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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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07.3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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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탈관료화, 민주화가 핵심” vs
“개선 있어야 하지만, 윗선 판단 수긍가”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지난 27일 선고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1심 판결을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지난 3월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사건도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명칭만 동일하게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회자될 뿐, 그 본질은 달리 보아야 한다는 시각이 조심스레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하여 법원행정처에서 일선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사상과 이념에 따라 ‘찍어내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작성·보관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하여 이들은 단호히 반박했다.

의혹에서 거론하고 있는 ‘법관 블랙리스트’는 법원행정처가 시기적으로 우려를 갖고 주시해오던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에 대한 대책 문건의 성질을 가지는 것인바, 실제적으로 일반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해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법률저널은 지난 4월 18일 발표된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의 조사결과와 전국법관대표회의 회의록, 기타 익명을 요구한 현직 법관 및 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사건을 되짚어봤다.

본지가 의견을 요청한 데 대하여 “아직 이야기할 시기가 아니”라는 취지로 답변을 거절한 법조계 인사가 다수다. 그만큼 현재까지는 대체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보니...

지난 3월 초 한 주요 일간지는 ▲법원행정처가 전문분야 연구회에 중복 가입한 법관들의 탈퇴 등 조치를 한 것은 법원 내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타깃으로 하여, 동 연구회가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문제 등을 골자로 한 학술행사를 하는 것을 견제한 것이라는 점 ▲대법원 고위층이 정기인사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이모 판사에게 연구회 학술행사 축소를 지시한 점 ▲이모 판사가 항의하자 원래 소속 법원으로 돌려보내는 인사를 했다는 점 등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가 나오자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그 즉시 “법원행정처는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식의 해명을 하였으나, 그 다음날 당사자인 이모 판사는 법원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법원행정처장의 입장 발표가 거짓임을 암시하는 뜻을 내비쳤다.

이런 상황에서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 차원의 진상 조사를 청원문 형태로 게시, 3월 13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인복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에게 이 사건과 관련한 진상조사를 요청함과 동시에 조사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그에게 위임했다.
 

▲ 법원행정처 모습 / 이미지 출처 : 대법원

이인복 위원장은 전국 법관들에 진상조사위원 추천을 요청하여 판사회의가 추천한 20여명과 개인이 추천한 30여명의 인사 중 6명을 조사에 참여시켰다. 조사에 소요된 기간은 총 26일이다.

이렇게 꾸려진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범위로 정한 사항은 ▲법원행정처의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 관련 의혹 ▲법원행정처 심의관 이모 판사의 인사발령과 겸임해제 관련 의혹 ▲위 사건의 처리 및 수습과 관련된 사법행정권 남용과 특정 연구회 활동 견제 및 특정 학술행사에 대한 연기·축소 압력 의혹이다.

조사를 마친 진상조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발표했다. ▲법원행정처가 평소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사모’의 활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주목한 것은 맞으나, 활동의 부작용 등에 관한 우려를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평소에 부당한 견제와 압박을 하지는 않은 점 ▲이규진 상임위원이 연구회가 주최하는 공동학술대회와 관련하여 법원행정처 고위급 회의에서 조치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하고, 연구회 관계자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학술회의 연기 및 축소 압박을 가한 점은 부당한 행위라는 것 등이다.

또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국제인권법 연구회나 공동학술대회에 대한 제재로 볼 만한 의심스런 정황이 많아 사법행정권 남용에 해당하는 점과 ▲이모 판사의 인사발령과 겸임해제가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관련된 부당한 지시와 간섭으로 인한 것으로 볼 소지가 충분하며, 이모 판사 역시 이를 견디기 어려워 사직의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인정했다.

나아가 ‘법관 블랙리스트’에 대하여는 ▲이모 판사가 이규진 상임위원으로부터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를 한 비밀번호가 걸린 파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나 이모 판사 본인도 그 파일이 일반 법관이 아닌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취지로 받아들였고, 그에 따르면 해당 파일은 결국 ‘인사모 관련 공동학술대회 대책 문건’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해당 문건들은 이미 조사 결과에서 ‘부당한 지시와 간섭’으로 적시된 바와 같다.

시각 차, 어느 지점에서?

지난 6월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는 “판사를 얼마나 우습게 알기에 (법원행정처가) 뒤에서는 일선 판사들의 자유로운 연구모임과 학술회 활동에 압력을 가하고, 국민 앞에서는 거짓으로 해명을 하는가”라는 성토가 나왔다.

이렇듯 관료화된 법원의 조직문화와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은 사법권의 독립을 해치고 법원의 신뢰를 떨어뜨리며 윗선의 눈치만 보는 판사들을 양산해 사법 선진화를 가로막는다는 주장이다.

당시 광장의 촛불이 적폐를 몰아내고 대통령의 탄핵·파면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던 마당에, 그 동력으로 오랜 염원이던 사법부 개혁까지 달성해야 할 골든타임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개혁의 불씨가 될 전국 법관 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행정처의 권고대로 하반기로 미루었다가는 개혁의 적기를 놓칠 것이라는 심리도 작용했던 것이다.

또 블랙리스트가 실제 존재하는지가 핵심 쟁점인 이 사건에서 해당 컴퓨터 조사를 빠뜨린 것은 의도적인 은폐라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반대 시각도 만만찮다. 한쪽에서는 개혁의 골든타임이라고 해석했던 바로 그 때가, 법원 윗선에서는 ‘더욱 옷깃을 여미고 행동을 단속해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국론이 대립하며 갈등이 표면화된 상태에서 사법부마저 정치적 영향 하에 놓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방어적 태도를 취한 것으로 선해할 수 있다는 것.

관료적 조직문화에 젖어 있는 선배 법관 세대가 후배 법관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옛날 방식을 취하며 통제와 간섭에 나선 것에 대하여는 유감을 표명함과 동시에 “접근 방식에 세대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일선 판사들의 주장처럼 마치 범죄 혐의가 있는 것처럼 기조실 컴퓨터를 조사하는 것은 실제 범죄 혐의가 있는 판사의 경우라도 본인 동의 없이는 하지 않는 행위”라며 추가조사를 거부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설명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A(전직 판사)는 이번 사건을 “법관의 승진체계에 대한 일선 판사들의 오랜 불만이 쌓여 지금과 같이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자, 평가받는 입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블랙리스트라는 허상에 대고 표출한 것”이라는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법원을 사랑하고 동료 법관들을 아끼는 마음이야 모든 판사들이 다 같다. 같은 마음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것이 좌초되고 시련을 겪은 것은 다양한 외부적 문제와 이해관계가 개입됐기 때문이지 윗선에서는 사법부 개혁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아서 아니”라며 “개선해야 할 점은 뜻을 모아 이루어 나가되, 객관적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의 결과와 대법원장의 사과가 나온 이 시점에 이 이상으로 논의를 키우는 것은 법원에도 결코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향후 전개 어떻게 되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24일 제2차 회의를 가졌다. 이 날 회의에는 각급법원 대표로 선정된 99명 중 94명이 참석했다.

전국에서 모인 법관 대표들은 먼저 재조사를 거부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강한 유감을 표명, 추가조사결의를 수용할 것을 재차 요구했으며, 이러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노력은 오는 9월 24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서 사법부 인적 구성에 변화가 오더라도 계속 이어질 것임을 선언했다.

한편 이번 2차 회의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법관의 독립보장·민주적인 사법행정의 실현·사법행정권 남용방지를 위한 구체적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과 △제도개선 특위 위원장 기타 분과위원회·위원장, 간사 등과 관련한 사항까지 정했다.

또 제도개선 특별위원회가 논의할 수 있는 사항으로는 ▲사법행정권 남용방지를 포함한 법원행정처 개혁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폐지 및 지방·고등법원 이원화 ▲판사의 비재판보직 ▲제1심의 단독화 및 충실한 심리 ▲지역법관제와 전보인사 ▲사법평의회 등 개헌 관련 논의 ▲일정한 범위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의결기구로서의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방안 ▲사무분담의 결정, 각급 법원 판사회의의 실질화 방안,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의 보임, 근무평정 문제 등을 예시했다.

이처럼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는 앞으로 사법부의 본질적 구조개혁을 견인할 핵심 논제들을 논의하게 된다. 안그래도 사건 부담으로 어깨가 무거운 일선 판사들이 이토록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대하여는 “그만큼 사법부의 대수술이 한 발 가까워진 것”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판사 B는 “사법부 개혁은 판사들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며 “신뢰할 수 있는 법원, 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국민들이 사법부 개혁에 더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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