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21)-일본의 침략 야욕과 러일전쟁 - 최남선이 지은 창가 <경부텰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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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21)-일본의 침략 야욕과 러일전쟁 - 최남선이 지은 창가 <경부텰도노래>
  • 이유진
  • 승인 2017.07.0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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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남부고시학원 국어

국사전공지식 : 이재혁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 남대문를 등지고 떠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 / 날개 가진 새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 섞여 앉았고 / 우리 내외 외국인과 같이 탔으나
내외신소(內外新疎) 다같이 익히 지내니 / 조그만한 땅 세상 절로 이뤘네
관정묘와 연화봉 들러 보는 중 / 어느덧에 용산역에 다다랐다.
새로 이룬 저자는 모두 일본집 / 이천여 명 일본인이 여기 산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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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의 <경부텰도노래>는 스코틀랜드 민요의 음정에 맞춰 불렀던 개화기의 창가입니다. 주요섭의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가 배웠다고 하는 노래죠. 신문물을 찬양하고 사해동포주의를 노래한 이 창가는, 일본에 의해 멋대로 개발되고(?) 있는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그렸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영국 스티븐슨이 만든 최초의 증기기관차가 1825년 운행에 성공한 이래로 철도는 과학 기술과 산업혁명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1) 최남선이 경부선에 대해 찬양을 담아 노래를 짓게 된 것도 이런 관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부선은 일본이 당시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대한제국을 희생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보아야 합니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랴오둥반도와 만주일대까지 장악하자, 부담을 느낀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삼국 간섭’을 통해 이를 저지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러시아는 일본의 영향력이 한반도에서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극구 막으려 하였습니다. 이에 일본은 러시아가 만주를 차지하는 대신, 자신들이 한반도를 차지하도록 해달라는 절충안을 내놓았으나 러시아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대한제국은 이러한 두 국가의 세력 싸움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일본을 몰아내려는 친 러시아 외교를 펼쳤죠. 일본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자신들이 배제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1904년 개전을 선언하였고, 중국의 러시아 조차지인 랴오둥반도의 뤼순항을 점령하면서 약 1년간의 러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열강 사이에서 위기감을 느낀 대한제국은 1904년 1월 21일, 국외중립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를 무시한 채 전쟁 개시와 함께 서울을 장악하고, 2월 23일 공수동맹의 성격을 띤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습니다. 여기서 일본은 “한국은 일본에게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고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에 따라 군수 물자의 수송을 목적으로 경부선과 경인선 공사를 서둘렀습니다.

1901년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서울~부산의 건설을 시작하였고, 약 4년 만에 완공하였습니다.2)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1월 1일에 개통되었고요. 경부선이 완공되는 동안 공사장 주위에 사는 조선인들은 ‘한일의정서’에 따라 토지 징발과 인력 동원, 물자조달 등을 일본군의 감시 하에 강제로 부담해야 했습니다. 농민들은 농번기에도 공사에 동원되었으며, 식량과 가축도 수시로 징발되었습니다. 유랑민이 속출했죠. 대한매일신보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철도가 통과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 집에 아홉 집은 텅 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 시흥과 파주, 곡산과 평산 그리고 평양 등지에서 조선인들은 이에 항의하는 싸움을 벌였고, 선로 위에 큰 돌을 놓아 저항하였다. 이런 사건의 주모자는 잡히는 대로 사형에 처해졌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경부철도주식회사를 매개로 한국 정부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한국 내 모든 간선철도를 군사철도로 부설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이로써 한국 간선철도의 부설권과 운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3) 이러한 철도 완공으로 일본이 군사와 물자를 직접적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위치에 수송할 수 있었기 때문에 러일전쟁의 승리했다고도 볼 수 있죠. 결국 한국인의 땀과 피눈물로 만들어진 철도가 일본 제국주의 침탈을 위한 교두보가 된 셈입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던 1905년 러시아 발틱 함대가 일본 함대의 기습공격으로 궤멸당하는 ‘대이변’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누구도 일본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지만 ‘쓰시마 해전’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은 결정적 승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1905년 8월에 포츠머스 조약이 러·일 양국 간에 체결되었고, 일본은 승전국으로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의 ‘전리품’으로 대한제국을 얻었고, 1905년 12월 을사조약을 강행하면서 이를 현실화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철도를 놓았다면 남북 X자 형이 아니라 산악 지형을 극복하는 동서철도를 먼저 놓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남북 철도가 먼저 개통된 것이죠.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해 조선인의 땅과 공사 인력을 수탈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철도를 신문물로 받아들여 <경부철도가>와 같은 희망찬 노래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최남선은 1949년 친일 반민족 행위로 기소되었습니다.

[법정에 선 반민족 행위자들의 최후 진술 - 최남선]4)
까마득하던 조국의 광복이 뜻밖에 얼른 실현되어 이제 민족 정기의 호령이 굉굉히 이 강산을 뒤흔드니…… 오직 공손히 법의 처단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채찍을 감수함으로써 조그만치라도 국민 대중 앞에 참회의 표시를 삼는 것 외엔 다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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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현대사신문 : 근대편 1876~1945, 문사철 기획· 강응천 외 지음
2) 한국철도의 역사와 발전Ⅰ, 이용상 외 공저, 북갤러리
3) 한국철도의 역사와 발전Ⅰ, 이용상 외 공저, 북갤러리
4)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2012. 4. 9., 휴머니스트

2013 서울시 7급

※ 경부선과 경의선이 개통되면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종단 철도가 완성되었다. 이 두 철도가 개통되는 것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사건은?

① 임오군란 ② 청·일 전쟁 ③ 러·일 전쟁 ④ 한·일 병합 ⑤ 제1차 세계 대전

정답 ③
일제가 러·일 전쟁 중 물자와 군대의 이송을 위한 목적으로 경부선(1905)과 경의선(1906)을 개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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