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 남산, 정치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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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남산, 정치의 공간
  • 신희섭
  • 승인 2017.07.2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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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역사는 선택(selection)과 유추(analogy)해석의 공간이다. 어떤 사건을 선택하고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지의 영역으로서 역사는 치유의 공간이자 투쟁의 공간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하고 사죄를 통해 역사는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다. 한편 역사는 살아있는 자들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지배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 앞에서 재미와 두려움을 느낀다.

2017년 6월 19일 서울시는 남산자락에 ‘다크 투어’를 할 수 있는 두 개의 길을 조성하여 2018년 8월까지 공개하겠다고 하였다. 다크 투어? 좀 생경한 용어다.

다크 투어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에서 나왔다. 이미 외국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다크 투어리즘은 비극적인 기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기억을 강화하기 위한 여행을 말한다. 예를 들면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박물관이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나 우크라이나에 있는 체르노빌 발전소나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관이 된 원폭 돔을 들 수 있겠다. 한국에서도 서대문형무소나 거제도포로수용소나 제주 4.3평화공원이 비극적 역사의 기억을 증폭시키는 다크 투어리즘의 공간이다.

비극을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기억을 생생히 함으로서 간접적이지만 경험을 살리는 것이 다크 투어라면 그 반대 여행도 있다. 그랜드 투어(Grand tour)가 그것이다. 18세기에 영국을 대표로 하는 유럽의 귀족자식들과 지식인들에게 유행했던 것으로 르네상스의 중심에 있었던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는 것이다. 귀족자제들이 이탈리아일대를 그냥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를 잘 아는 철학자나 지식인을 대동하여 이태리인들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현재로 보면 해외여행과 유학을 같이 즐기는 것이다. 여행을 하며 문화를 배우고 그 속에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재생산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랜드 투어를 즐긴 대표적 인물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있다. 그는 20개월이 넘는 기간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기행기를 남겼다.

한국은 한동안 복잡한 세상을 잊고자 먹는 것에 빠져있었다. 최근에는 힐링을 명분으로 여행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 다양한 여행방식들이 소개되고 국내외의 장소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여행(旅行)은 글자대로 나그네(旅)가 자신의 집을 떠나 돌아다니는 것(行)이다. 그러니 여행은 기꺼이 나그네가 되기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익숙했던 곳을 벗어나려는 의욕적인 행위이다. 가서 새로운 것을 보는 관광(觀光)을 할 수도 있지만 쉬면서 기력을 보충하는 휴양(休養)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새로움을 찾고 싶거나 쉬면서 빠진 기를 보충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움과 휴식을 위해 여행에 관심이 늘면서 다양한 여행의 방법들이 응용되고 있다.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지식인들을 대동하고 그랜드 투어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만들었던 것이 현재 한국에서는 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알쓸신잡>이나 <배낭속의 인문학> 혹은 <동네의 사생활>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방송사들이 몇 몇 지식인들을 대동하고 국내외를 여행하면서 지식인들이 가진 지식을 쏟아내 시청자들에게 지적 대리만족을 전하고 있다. 한편으로 <무한도전>의 ‘위대한유산편’처럼 역사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비극적 경험치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여행으로 문화가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서울시는 남산을 다크 투어의 중심으로 삼겠다고 한다. 그런데 남산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2017년 현재 남산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이런 것들일 것이다. 돈까스집. 서울타워. 자물쇠. 둘레길.

그런데 1960년대에는 남산하면 어떤 단어들이 연상되었을까? 신혼여행, 케이블카. 중앙정보부. 해방촌. 사창가. 아마도 1960년대에는 이런 단어들이 가장 많이 연상되었을 것이다.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가기 전 드라이브를 즐기던 시절, 드라이브 자체가 신혼여행이었던 시절에 남산은 신혼여행사진 속 배경이었다. 아름다운 그림 뒤에는 어두운 그림도 있었다. 1961년 5.16 군사쿠테타가 발생한 뒤 남산에는 중앙정보부가 자리를 잡았고 민주화이후 1995년 12월 안기부가 청사를 이전하기까지 중앙정보부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박종철 열사로 상징화되는 권위주의 공포정치의 아이콘으로 기능하였다. 쿠테타에 대한 불만을 줄이기 위해 남산케이블카가 1962년 설치되었고 남산타워와 철탑은 1969년에 설치되어 방송을 송신하며 권력을 강화하였다. 또한 지금은 핫 플레이스이지만 한국전쟁의 피난민들이 남산 남측 자락에 자리를 잡아 만들어진 해방촌이 있고 남산 서측 서울역 건너편으로는 사창가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전쟁과 가난이 권력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남산하면 무엇을 떠올렸을까? 아마도 조선통감부와 조선신궁이었을 것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 남산은 일본의 정치적 지배와 문화 통치의 중심에 있었다. 현재 애니메이션 센터가 있던 자리에는 한일합병이전 조선통감부가 있었고 병합이후에는 조선 총독부로 바뀌어 조선통치를 담당했다. 1926년 조선총독부 신청사(경복궁 앞에 있었다가 1995년 철거)로 옮길 때까지 남산은 한국인들을 지배하는 실체적 권력의 구심점이었다. 일본은 현재 숭의여대 자리에 경성신사를 만들었고 이후 1920년부터 남산의 중심자리에 소나무들을 베어내고 조선신사를 건설했다. 1925년 일본은 조선신사를 신사중 가장 높은 등급인 관폐(官幣)대사 등급의 조선신궁으로 격을 높였다. 1939년 건설을 시작한 부여신궁이 완성을 못 보았기 때문에 조선에는 유일한 신궁이 된 조선신궁은 일본 건국의 신인 아마테라스 오오카미(天照大神)와 1912년 사망한 메이지천황을 주신(主神)으로 하였다. 지금 삼순이 계단으로 불리는 남산계단은 이 신사를 올라가는 초입 계단이었는데 당시에는 남산 중턱까지 계단이 이어져 4대문 안 어디에서도 조선신궁과 신사가 보였다고 한다.

신궁을 통해 식민 지배자인 일본은 국가종교인 신도(神道)를 조선인들에게 강요하였다. 황국신민서사를 암송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면서 일본은 한국의 정신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래서 조선신궁보다 위에 있던 태조가 세운 국사당(國師堂)을 인왕산으로 보내버리기도 하였다.

일본은 정신을 강조하지만 물리적 힘을 숭상하는 국가이다. 일본은 ‘혼’을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 ‘힘’을 뼛속 깊이 이해하는 마키아벨리적 국가이다. 반면에 조선은 관념을 강조하는 플라톤적 국가였다. 지배자인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관을 뼛속깊이 유교를 자리매김하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관철하고자 했다. 정신을 강조하는 플라톤적 국가인 조선의 지배는 결국 힘이 아니라 관념을 통제하는데 있다는 점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던 일본은 지배자의 권력을 동원하여 일본 혼을 불어넣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조선통감부와 조선신궁은 힘과 관념통제라는 정치의 중심무대였다.

역사를 되돌리기 위해 신궁터를 정비하며 한양도성을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되어 지금은 일본 흔적을 지우고 있지만 다크 투어는 이러한 부끄러운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드러내고 인정하기. 남산 다크 투어는 ‘국치의 길’과 ‘인권의 길’로 일본지배의 역사뿐 아니라 권위주의의 역사도 드러내고자 한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와 권위주의 시대에 남산 자락을 지배했던 이들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이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며 역사와 현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드러내기는 역사를 다시 현실 투쟁의 장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치유되지 않은 역사이기에. 부끄러움을 드러내 치유와 비극의 반복을 피하겠다는 낙관적인 결과만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드러내면 해석이 공간이 열리고 그 공간에는 현재의 권력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또 한 번의 역사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남산은 여전히 권력과 정치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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