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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한반도 위기와 1차 세계대전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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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1  12: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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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격랑의 한반도. 일련의 위기과정들. 북한의 대륙간탄도급 미사일인 화성 14형의 발사. 미국 전략자산인 B-1 폭격기 출격. 북한의 핵탄두소형화 성공주장. 트럼프대통령의 8월 8일자 ‘화염과 분노’ 발언. 8월 9일자 북한의 괌에 대한 화성 12형 4발의 포위사격 검토. 미국의 예방전쟁에 대한 전면전대응 응수.

전형적인 치킨 게임이다. 물론 북한과 미국의 상호위협과 담력 시험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트럼프정부출범 후에도 몇 차례 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한반도 위기를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예측하는 경우도 많다. 연례적인 위협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이다. 첫째, 8월 21일 실시되는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북한은 늘 극단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둘째,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일이라 북한도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전 치킨게임과는 다른 두 가지 모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역대 첫 발언이라는 점이다. 공개적인 전쟁위협이 가해진 것이다. 두 번째는 “‘화성-12형’은 일본의 시마네현과 히로시마현, 고치현 상공을 통과하게 되며, 사거리 3천356km를 1천 65초간 비행한 뒤 괌도 주변 30∼40km 해상 수역에 탄착 되게 될 것”이라고 북한이 특정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악순환적 진화이다.

이런 위기 상황을 더욱 걱정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치킨게임이 과연 어느 정도 통제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걱정은 1차 세계대전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전쟁의 최후 결정과정은 치킨게임이 개인의 ‘즉흥적 성격’, 국가의 ‘두려움’과 ‘위신’이라는 요인들이 위기상황을 정책결정자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위기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의 단초를 찾기 위해 옛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1차세계전은 아마존에 1만 권은 저술이 있을 만큼 가장 뜨거운 연구주제이다. 3가지의 큰 이유가 있다. 어느 지도자도 원치 않았지만 전쟁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확대해서 전쟁을 하지 않았어도 될 전쟁이 너무 큰 규모로 확대되었다. 전쟁 직전까지 평화를 원했던 국가 지도자들의 전쟁억지 노력들이 모두 실패했다.

발칸지역을 둘러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대립 중에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황태자가 세르비아와 연결된 암살단에 의해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었다. 암살 사건은 발칸 지역에 영토 야심이 있는 오스트리아로 하여금 세르비아를 공격할 빌미를 주었다. 이에 세르비아는 같은 슬라브계인 러시아의 지원을 요청한다. 노쇠하여 힘이 쇠퇴하고 있던 오스트리아는 이런 상황에서 같은 게르만 족이자 양국동맹의 지원군인 독일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1987년 27살의 나이로 황제가 된 젊고 충동적인 인물이었다. 빌헬름 2세는 충동적일 뿐 아니라 자신의 평판에 대해 예민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겁쟁이라는 놀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빌헬름 2세는 자신이 강한 인물로 비춰지기를 원했다. 또한 영국인 어머니를 두었던 그는 영국 제국과 영국 왕이 받는 찬사를 동경했다. 영국 같은 거대 제국의 황제이자 엄청난 해군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그의 허영심은 독일이 유럽에서 현상 타파국가가 되게 하였다.

1914년 7월 5일 오스트리아대사였던 라디슬라우스 스최게니 마리히 백작이 카이저궁으로 황제를 찾아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독일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두 통의 문서를 보냈는데 그 중 하나는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보낸 개인적 편지였다. 빌헬름 2세는 편지를 본 후 수상과 상의해보기 전에는 답을 줄 수 없다고 이야기를 식사 중에 하였다. 그러나 점심식사를 마친 뒤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런 결정은 당시 수상인 베트만 홀베크와의 어떤 협의도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더 나가 카이저는 오스트리아의 빠른 군사적 행동을 촉구하였다. 평화적인 해결을 원하고 있던 독일 수상 베트만은 그 이전에 몇 차례 황제와의 언쟁을 겪었던 터라 이 시점에서는 황제를 따라 전쟁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왜 전쟁을 할 여력이 없었던 오스트리아에 자신감을 심어줄 뿐 아니라 군사적 행동을 강요한 것일까? 그것은 독일의 두려움에 기인한다. 독일은 빨라진 러시아의 성장속도를 걱정하고 있었다. 필시 전쟁을 하게 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가 유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황태자의 암살과 같은 행동을 방치하면 유럽 국가들의 보수적인 질서와 제도들이 붕괴할 것이고 사회주의자들의 발언권도 커질 수 있다고 보았다. 게다가 오스트리아를 도와주지 않고 독일이 물러설 경우 3국 협상인 프랑스-러시아-영국의 대독일 포위에 더해 믿을 수 없는 이탈리아와 쇠락한 오스트리아까지 이들 국가편으로 돌아서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공세적으로 나감으로서 자신들의 두려움이 현실화 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왜? 공격적 행동은 상대 국가를 위협하여 억지를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억지가 실패해도 공격자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은 러시아의 입장을 간과하였다. 당시 러시아는 발칸에 있는 슬라브 국가들에게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이익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평판과 위신은 중요했다. 만약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포기하면 발칸에 있는 국가 뿐 아니라 어떤 나라도 러시아를 강대국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었다. 러시아에게는 1905년 일본에게 패하기까지 한 전력도 있었다. 그러니 러시아는 위신과 평판을 지키는 것이 절박하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군사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스트리아를 위해 7월 26일 부분적인 동원령을 내린다. 당시 러시아는 자신의 조치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자신의 의지를 과시함으로서 도발을 억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 날인 7월 27일 독일은 러시아에게 동원을 중지하지 않으면 자신도 군사동원을 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후통첩을 세르비아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오스트리아가 7월 28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 상황을 더 이상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냥 앉아서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러시아의 차르는 7월 30일 총동원령을 내렸다. 독일은 러시아의 군사동원을 전쟁선포로 받아들였고 결국 전쟁이 도래하게 되었다.

6월 28일에서 7월 30일까지의 한 달간 유럽은 위협과 평화추구노력이 공존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인간의 의지대로만 가지는 않았다. 빌헬름 2세의 성급함과 허영심과 두려움이 사태를 극단으로 가게 만들었다. 국가들이 처한 상황은 퇴로를 닫았다. 결국 지도자들은 비스마르크가 말한 대로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일을 초래한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라는 두 지도자의 과시적이고 즉흥적인 성격. 북한의 미국에 대한 두려움. 미국의 패권국가에 대한 평판과 위신. 그런 점에서 역사는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대로 역사가 반복될 수 있을까?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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