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51) - No look gapj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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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51) - No look gapjil
  • 차근욱
  • 승인 2017.08.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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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미국의 무선전화 통화 품질과 대한민국의 무선전화 통화 품질을 비교할 때면 우리나라에서의 무선전화 품질이 우수하다고들 한다. 아마 국토의 크기 차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어서일지 모르겠지만 간혹 전화가 잘 되지 않는 장소가 존재한다. 3층에서 안 되는 전화가 2층에서 되기도 하는 등의 편차가 있는데 이런 문제 때문에 예전 통신 업무를 하던 시절,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당시 고객은 미국 출장길에 오른 중년의 한국인이었는데, 중소기업의 임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출장이 처음인 듯, 이런 미국 통신서비스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전화가 되는 곳과 되지 않는 곳의 문제와 관련해 이런 저런 이의를 제기하여 상황을 보고 받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다른 회선을 통해 전화연결이 되자 그는 막말로 소리부터 질렀다.

일단 진정을 시키며 호텔에서 지원하는 와이파이 존으로 이동해 달라 부탁 했더니 막무가내로 다시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자신이 고객인데 왜 와이파이 존으로 이동해야 하느냐는 이야기. 너네가 알아서 그냥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해 내라는 것이었다. 기계적인 사항이니 와이파이라도 연결시켜야 뭘 해도 할 것 아닌가. 말끝마다 어떻게 보상할 건지 생각해 두라며 길길이 뛰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반말에 욕설에, 그야말로 갑질이었다.

르몽드 등 외신보도에서 ‘Gapjil’과 ‘Gaejeossi’과 관련한 한국의 사회현상을 다루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나는 이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경험한 그 한 없이 가벼웠던 중년의 사내가.

나이가 들면서 중후해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더 얄팍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아마 인격의 차이겠지.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 진다는 말은 그만큼 책임을 견디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다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 역시 같은 말일게다. 결국 그 사람을 규정짓는 것은 ‘인격’이고 인격이란 그저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나이가 들면서 배려 없이는 ‘Gaejeossi’가 되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주변을 신경 쓰며 스스로 돌아보는 노력이 없이는 자신도 모르게 Gapjil하는 Gaejeossi가 된다. 배려란 그래서 인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래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갈수록 더욱 조심스러워만 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안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Gaejeossi’가 될까봐.

최근에 우연히 연락이 닿은 친구를 통해 다른 친구가 SNS로 메시지를 보냈다.

‘보는 건 보는 건데, 네가 얼마나 잘못한지는 알고 나와라.’

군대 있을 때 면회 한번, 편지 한 통 없던 친구였다. 제대하고 알아서 찾아와 인사하고 폰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아서 기지 않은 죄’를 알고 있으라는 그의 글을 보고 다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장님’이 되어 있었다. 인디언 말로 ‘친구’란 ‘내 고통을 대신 짊어져 주는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슬펐다.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그저 추억이 되어 버렸다. 피천득 선생님의 글에 ‘세 번째는 아니 만나니만 못하였다.’는 구절만큼이나 아픈 날이었다.

쌓이는 세월만큼, 서로를 감싸주는 따스함을 나는 과연 눈 속에 담을 수 있을까. 친구라는 말의 무게에 어울리는 인생이 되길, ‘Gapjil’과 ‘Gaejeossi’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금 거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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