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짜 사법개혁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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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짜 사법개혁 무엇인가?
  • 이순철
  • 승인 2017.07.0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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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 전 목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양승태 대법원장이 ‘판사회의 상설화’를 수용함으로써 “풀뿌리 사법개혁 시작됐다”고들 야단이다. 판사들이 인사 등 사법행정에 목소리를 낼 통로가 생기면서 대법원장의 권한은 대폭 분산될 것이라며 ‘아래로부터의 선제적 개혁’을 예상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오늘과 같은 변화가 진정한 사법개혁과는 거리가 있다. 두 가지 관점에서다.

그 첫째는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된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선언한 ‘판사회의 상설화 수용’이 억지 춘향이로 보여서 그렇다. 어쩌면 대법원장 임기 말을 무난히 보내자는, 국면 전환과 소나기 피하기 조치다. 항시 그렇지만, 질 나쁜 채무자는 애초에는 빌리지 않아서 줄 돈이 없다고 잡아떼다가, 나중에는 빌린 돈이 조금 밖에 없다고 말을 바꾸고, 마침내는 구속이 풀려야 나가서 갚겠다고 한다.

양 대법원장 그동안 사법부의 퇴행을 주도해 왔다. 심지어 젊은 법관들에 의해서 ‘양승태 씨’로 호칭될 수준에다, 한 시민단체로부터 형사 고발되기까지 개혁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못 들은 체 해왔다. 그래서 이제 와서 판사회의를 수용한다는 것에는 더 큰 개혁을 막아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한 사법행정 개혁을 주제로 한 토론장에서, 양 대법원장을 고발한 시민단체 대표는 ‘대법원의 아웃소싱’을 주장했다. 즉, 지금까지 개혁의 대상, 부패한 재판을 일삼아 온 자들에게 무슨 사법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법원조직 밖의 법조인들로 ‘새로운 대법원’을 짜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이래 양산된 오판과 퇴행적 관례를 지켜 보아온 사람의 귀에 각별한 설득력으로 다가왔다.

판사회의 상설화 수용이 사법개혁의 진짜가 아니라는 두 번째 이유는 지금 사법부 자체 내에서 개혁을 외치는, 판사회의를 요구하는 법관들을 포함한 모든 법관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이 법원 밖 시민들의 눈으로 볼 때는 소장 법관들이 고위 법관들로부터의 독립선언을 하는, 말하자면 자기네끼리의 싸움질에 불과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젊은 판사들이 아직 사법행정의 칼자루를 쥐지 못 한 상태라서 그렇지 그들도 지금까지 그들이 비판하는 사법행정의 틀 안에서 키워지고 동화되어, 작으나마 그 권위를 향유해오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법개혁은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가? 이 화두에 답하지 아니하고는 사법개혁 요원하다. 시민들은 젊은 법관들이 선배 법관들로부터, 아니, 법원이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독립하느냐 마느냐 따위에 관심이 있다 하여도 별로 크지 않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 자기의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고 회복하자는 것이 관심사항일 뿐이다. 가사 독립되지 아니한 판사라도 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판결해서 권리를 찾아주면 그게 바로 ‘나의 주님’인 것이다. 이 점은 예컨대 지금 판사회의의 상설화를 주장하는 젊은 판사들 역시 드러내놓고 부정하지 않을 것이고 못할 것이다.

우리가 두루 모델로 삼아온 독일에서는 법원이 하는 일을 법률봉사 내지 돌봄(Rechtspflege)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판사들에 대한 인사와 재정이 모두 각 주(독일은 연방 국가이니)의 법무장관 소속이고, 판사도 검사도 프로이센 이래 국가 관료(Beamte)로 취급된다. 그렇지만, 우리처럼 극심한 사법행정권에 의한 재판간여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된 적은 없다. 요즘의 판사회의 상설화 논란이 타산지석 삼을 부분이 아닌가 사료된다.

생각해 보자. 사법권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 도대체 왜 있는가? 지극히 쉬운 답이지만,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이다. 진실과 정의에 가까운 판결이 나올 수 있게 외부 권력이나 다른 사람의 간섭과 영향을 받지 않게 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이유로 주권자인 국민이 법원과 법관에게 넘겨준 사법권이 진실한 사실관계와는 동 떨어지고, 법원칙과 정신에도 맞지 않는 쪽으로 행사되어, 법원과 법관에 대하여 이를 뿌드득 가는 국민들이 거리에 넘쳐난다면, 그 법원과 법관은 존재할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타도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의 사법부, 법관들은 주어진 사법권 독립과 법관의 독립에 걸맞은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 잃어버린 내 권리를 찾아주는 수호천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널리 유전무죄 무전유죄만 말하지만, 재판의 진짜 문제는 재산이 오고가는 민사재판에서 더 빈번하고 심각하다. 기회만 되면 휘발유를 끼얹고 법원에 돌진하겠다는 사법피해자들이 별처럼 많다.

당사자가 납득 못하는 재판이 빈번한 그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과 법관이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한 심각한 성찰 없이 개혁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 동안 법관의 독립에만 관심을 두었지 독립 뒤에 숨은 만용에 대하여는 모르쇠 해 왔기 때문이다. 법관에게 독립만 주어졌지, 잘 못 된 재판에 대한 견제 장치, 틀린 판단에 대하여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제도적으로나 실제로 거의 없었다. 법관들이 - 지금 개혁의 대상인 ‘양승태의 대법원’뿐만 아니라, 어쩌면 판사회의의 상설화를 주장하는 단독판사 일부도 포함하는 - 법관의 독립을 향유하고 더 큰 독립을 원하면서, 잘 못된 재판에 대한 책임을 말했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

잘 못에 대한 책임 곧 민사상의 배상이나 형사 처분을 받지 않는 독립과 자유는 독선과 만용의 다른 이름이다. 혹자는 이런 주장에 대하여 법관의 독립을 제약하는 비민주적 발상이라고 분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못이다. 진부한 얘기지만, 민주주의 기본은 권력의 분산과 제한이다. 법관에게 자유만 주고, 지고지순하지도 아니한 인간들에게 전지전능한 권한을 내맡긴다는 것은 권력분립과 민주주의 정신에 결코 맞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사법개혁의 진짜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무엇보다도 법관도 사람이라는 점, 사람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독일 법관들은 전체 판결의 25퍼센트가 오판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한 자료가 있다. 우리 법원과 법관들이 이와 유사한 자료를 인정했다는 자료를 과문인지 몰라도 듣고 본 적이 없다. 법원과 법관이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어야 하는 것은 백번 강조해도 과하지 않겠으나, 그렇다고, 결코 오류를 모르는 전지전능인 척 하는 것은 위선이며 가식이다.

백년 인생의 고작 5분의 1정도 밖에 살지 아니한 젊은이에게 땅덩어리만큼 커다란 판결을 맡길 것이 아니라, 풍부한 인생 경험을 가진 다양한 국민들이 참여하여 사실관계를 판단하게 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법원과 법관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재심의 문호를 개방하는 것에 연결되고, 재심의 가능성은 오판을 한 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데에 귀착된다. 그렇다고, 판사가 실수한 재판에까지 무조건 책임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다. 고의적인 오판, 단적으로 청부재판과 냄새나는 괘씸죄 재판을 한 자에게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할 때에 비로소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독립은 그 본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형법이 규정하는 법왜곡죄(Rechtsbeugung, 독일형법 제 339조)는 사실관계를 조작·왜곡하거나, 실체법이나 절차법에 대한 자의적인 법 해석과 적용으로,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결정을 함으로써, 국민이 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사법기능과 사건관계인들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법관이나 검사들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공소권을 남용한 질 나쁜 검사, 부패한 판사들에 의해서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국민이 그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은 법원의 권위적이고 자기방어적인 사고방식만 바뀌어도, 특단의 어떤 입법이 없이도 가능할 일이다.

어제 오늘의 판사회의 상설화만으로써 사법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다른 한편, 그것이 오히려, 독립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판사 맘대로’를 북돋우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여야 한다. 오판을 저지른 법관에 대한 책임 묻기에 더하여, 법원의 밀행주의, 훈시규정이라는 이름으로 마냥 지연되는 재판, “재판중인 사항”이라는 이유로 도대체 알려주려 하지 않는 태도, 선배 법관들의 잘못을 덮어주는데 급급하여 재심의 문호를 막아두는 제도와 관행 등이 철폐되지 아니하고서는 진정한 사법개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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