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49) - 쭈쭈바, 냉커피, 얼음 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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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49) - 쭈쭈바, 냉커피, 얼음 보숭이
  • 차근욱
  • 승인 2017.08.0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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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쏟아지는 매미울음소리에 귀가 따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아, 아직 세상이 망하지는 않았구나. 미디어가 발달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6번째 대 멸종이 시작되었다거나 어족자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보도를 볼 때면 향후 세상의 멸망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느낌인지라, 아직 매미라는 존재가 멸종하지 않았고 여름에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이다.

내가 군에 입대한 계절을 굳이 따지자면 ‘봄’이었지만, 그 때는 사실 4월이 끝나갈 무렵이었기 때문에 ‘여름’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랬기 때문인지, 군에 대한 처음 인상은 ‘덥고 목마름’이었다. 얼마나 목이 말랐나 하면, 처음 군에 있던 당시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것은 상념이나 그리움이 아닌, 시원한 음료수나 팥빙수뿐이었다. 그래서 첫 휴가를 받았을 때, 음료수만 40만원 가량 샀다. 사과쥬스, 포도쥬스, 그리고 정말 눈에 보이는 온갖 음료수. 하지만 의례 사람이 그렇듯, 욕심만 냈지 음료수를 전부 마시고 복귀하지는 못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그 이후로 1년 동안 휴가를 나와서 무모할 정도로 사 놓은 음료수를 두고두고 마셨다. 내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나는 더위를 매우 심하게 타는 편이라 여름이면 초죽음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끝없이 땀이 흘러 온 몸에는 발진이 일어나고 집중력은 가물가물해진다. 머리칼을 빼앗긴 삼손처럼. 여름은 내게 그렇게 혹독한 계절이다. 그 가혹한 혹한 지나면서 나는 냉커피나 딸기빙수만을 떠올린다.

여름에는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추억의 쭈쭈바이다. 쭈쭈바는 과일맛의 분말쥬스를 얼린 빙과류인데, 처음에는 50원짜리 딸기맛이 전부였다. 세상에 쭈쭈바란 것은 당연히 딸기맛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과 맛이나 군밤 맛의 다른 종류의 쭈쭈바가 나왔을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세상에 딸기 맛 말고도 쭈쭈바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계를 극복한 초월의 경험이었다. 꼭지를 잘라 빨아 먹고 몸통을 먹을 때의 즐거움이란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이었기에 쭈쭈바는 행복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았다.

반면에 더 커서 팥빙수를 먹었을 때, 팥빙수는 보다 깊은 맛의 시원함이었다. 쭈쭈바보다 격조 높은 맛이었달까. 내가 처음 먹었던 팥빙수는 어머니께서 해 주신 팥빙수였는데, 어머니께서는 미키마우스가 운전을 하고 있는 탑 차 모양을 한 수동식 빙수기를 사 오셔서 얼음을 넣고 손잡이를 돌려 팥빙수를 만들어 주셨다. 팥도 당시에는 파는 것이 없었어서 직접 만들어 해 주셨는데, 그 덕분에 나는 자극적이지 않은 뭉근한 달콤함과 우유의 고소함이 그대로 배어 있는 팥빙수를 먹을 수 있었다. 인생이 담겨있는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팥빙수를 하나의 음식으로 느꼈다. 팥알의 달콤함과 통그르르한 존재감이 단순한 군것질거리로 치부되기 보다는 가족이 함께 여름의 추억을 만들었던 아름다운 한 때로 기억되었다. 그래서 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군대에 가서 땀을 줄줄 흘리며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던 것 역시 팥빙수였던 것은. 오직 팥과 우유만이 들어간 달고 차가운 얼음 보숭이. 얼음 자체를 갈아 소복하게 올린 그 작은 언덕은 환하게 웃고 계신 어머니의 여름이었고, 현실의 고통 속에서 모든 괴로움을 잊게 해 줄 단 하나의 구원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경험한 어른의 맛이란 대학에 처음 들어가 먹게 된 ‘아이스 커피’였을지 모르겠다.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세상에는 ‘아이스 커피’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고 시원한 ‘냉커피’는 알고 있었지만, 카페에 가서 우아하게 낮은 톤으로 주문하는 ‘아이스 커피’란 또 다른 존재로만 느껴졌다. 촌스럽고 무식한 티가 나지 않도록 나도 다른 이를 따라 최대한 어른스럽게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며 마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 점잔을 뺐다. 아마 그 때였을까. 맛이 없는 것도 맛있는 척을 해야 하는 어른스러움을 시작한 때는.

출장이 끝나고 서울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어있었다. 피곤한 몸을 끌고 버스 끊긴 길을 걷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어지러울 만큼 매미소리가 쏟아졌다. 아.. 아.. 여름이었어. 새삼 되뇌었다. 그리고 보니 쭈쭈바를 물고 뛰어다니던 시절도, 팥빙수를 먹으며 어머니에게 활짝 웃어보이던 시절도,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처음 맡아본 화장품 냄새에 잔뜩 긴장해 굳어있던 시절도 모두 이렇게 달큰한 여름이었구나. 피식 웃음이 났다. 하늘 위에 달이 쟁반만해 보였다. 어라? 가을이 벌써 오려나? 어느덧 바람이 선선하게만 느껴졌다. 역시, 여름밤에는 밤마실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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