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48) - 응답하라,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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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48) - 응답하라, 타임캡슐!
  • 차근욱
  • 승인 2017.08.01 15: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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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정말 우연히, 20여년 만에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인 웅팔이를 길에서 만났다. 내 친구 웅팔이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내 중학교 1년 선배다. 하지만 안타깝게 건강상의 문제로 인하여, 라고 본인은 이야기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이유로, 여튼간에 고교 입시를 한 번 더 보게 되어 고교 입학 동기이자 1학년 같은 반 친구가 되었다.

사람의 인연이나 운명이란 것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이 친구의 경우가 딱 그렇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친구가 되긴 했지만, 실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3학년인 웅팔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학교를 가다가 우연히 사람을 착각해서 같은 학년 친구인 줄로 알고 같이 걷게 되었는데, 당연히 동급생인 줄로 생각해 야자도 트고 이런 저런 장난도 쳤다.

그러다가 학교에 들어가 웅팔이가 갑자기 3학년 교실이 있는 방향으로 가길래 나는 ‘3학년 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웅팔이는 갑자기 ‘이건 뭐지?’라는 듯한 당황스런 눈빛으로 날 보았고, 순간 상황을 깨달은 나는 온갖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 있는 웅팔이를 등 뒤로 한 채 2학년 교실로 냅다 뛰어갔다.

그리고 고교 1학년 첫날부터 친한 친구가 되어 지내다가 스무 살 무렵 문득, 이 웅팔이가 그 때 그 웅팔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너 중학교 3학년 때 2학년이 야자트면서 학교 같이 간적 없었냐?”라고 물었더니, “어?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웅팔이가 정말 웅팔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그 때 역시 “그게 나였어!”라고 외친 뒤 멍한 표정의 웅팔이를 등 뒤에 남겨두고 냅다 뛰었다. 웅팔이는 뒤에서 “야이 씨~! 너였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래! 나다! 으하하하하~!”라고 소리 내어 웃으며 뛰어서 집으로 갔다.

웅팔이는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군대도 갔고 가장 먼저 여자친구도 생겼고 가장 먼저 돈도 벌었고 그런 연유로 가장 먼저 차도 샀다. 고교를 졸업하고 눈치작전을 실패해 내가 원서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 한 학교에 합격 통지를 받기에 이르렀었는데 결국 그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래 저래 하여 내가 군 입대를 한 이후 어찌저찌 하다 보니 웅팔이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몰려다녔던 4명의 친구 전부와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그리고 20여년 만에 우연히 웅팔이를 만난 것이다. 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7시 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웅팔이 아버님의 클론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숨이 탁 멎을 정도였다. 그래서 난 “웅팔이냐?!”라고 외쳤고, 웅팔이는 “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너!”라고 하면서 얼싸 안았다. 살아있었구나, 같은 거였다.

웅팔이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고 아들도 둘이나 있다고 했다. 시간이 그렇게 지났던 것이다. 전에 쇼핑몰에서 내 뒷모습을 한번 봤었는데 사람을 헤치고 내 뒤를 따라왔지만 내가 사라져 아쉬웠단다. 그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한테 했더니 뭐라도 던져서 뒤통수에 맞추고 잡아놓지 그랬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친구들은 아직 연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갑자기 sns가 쉴 새 없이 울렸다. 단체 대화방에서는 그 시절 친했던 5명의 친구들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를 독수리 6형제라고 부르던 ‘남사당’도 있었고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 말했던, 내가 왜 내 친구를 괴롭히냐면서 대신 싸워주러 갔던 ‘미스터 백’도 있었다. 그리고 ROTC임관을 하자마자 장가갔던, 어린 시절 내게 처음 팽이 돌리는 법을 알려주었던 ‘윤식이’도 거기에 있었다. 컨츄리 꼬꼬의 신정환을 닮았다던 ‘준이’도 거기에 있었다. 코카콜라의 웅팔이는 당연했고.

20여년 만에 우리는 다시 개구쟁이가 되었다. “남사당이 장가갈 수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라고 했더니 “지금 나 디스하는 거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사당’다웠다. 남사당은 내가 고교 1학년 때 헤비메탈을 들으며 처음 만났는데 “나는 사탄님을 섬기고 있지”라고 했을 때, 진짜인줄로 알았다고 했다. 내가 검도를 하는 이유가 사탄의 지시를 따르려는 걸로 생각했단다.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순진함이었다. “미스터 백은 엔지니어가 되었어?”라고 물었더니 “응 비슷해”라고 말했다. 지금은 모니터 설계하는 일을 한단다. 그 또한 ‘백’다웠다.

“준이는?”, “차장님이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여년 뒤로 가서 미래의 일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는 사람처럼 난 궁금했던 일들을 물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신기했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모두 잊어버렸던 이야기들이었다.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다들 서로 얼굴 본지는 벌써 3년이나 지났다고 했지만 어제 본 듯 장난기 가득했다.

남사당과 준이랑 내가 교실 앞 쪽에 앉은 웅팔이 뒤통수에 분필을 끊어 던지던, 웅팔이가 성인잡지를 구해오면 다들 돌려보며 웅팔이는 저질이라고 놀려먹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우정의 타임캡슐이 열린 듯, 그 시절의 추억들이 수도 없이 소환되었다. 그립고 아련한 이야기들.

살면서 가끔 당연한 줄로 생각했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우정이란 아마도 그렇게 당연하지 않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생애에 몇이나 있을까. 한 명이라도 정말 복이라 할 텐데,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5명에서 다시 5명이 되었다. 세상에 정말 운명이란 있을까? 길을 가다 친구가 되었고 길을 가다 다시 만난 웅팔이를 보면 아마도 그런게 있지 않나 싶다. 친구란, 그래서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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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파이팅 2017-08-02 02:10:55
20년만의 친구들이라니 부러워요... 정말 응답하라 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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