 보스니아로 되돌아가는 다음 버스 편을 기다리려면 이곳 검문소에서 하루를 기다려야하는데... 혹시 나도 어느 나라를 입국하려는데 저런 최악의 경우를 당하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였다.

세르비아 국경을 통과하면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풍경은 바로 마을마다 세워진 정교회 건물이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니, 보스니아가 산악지대였다면 세르비아는 평지 그 자체였는데, 특히 ‘베오그라드’ 근처에 다다르니 끝없는 평야지대가 눈앞에 널리 펼쳐지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김해평야 등도 드넓지만 이곳은 거기에 비하면 몇 배나 더 넓다는 느낌이 들었다.
 

▲ 대표적인 정교회 모습

버스로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출발하여 약 7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시내 중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허기에 지쳐 카페에 들어가 피자 한 조각과 차를 한 잔 시켜 마시면서 유리창을 통해 찬찬히 밖을 내다보았다.

예로부터 동서팔달의 대명사답게 ‘베오그라드’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반면에 세르비아 사람들의 첫 인상은 구 소련사람들처럼 상당히 굳어 있고 무뚝뚝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카페에서 식사를 한 후, 일단 걸어서 갈 수 있는 이곳의 명소인 ‘칼레메그단 요새(터키어로 ‘칼레’는 ‘성’, ‘메그단’은 ‘전쟁터’라는 뜻)’로 향하였는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가족단위의 나들이가 많아 보였다.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이 요새는 ‘사바강’과 ‘다뉴브강’이 한눈에 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서 지금까지 이곳을 탈환하려고 100여 차례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전투가 계속 벌어졌던 이유는 이곳이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두 문화가 충돌하는 요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세르비아를 ‘발칸반도의 화약고’라 부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칼레메그단 요새'와 다뉴브 강 줄기...저 멀리 신 시가지인 '노비 베오그라드'가 보인다.

일단 이 성곽부터 시작하여 약 4시간 이상 시내 곳곳을 누비면서 다리가 아프면 때로는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호사도 누렸는데, 마침 옆자리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대학생들이 커피를 마시다가 말을 걸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이역만리에서 온 이방인에 대해 무척이나 신기해하고 또한 부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해 보였다.

나는 이곳 요새와 전쟁박물관, 시민공원 등을 찬찬히 둘러본 후, 한국의 명동으로 불리는 ‘코네즈미하일로 거리’로 향했다.

이곳은 각종 상점, 카페, 식당 등이 즐비하였는데 서유럽 국가들 여느 도시와 비교해 봐도 별반 다름이 없어 보였다. 곧게 뻗은 길거리에서는 심심치 않게 건물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또한 쇼핑을 나온 현지인들과 가볍게 눈인사도 나눌 수 있었다.

밤 9시 50분에 떠나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행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역내에 있는 카페에서 오랜만에 푸짐한 저녁을 먹으면서 가져간 노트북으로 인터넷도 하는 등 여유를 가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기차가 도착하여 타고 보니 마치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구 소련제 구식기관차 같아서 시설은 너무 형편이 없었다. 침대칸이라고는 하지만 승객이 없어 나 홀로 4인용 객실을 사용하면서 밤새도록 달려갔는데 실내가 너무 불결하여 잠을 계속 설쳤다.

기차는 내 현재상황과는 아무 상관없이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향해 계속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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