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85)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
상태바
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85)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
  • 신종범
  • 승인 2017.08.18 1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http://nulimlaw.com/          
sjb629@hanmail.net

얼마 전 시내버스 안에서 갑자기 쓰러진 한 남성을 승객들이 침착하게 흉부압박 등 응급조치를 하면서 병원으로 신속하게 옮겨 생명을 구한 사건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영상으로 알려지면서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그 남성을 외면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소중한 생명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주변에 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응급 상황이 발생한 경우 초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여 소위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인식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흉부압박, 인공호흡, 지혈법 등 다양한 응급처치 수단을 익히게 되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행해진 적절한 응급조치는 사태의 악화를 막고, 이후 치료과정을 통하여 건강을 회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우리 신체나 건강이 갑자기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신속한 응급처치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분쟁에 휘말리게 될 때도 신속한 법적조치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법적 측면에서 응급처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보전처분’이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을 권리가 있더라도 판결 등 집행권원이 없으면 채무자의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법제다. 그런데, 소송을 제기하여 확정 판결을 받으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채무자가 재산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긴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채무자의 재산을 묶어 둘 필요가 있게 되는데, 그 수단이 바로 ‘가압류’다. 가압류 외 우리 법에서 인정되고 있는 보전처분으로는 ‘가처분’이 있는데, ‘가처분’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채권자가 금전채권 이외에 특정 물건이나 권리를 대상으로 하는 청구권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강제집행시까지 다툼의 대상(係爭物)이 멸실·처분되는 등 사실상·법률상 변경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하여 다툼의 대상의 현상을 동결시키는 가처분이 ‘다툼의 대상(계쟁물)에 관한 가처분’이다. 불법점유자를 상대로 인도청구소송을 제기하거나 제기하기에 앞서 불법점유자가 목적물을 타인에게 이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점유이전금지가처분’, 소유권이전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한 ‘처분금지가처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하나의 가처분은 당사자 사이에 현재 다툼이 있는 권리 또는 법률관계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기까지 현상의 진행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권리자가 현저한 손해를 입거나 급박한 위험에 처하는 등 소송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에, 그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임시의 지위를 주어 그와 같은 손해를 피하거나 위험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이 그것이다. ‘이사직무집행정지가처분 및 직무대행자선임가처분’, ‘주주총회 개최금지가처분’, ‘근로자의 지위보전가처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은 단순히 현상을 동결하는데 그치는 ‘가압류’나 ‘다툼의 대상에 관한 가처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현상을 변경하여 잠정적으로 나마 새로운 법률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사직무집행정지가처분 및 직무대행자선임가처분’을 통하여 기존 이사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새로운 사람에게 이사의 직무를 맡길 수 있다. 때로는 본안판결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내용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효과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근로자의 지위보전가처분’을 통하여 본안소송을 통한 해고무효확인판결을 받지 않더라도 임금을 계속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은 다른 보전처분과 달리 금전채권이나 특정물에 대한 청구권을 전제로 하지 않고 권리관계에 다툼이 현존하고 있다면 이를 피보전권리로 하여 신청할 수 있어 다양한 유형의 신청이 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보전처분은 정형화 되어 있고 직원들이 그 신청서를 작성해도 큰 무리가 없으나,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의 경우에는 창조적 노력이 요구되고 변호사가 직접 작성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다른 보전처분과 달리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의 경우에 ‘피보전권리’는 넓게 인정하고 있지만, 그 결정의 효력이 적극적인 현상 변경인 관계로 또 다른 요건인 ‘보전의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는 엄격히 판단되어 그에 대한 적극적인 소명이 없는 한 인용결정을 받기는 쉽지 않다. 의사에게 응급상황에서 적절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듯, 변호사에게는 긴급한 권리관계에 다툼이 있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주목을 끌었던 2건의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사건에 대한 결정이 있었다. 하나는 ‘전두환 회고록 출판·배포 등 금지가처분’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공범자들> 상영금지가처분’ 사건이었다. 전자는 인용결정과 함께 간접강제금 결정도 있어 채무자가 출판, 배포 등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반행위시 마다 상당액의 이행강제금까지 부담하게 되었다. 반면, 후자는 기각결정이 나왔고, 영화는 얼마 후 대중들을 만나게 된다. 두 사건은 ‘표현의 자유의 한계’ 및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의 요건인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야할 것 같다.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가처분결정으로 <공범자들>이 보고 싶어졌다. 과연, 그 영화가 가처분을 신청한 사람들의 주장처럼 그들의 명예 등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 긴급하게 상영을 금지할 필요가 있었는지 살펴 봐야겠다. 상영금지를 목적으로 가처분신청을 하였을텐데 사람들의 관심만 더 불러 일으켰으니 신청한 사람들은 참으로 답답한 심정일 것 같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