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나미볼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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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나미볼펜 고문
  • 엄상익
  • 승인 2017.06.30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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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 소설가

2017년 5월 2일. 미세먼지가 붉은 글씨가 되어 경고가 있던 날 81세의 한 노인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검은 뿔테안경 뒤에서 눈빛이 반짝였다.

노인은 40년 전 국가기관의 불법이 판을 치던 시절 겪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일본에 사는 장인은 서울요지에 노른자 땅이 많았었다. 그 땅들이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등기명의가 넘어간 것이다. 상속자인 아들이 땅을 찾기 위해 원인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어느 날 소송을 하던 아들이 담당변호사와 함께 납치가 됐다. 며칠 후 어떤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납치된 처남이 버려져 있는 장소를 가르쳐 주면서 데려가라고 했다. 상속자인 처남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으면서 소 취하하라는 강요를 당했다는 것이다. 상속자인 처남은 소송을 할 의지가 꺾인 것 같았다. 담당변호사도 모 기관에 끌려갔다. 기관의 하수인들이 돌돌 만 종이로 머리통을 치며 소를 취하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그 변호사는 당신들이 뭔데 개인의 재산소송에 관여하느냐고 하면서 버텼다.

이번에는 처남대신 그가 소송을 주도했다. 78년 8월 7일경이었다. 그는 출근길에 중부경찰서 부근의 다방에서 건장한 남자 세 사람에게 불법연행이 됐다. 끌려갈 때 다방종업원에게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소리쳤다. 그는 기관의 지하실로 끌려갔다. 그들은 군복을 갈아입히고 의자에 묶었다. 첫 단계는 이쑤시개로 손가락 발가락을 찌르는 것이었다. 그 다음은 볼펜고문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어놓고 손을 잡아 비틀었다. 그 다음은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사이에 철봉을 끼워 묶은 후 번쩍 들어 올려 철책상 사이에 걸어놓았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꼴이 됐다. 그들은 얼굴에 수건을 물로 붙여놓고 주전자의 물을 그 위에 흘렸다. 마지막에는 군용 빈 드럼통 안에 들어가라고 했다. 밖에서 통에 전선을 대는 것 같았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간첩혐의도 아니고 반역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40일 동안을 고생하다가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집안의 땅이 강도 같은 국가에 의해 다 날아갔다는 것이다.

혼란기 권력기관의 하수인들은 더러 그런 짓을 했다. 부정부패 청산이란 명목으로 부자들을 불러 협박을 하고 기부각서에 도장을 찍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밀실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고문은 당사자에게는 지옥까지 끌려갔던 절박했던 기억이고 사실이지만 법에서는 진실이 아니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증거가 있어도 판사들이 그 증거를 외면할 때도 많았다.

30년 동안 변호사를 해 오면서 법정에서 고문을 당한 걸 여러 번 폭로했었다. 증거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주의를 기울여 살펴주는 판사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오히려 에이 그럴 리가 있느냐는 식으로 나올 때도 있었다.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법의 이중성과 양면성에 화들짝 놀랄 때가 많았다.

그 노인은 그 고통의 기억을 안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대통령에게 진정을 했다. 과거사 조사 위원회의 문도 두드렸다. 조사결과는 규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노인이 된 그는 정부에서 주는 2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권력의 하수인들에 의해 고문당하고 죽고 재산을 빼앗겼다. 법적인 팩트는 증거를 요구해도 역사는 당한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 기억들이 어딘가 누구에게 하나하나 기록이라도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사무실 근처의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하면서 물었다.

“강도 같은 놈한테 고문을 당할 때 얼른 각서를 써 줘 버리시지 왜 그 고문과정을 다 겪으셨어요?”

사람들은 강도를 당하면 얼른 지갑을 꺼내 던져버리기 마련이었다. 그가 고문을 당하면서 끝까지 버틴 게 조금은 의문이었다.

“내가 바보였지요” “80년간 살아온 세상이 어땠어요?” “하나님은 우스워요, 참 묘합니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상담의 흔적이라도 몇 줄의 글로 남겨 두는 게 변호사의 소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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