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 방산비리를 다시 생각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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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방산비리를 다시 생각해보며
  • 신희섭
  • 승인 2017.08.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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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플라톤은 인간의 자질에 대해 깊이 고민한 철학자이다. 그는 세상이 정의로우려면 각 계급이 자신의 직분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도자계급은 인간의 머리에 해당하니 판단을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군인계급은 인간의 심장에 해당하니 용기를 가지고 국가를 지켜야 한다. 평민계급은 인간의 정욕에 해당하니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요즘 같이 복잡계를 논하는 세상에서는 타당성이 떨어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평등주의 관점에서는 계급 구분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특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청할 수 있는 이야기는 될 것이다.

살다보면 플라톤의 이야기에 공감할 때가 많다. 인간의 직분이 태생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살면서 만들어지는 성품은 확실히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판단을 잘 내리고 어려운 결정의 순간 도움이 된다. 이런 사람은 정치인이 되는 것이 맞다. 어떤 이는 예리하게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면서 이것이 큰돈이 될 것인지를 판단한다. 이런 사람은 사업가가 되는 것이 맞다. 끼가 많은 이들은 확실히 그 끼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찾기 마련이고 연예인이 되는 것이 좋다. 어떤 주제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서 꼼꼼히 따져보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이들은 학문을 하는 것이 맞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군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플라톤시대의 군인이 아니라 2017년 지금 시점에서 군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내가 알고 있는 군인들 대부분은 명예와 사명감을 추구한다. 그리고 명예롭게 살기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진급이라는 과정을 묵묵히 밟는다. 대학원 시절과 사회에 나와서 만나본 군인들은 용기가 있는 무장스타일들도 있었고 현명한 군인들도 있고 덕이 있는 군인들도 있었다. 어느 직업군이나 마찬가지로 교활한 이들도 있고 야심이 큰 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성실하고 사명감이 강했다.

최근 군과 관련된 사건들이 많이 터지고 있다. 그중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방산비리문제다. 수리온 헬기의 결함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낙하산인사 문제뿐 아니라 사장 스스로 높인 고액의 연봉이 더해져 공분을 사고 있다. 강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운전병의 목숨을 앗아간 장갑차. 총알을 막아내지 못하는 방탄복. 초음파탐지 능력에 문제가 있는 군함.

방산비리에는 분노 게이지를 높일 요인들이 많다. 안전보장이라는 국가 본질에 대한 회의감. ICBM급 미사일과 핵실험이라는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 자식을 군에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불안감. 매 정권마다 터지는 고질적 병폐와 부도덕성. 약탈자들이 가져간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민 혈세.

언론의 집중타를 맞고 있는 방산비리를 보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군인들과 연결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고민이 생겼다. 방산비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방안을 어디서 구해야 할 것인지.

정치학은 항상 이런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단순화해준다. 정치학 관점에서 문제의 본질은 결국 인간의 문제이거나 제도적인 문제이다. 그러니 너무 복잡한 원인들을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환경, 정권, 한국인의 유전자 뭐 이런 것들은 부차적이거나 검증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래서 흥미를 끌 수는 있지만 해결책을 찾기 어렵거나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

방산비리의 본질은 그럼 인간에 있는가? 인간의 문제로 치부하면 너무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는다. 지금 이 순간도 불볕더위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많은 군인들이 싸잡혀서 비난을 받게 된다. ‘군인계층 = 약탈적인 존재’는 아니지 않는가?

항상 문제는 대다수의 선량한 이들이 아니고 소수의 약탈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원래 약탈적이고 사리사욕에 눈이 먼 것도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이 돈이 된다는 것. 그 비밀을 사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내미는 유혹이 점차 커지는 것. 한 번만 눈을 감으면 막대한 돈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달렸다는 것. 이런 과정들이 이들을 약탈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이 만약 어려서부터 약탈자로 키워졌다면 우리 사회는 이들 그룹을 걸러내고 격리하면 될 것이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던 이들이 성인이 되어 어느 순간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도 통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들이 유혹에 빠지지 못하게 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인간이 아니라면 우리는 제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정치학에서 제도는 기대의 안정화 장치이다. 기대(expectation)를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제도를 꼼꼼하게 만드는 방안으로 약탈자가 될 수 있는 유혹을 줄여야 한다. 방산비리와 관련된 사안들은 대체로 규모가 커서 뜯어 먹겠다고 달려들면 먹을 것이 많은 사업들이다. 그러니 이런 사업들의 진행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들을 더 세심하게 고안해보아야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사업들의 내부적 통제과정만으로 어렵다면 전문가를 중심으로 하는 외부적 통제장치를 더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내부 기관과 외부기관의 공모(log-rolling)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누가 통제 혹은 감시 업무를 맡았고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군과 관련된 사안 중 특별히 비밀로 해야 하는 사안들을 제외하고 성격별로 이슈를 구분하여 시한을 두고 공개를 함으로써 역사와 시민들 앞에서 평가를 받게 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유혹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사명감 가지고 사는 군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번만 눈을 감으면 현실화될 수 있는 유혹 앞에서 많은 이들이 무너졌다. 사관학교시절 꿈들이 찰나의 유혹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세상살이의 무게라는 핑계나 경제적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군인들의 목적(telos)은 명예라고 보았다. 군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명예롭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사후적인 처벌 장치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떨어진 명예 앞에 사형이나 형량을 늘리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해법은 이들이 명예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하는 것이고 불명예를 더 치욕적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 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방산비리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군인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지금의 시각을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명예로 보상받을 수 있고 불명예로 처벌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더 꼼꼼히 하는 것에서 방산비리를 보았으면 한다. 그래야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는 수많은 군인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명예를 위해 사는 이들은 충분히 존중받을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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