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47) -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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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47) -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 차근욱
  • 승인 2017.07.2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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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한 남자가 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어린 딸을 병으로 먼저 보내야 했다. 운명이니 뭐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딸을 잃어버린 순간, 자신 역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성공한 광고인이자 CEO였지만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것은 불행 그 자체였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사랑’과 ‘시간’과 ‘죽음’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라는 영화의 출발점은 이토록 뭉클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다소 학예회의 연극을 연상시켰다. 그럼에도 제목이 잊히지 않았다. 정말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난다면 조금은 따지듯 혹은 약간은 애원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하나 둘 쯤 맺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타인의 일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다른 사람의 아픔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이가 있던가. 인간이란 존재의 자기애(自己愛)적 태도는 굴레다. 벗지 못하는 족쇄다.

어느 날 조금 심하게 다쳤을 때,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조카가 말했다. “삼촌이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내 발이 아픈 것만큼은 아닐거에요.” 엄지발가락 끝에 밴드를 붙이고 있던 조카가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민수가 많이 아프구나.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 나는 조카를 감싸 안았다. 아마 조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파하지 마세요, 라고 하는.

효율성도 중요하고 효과성도 중요하다. 엘리트주의도 필요하고 성과주의도 필요하다. 사회는 결과만을 묻는다. 그건 당연하지. 더 이상 애가 아닌걸. 하지만 그렇게 의젓한 어른들의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겨야 한다. 누군가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 한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도 있다. 하지만 1등만을 기억하는 사회에서 패자는 잉여다. 무능하고 무가치한 패자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정작 승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뿐이라 할지라도.

패자에 대한 공포는 이겨야 한다는 강박을 만든다. 모두가 얼어버린 듯한 도시 속에서 그렇게 우리는 혼자가 된다. 모두가 승자일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잉여가 된다.

어디 사람이 나빠서 그럴까. 그저 두려움에 질려 악다구니로 달겨드는 거겠지.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미망(迷妄)에 끝없이 비난하고 저주하고 음해하는 거겠지. 그러니 그 마음은 또 얼마나 지옥이겠나.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풍족해 지기 위해 우리는 혼자가 된다. 주위를 돌아볼 겨를 없이, 소중한 것을 잃어가며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비루해지고 있는지 알아챌 겨를 없이. 그러다 어느 날 덜컥, 우리는 깨닫는다. 이젠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음을,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살다보면 아픈 날이 있다. 몸이 아픈 거야 약을 먹거나 병원이라도 갈 수 있지만 마음이 아픈 날은, 견디고 참아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모든 것이, 오롯이 자신의 몫일뿐이다.

어쩌면 아픔보다 충격보다 더 잔인한 것은, 선듯 전화 한 통 할 곳 없는 현실일지 모른다. 그 어떤 어려움도 함께라면 견디고 해결해 가겠지만, 손 내밀 이 없는 이 고독이야말로 정녕 감당할 길 없는 슬픔이라는 것을 세월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

영화 ‘로건’에서 로건은 마지막에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루 하루의 무게를 지탱하며 버티던 무의미 속에서 이제는 자신이 지켜야 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세월대신 사랑할 소중함을 찾았기에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사랑이 되었든 시간이 되었든 죽음이 되었든, 그나마 뜻 전할 어딘가 있다면 천행일지 모른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거인의 시어(詩語)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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