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상태바
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 노범석
  • 승인 2017.07.18 1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법국사 노범석 교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식민지 조선의 빛과 그늘, 영화 <모던 보이>와 드라마 <왕초>

혈색 좋은 흰 피부가 드러날 만큼 반짝거리는 엷은 양말에, 금방 발목이나 삐지 않을까 보기에도 조마조마한 구두 뒤로 몸을 고이고, 스커트 자락이 비칠 듯 말 듯한 정강이를 지나는 외투에 단발 혹은 미미가쿠시(당시 유행하던 머리 모양)에다가 모자를 푹 눌러 쓴 모양 …… 분길 같은 손에 경복궁 기둥 같은 단장을 휘두르면서 두툼한 각테 안경, 펑퍼짐한 모자, 코 높은 구두를 신고 …… - “별건곤”(1927. 12월호) -

미래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위 사료는 2017년 서울시 7급 한국사 문제에서 그대로 출제되었다. 물론 1920년대 잡지인 “별건곤”을 알았다면 사료의 내용을 볼 필요 없이 일제 강점기인 걸 유추할 수 있었겠지만, 위 문제의 출제 의도는 잡지가 아니라 사료가 무엇을 보여 주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1920년대 말 최신의 서양식 옷차림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다니며 쇼핑과 외식을 즐기는 젊은 남녀들, 이른바 ‘모던 걸’과 ‘모던 보이’라고 불리는 이들로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새로운 사회 변화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개정 한국사에서 서술이 강화된 부분 중에는 일제 강점기 사회 모습의 변화가 있다. 7차 교육 과정 초기까지 일제 강점기에 대한 서술은 크게 일제의 수탈 혹은 침략과 민족의 독립 운동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만 구성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간 학계에서 연구해 온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생활상이 교육 과정에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7차 국정교과서도 2007년 개정판부터는 일제 강점기 사회 파트에서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변화”, “의식주 생활의 변화”가 추가되었는데, 2015년 사회복지직 문제에서 나온 ‘토막집’이 여기에서 출제되었다.

현행 고등학교 개정 한국사에서는 아예 이러한 서술 경향이 강화되어 대부분의 검정 교과서에서 독립된 파트로 다루고 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식민지 시기 경성 등 대도시의 눈부신 발전 모습과 지방 농민의 몰락과 도시 빈민의 비참한 삶을 동시에 조명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주로 ‘모던 걸’과 ‘모던 보이’, 후자의 경우 ‘토막민’을 주요 자료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부 교과서에서는 나혜석 등 신여성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조명하여 일제 강점기의 여성의 삶을 다루기도 하였다.

 

최근 일제 강점기를 다루는 영화들은 이러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로 대표되는 번화한 경성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을 하고 있다.

의열단의 활동을 다루는 <암살>이나 <밀정>과 같은 영화에서부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원스 어폰 어 타임>, <경성학교>, <해어화>, <아가씨> 등 다양한 영화들이 식민지 시기 도시의 모습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약 10년 전인 2008년에는 아예 <모던 보이> 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한 적도 있었다. 이지민 작가의 장편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원전으로 한 이 영화는 경성 어느 곳에서나 즐비한 카페, 댄스 클럽, 신입 가수의 오디션을 여는 레코드사 등 경성의 화려한 모습들을 끊임없이 소개해주고 있다. 그 사이로 서양 복식을 즐겨 입고 사치를 좋아하는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이 경쾌하게 걸어다닌다.

반면 일제 강점기 도시 빈민의 삶을 다룬 작품의 경우 주로 김두한과 연관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2000년대 초중반 유행한 <야인시대>가 대표적이지만 1999년 MBC에서 상영하였던 <왕초>가 식민지 시기 도시 빈민의 모습에 상대적으로 더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다.

 

김춘삼이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지만 작중의 상황은 대부분 허구인 이 드라마에서는 청계천 지류에 있었던 ‘염천교 거지’들을 중심으로 왕초 김춘삼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김춘삼 등 염천교 거지들이 살았던 움막을 교과서에서 나왔던 토막집이라고 보면 된다.

식민지 시기 경성을 비롯한 조선의 대도시들은 식민지 공업화가 추진되면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곳에서 일본인은 시가지 중심을 차지하고 도시의 경제권을 크게 장악하였는데, 이에 일본인이 거주하는 도시의 중심 상권은 외형적으로 크게 발전한 반면, 거적을 둘러친 토막집에 사는 도시 빈민층도 크게 늘어났다.

이는 ‘모던 걸’과 ‘모던 보이’로 대표되는 식민지 대도시의 화려한 삶은 사실 지방의 농촌과 도시 빈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근대화의 흐름은 식민지였던 조선에서도 동일하게 진행되었지만, 그 폐해 또한 고스란히 누적되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