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45) - 낯선 단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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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45) - 낯선 단골집
  • 차근욱
  • 승인 2017.07.1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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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오랜만에 찾아갔으니 뭐 그리 불평할 깜냥이 안 될지도 모른다고, ‘변했네’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렸을 때, 나는 문득 떠올렸다. 나는 정해진 패턴 내어서 정해진 옷을 입고 정해진 일들을 하며 정해진 가게에서 정해진 음식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식사와 관련해서는 지역에 따라 늘 가는 집과 메뉴가 정해져 있다.

다른 분들은 점심에 먹었던 것을 저녁에 어떻게 또 먹느냐고 하시기도 하고, 매번 가는 곳에서 매번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지겹지도 않느냐고도 하시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쉽게 질리거나 싫증을 내는 종류의 인간이 아닌 탓에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인생 역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탓인지는 몰라도 덕분에 항상 가던 단골가게가 변하기라도 하면 제법 섭섭하다.
 

얼마 전에 가끔 찾던 횟집에 갔더니 그 사이 가게가 확장을 하여 옆에 위치했던 생선구이 집 대신에 큰 홀의 음식점으로 환골탈태 해 있었다. 덕분에 물론 훨씬 깨끗하고 환한 인테리어의 가게가 되었지만,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전에 알던 그 가게가 아니라는 느낌에 섭섭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홀에 계신 아주머니가 낯설어 들어갈지 말지 쭈뼛거리고 있으려니 안면이 있던 사장님과 홀 이모님이 주방에서 인사를 해오셨다. 아, 그 가게가 맞긴 맞구나. 그런 연고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새로 뵌 아주머니는 무표정의 사무적 태도로 주문을 받았고 꼭 그런 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같으면 알아서 갖다 주시던 찬을 달라고 하기도 무안했다. 왠지 주문하고 먹는 자리가 바늘방석만 같았고 빨리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쫓기듯 먹고 일어났다.

음식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해야 했을 테고, 매운탕에는 제법 큰 조개 2개가 들어가 서비스는 훨씬 더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정말 딱 먹고 가라는 느낌. 전에 단골로 찾던 집에서 느꼈던 위안과 편안함은 더 이상 없었다. 그 곳은 더 이상 이야기가 있던, 예전에 좋아했던 바로 그 가게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 여기 딱 5만원어치가 있다. 그러니 먹고 가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 흔한 이야기다. 잘 되는 가게가 확장 이전을 한 뒤에 전에 찾던 손님들이 허전해 하는 것은.

살다보면 좋은 가게라고 느끼는 곳도 있고 나쁜 가게라고 느끼는 곳도 있다. 대체로 좋은 가게라 느끼는 곳은 편안함을 주지만 대체로 나쁜 가게라 느끼는 곳은 당혹감을 준다. 여행 중 우연히 차를 세우고 들어갔던 길가의 털게탕 집이 그랬고, 바닷가에서 겨우 찾았던 설렁탕 집이 그랬다. 그리고 보니 여행지에서 만난 음식점들의 기억은 상처로 남았다. 그것은 뜨내기의 지갑을 노리는 몰염치함에 대한 분노와 당혹과 배신감이 섞인 미묘한 감정이다.

무뚝뚝한 직원에, 원점을 잊은 음식 그리고 무미건조한 공간. 5천 원짜리 국밥 하나에도 든든히 먹고 가라며 고봉밥에 웃어 주시는 사장님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비싼 요리라도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장사꾼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가끔 사람이 변했다는 소리를 하거나 듣는다. 저 사람이 더 이상은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구나, 싶을 때 우리네 마음은 서운하다.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거나, 내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져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결국 내려놓고 마는 이별을 겪는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겠지. 그저 살아가는 길에서 갈림길을 만났을 뿐, 그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섭섭하다 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처음부터 여행지에서 만난 사이라면 몰라도 이제 와 불평을 한들 불평조차 쓸쓸할 뿐이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젠 길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밖에.

누군가는 또 새로운 단골이 될 것이다. 그에게 가게는 처음부터 넓고 환해서 마음에 드는 장소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아 이번에 바쁜 일만 지나면 한번 찾아가 느긋하게 먹다 와야지, 라고 생각하며 그리워하겠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푸근함을 느끼면서.

사람이 살다보면 변했다 싶을 때가 있다. 그게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나는 정말 단골의 자격이 있는지, 나도 그저 환하고 넓고 그럴듯한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잊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털게탕과 설렁탕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싹해졌다.

아.. 아.. 이제 나는 어디에 가서 매화수에 광어회를 주문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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