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46) - 그 시절의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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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46) - 그 시절의 스포츠
  • 차근욱
  • 승인 2017.07.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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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살다보면 가끔 누군가 ‘운동 좋아하는지’ 물어볼 때가 있다. 물론 좋아 한다. 하지만, 모든 운동은 아니다. 족구와 축구는 예외니까. 군대에서의 폭압으로 인한 트라우마일지도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이 부담스럽다. 말했잖나. 군대에서의 폭압이 정말 싫었다고.

군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눈이 뒤집혀 있는 사람은 정말 싫었다. 그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축구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런 종류의 사람은 자신에게 패스를 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공을 차서 패스해도 무자비한 구타를 휘두른다. 그럼 어쩌라구. 축구를 하는데 자신을 향해 발로 공을 찼다고 때리다니!
 

물론 나도 어린 시절에는 공놀이를 했다. 중학교 때에는 비를 맞아가면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 즐거웠고, 고교시절에는 일요일 아침 일찍 친구들과 모여 농구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군 시절을 거치면서 공은 부담스러워졌다. 파블로프의 축구랄까. 뭐, 여튼 그런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구기 종목에 대해서는 잊고 살았다. 실은 월드컵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이기면 이겼나보다, 지면 졌나보다 하는 정도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도 보았다. 휴지를 대한민국 아무데나 버린다거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숨 쉬며 걷고 있는 길에서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피우면서도 애국심을 부르짖는 분을 볼 때면 왠지 유체이탈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뭐, 그런 마음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애국심이 4년에 한번 찾아오나.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 야구, 권투였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 도전할 때면 뜨겁게 피가 끓었고, 프로야구의 열기나 봉황기 고교야구의 열기 또한 그에 못지않게 뜨거웠으며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우리 복서를 응원하는 온 국민의 마음이 뜨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세상은 점점 더 화려해지기 시작했고 세계챔피언이나 세계 대회에 참가하는 우리 선수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메이져리그 선수에 대해 평가하고 유럽축구를 이야기하며 UFC를 보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곤 하는데, 무언가 소박한 충실함을 잃어버린 채 더 크고 더 화려한 모습만이 전부가 된 것만 같아 헛헛하기까지 했다.

옛 복싱 팬들이라면 기억하실 법한 음악이 있다. 지금이야 TV에서 복싱 중계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 선수가 나오는 TV 복싱 중계를 할 때면 꼭 나오던 나팔소리 시원하고 긴장으로 설레이던 음악. 그런데 그 음악을 우연히, 아주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다.

그 음악 속에서 문득 내 어린 시절, 축구중계를 보시는 아버지 곁에 누워 잠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뭔가 열기가 전해질 듯한 TV중계 소리와 더불어 아버지 곁에 있으니 마음이 편안했는지 잠이 솔솔 왔다. 아마 그 기억 속의 꿀잠은 내 인생 최고의 꿀잠이 아니었나 싶다. 평화롭고 아늑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의 흥겨움에 취해 스르륵 꿈나라로 떠날 수 있었으니까.

그 시절, 스포츠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산업이 되고 배팅의 대상이 되기 전의 스포츠는 우리말이 촌스러워만 보이던 시절, 용기를 주는 드라마이기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따스함을 나누는 기회이기도, 친구와 이웃들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이기도 했다. 무조건 옛날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새 모든 것이 풍족해지고 화려해지면서 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도전의 결과만을 이야기하며 도전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정체모를 헛헛함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무언가로 인해 아버지 곁에서 잠이 들던 시절의 소란스런 따스함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치킨 한 마리로 온 가족이 행복했고, 챔피언을 무너뜨린 도전자의 카퍼레이드가 있던 그 시절이 새삼 아련했다.

뭐든 쉽게 말하고 쉽게 얻는 세상이 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감사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더 이상 본이 되지 않는다. 복싱 중계 음악만으로도 모두가 모여 앉아 고구마라도 쪄서 나누며 도란도란 서로의 온기를 의지하던 그 시절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프로포폴에 의지해서라도 깊게 잠들고 싶은 이 시대에, 우리는 도대체 어떤 추억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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