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23)- 죄, 심판,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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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23)- 죄, 심판, 벌
  • 강신업
  • 승인 2017.08.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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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누군가 요제프 K.를 무고했음에 틀림없다. 그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심판(Der Prozeß)』의 첫 구절이다. 요제프 K는 서른 번째 생일에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된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을 변호하려 애쓰지만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작품의 쟁점은 과연 요제프 K에게 죄가 있느냐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제프 K는 갑자기 이상한 심판의 틀에 갇혔다. 그는 자신을 옥죄는 것이 어떤 법인지, 그 법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어떤 잘못으로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침실에서 감시자들과 마주치게 되었는지 조차 확실하지 않다. 그는 자기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쩌면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부조리한 소송절차에 휘말려 미로 속을 헤매다 기어코 목숨을 잃고 만다.

사람이 체포되고 재판을 받고 희생되었다. 그런데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가난? 가정이나 직장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것? 아니면 거대하고 기계적인 관료조직이 그 존재이유를 찾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킨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혹 불순한 누군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법제도를 악용한 때문일까? 어느 것도 가능하다. 어차피 공동체에서의 죄와 벌이란 공동체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억압수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결과지향적인 것이고 인간이 만든 사법시스템이라고 하는 것도 별 믿을 것이 못된다. 그것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고 그것을 운영하는 자들 역시 진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죄를 지었다고 불리는 자나 그를 심판하는 자나 가려진 진실을 찾아 그저 이리 저리 떠밀려 표류하다 우연히 닿은 곳에 닻을 내릴 뿐이다.

어떤 사회에서 사법시스템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너무도 부조리한 것이어서 합리적 이성에 의할 때 도대체 용인될 수가 없다. 어쩌면 소설에서 요제프 k가 죽고 사는 것은 사법절차를 거쳐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떤 힘, 어떤 부조리한 권력에 의해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요제프 k가 이리 저리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 발버둥 치는 동안 그의 죄와 벌을 미리 정해놓은 누군가는 입가에 희한한 웃음을 연신 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벌 기준은 인간의 ‘법’이 아닌 신이 설계한 ‘양심’이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은 ‘비범인(非凡人)’으로서 도덕률을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후 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양심의 가책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다가, 급기야 다른 사람들과 단절되었다는 무서운 고독감과 악몽으로 고통 받는다. 스스로 설정한 잘못된 이념에 사로잡혀 살인의 죄를 범한 자가 자기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고 양심의 가시에 찔리는 가혹한 형벌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스스로 떳떳한 사람에 대한 처벌은 정당한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다만 ‘양심’이 천상의 척도라면 ‘법’은 지상의 척도다. 법은 오로지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존재한다. 법은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켜 보다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양심에 비추어 일말의 가책을 받지 않는 행위가 죄로 규정되고 벌이 가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법은 형식적 진실추구에 만족하는 것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증거재판주의가 의미하는 함의는 이미 천상의 척도가 아닌 지상의 척도에 의한 판단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심증은 너무 많은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무죄다. 혹자는 이에 대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 역시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지상의 척도다. 천상에 정의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신이 미리 정한 세상의 질서에 들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여전히 재판이 열리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불완전함을 채우는,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는 가장 효율적인 지상의 심판 방법이기 때문이다. 죄와 벌, 그리고 심판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자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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